오늘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

광포해지는 한국사회

아브라함-la 2023. 8. 11. 09:25

분당 서현역에서 발생한 묻지 마 흉기난동 사건은 미국에서 종종 발생하는 총기난동 사건에 다름이 아닙니다. 만약 그 범인에게 흉기대신 총이 들려 있었다면 사망 1명, 13명 부상 정도가 아니라, 대량 참사가 되었을 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서현역 난동이 발생하자 경찰은 예방 차원이라며 장갑차와 경찰 특공대를 배치했습니다,

 

이는 대처는 참 어이없는 일입니다, 번화한 거리에서 장갑차가 범인을 추격하겠습니까, 특공 경찰이 들고 있는 그 기관단총을 발사하겠습니까? 외려 한국의 치안이 이제 한계에 이른 것을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민심을 더 흉흉하게 할 뿐입니다, 당국은 장갑차가 아니라, 초소를 늘리고 순찰인원을 늘리는 등의 민생치안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겁니다.

 

이태원 참사가 시위를 막는데 경찰병력이 집중되어서 이태원의 축제에 배치할 인원이 없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만일 정부와 경찰이 지금 시위현장에 경찰병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하는 것 같이 민생치안에 병력을 배치했다면 이런 참사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정부는 왜 전혀 치안에 위협이 되지 않는 평화적인 집회에는 경찰병력을 집중하면서, 계속되는 흉기난동 사건에도 불구하고 민생치안에 경찰병력을 집중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흉기난동 사건 중에 가장 광포한 이번 서현역 사건은 왜 우리 한국 사회가 이렇게 광포 해졌는가에 주목케 합니다. 더욱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난동을 저지르는 이들이 청년층이라는 점입니다. 서현역에 이르는 일련의 묻지마 흉기 난동은 다 청년층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날로 광포해져 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대체 무엇이 우리 청소년들이 이렇게 광포해지게 하고 있을까요?

 

사건이 떠지면 심리학자들이나, 범죄를 연구하는 이들은 우선 불우한 가정환경을 꼽습니다. 폭력적인 미디어와 차등적인 사회구조악이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주원인일겁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이런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적 구조가 외적이 아닌 자국민을 “외로운 늑대”로 만든다는 보고를 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것보다 청소년을 광포에 빠뜨리는 것은 “사회적 균형”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외면하고 극단에 치우친 정치와 정제되지 않은 광포한 정치적 언사에 있다고 확언합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정치만큼이나 신속하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저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히로히토의 광기에 빠진 독일과 이태리, 일본청년들이 인간성을 상실한 광포에 함몰된 것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6,25를 통해서 정치적 신념이 사람을 인간성을 상실한 광기에 이르게 한 참혹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정치는 육이오 전후의 좌우 대립을 보듯 살벌해졌습니다. 새만금 잼버리 실패를 전정부 책임으로 돌리는데서 보듯 이성이나 합리는 간 곳이 없고 억지와 증오의 언사만 난무합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기독교인이라는 이들이 광화문에서 살벌한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종교마저 인간성을 상실한 광포에 빠지는 건 가공할 일이며 서글픈일입니다.  

 

이렇게 광포해진 정치는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권력과 힘이 정의라는 가치관을 갖게 합니다. 국민들 앞에서 아무렇치게 않게 사실을 왜곡하고 불의와 거짓을 자행하기를 주저치 않는 뻔뻔함과 무도함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분노라는 성격장애를 야기하고, 그 완악함을 삶의 방법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는 겁니다. 광포해진 이 땅의 정치가 우리 사회를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야기하고 분노와  광포로 몰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흉기난동을 방지 한다고 장갑차와 중무장 병력을 배치할게 아니라, 대통령으로부터 방송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이 광포해진 정치와 언사를 철수하고, 중용과 균형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청소년과 사회를 광포하지 않게 하는 첩경일 것입니다. 한 사회를 험악하고 흉흉하게 하는 건 본령을 잃은 정치인 당신들이라는 걸 잊지 마시기를 주권자로 권하고 명합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는 정치적 이념을  신앙과 기독교로 착각해서 이념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초대교회와 같이 화평의 복음의 사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잊지 맙시다!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시12:8) 명심합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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