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강해

하나님만 하신다면 인간교사는

아브라함-la 2025. 9. 21. 15:54

025,9,21, 주일

본문 : 욥37:24-38:1

말씀 : 라인권목사

 

하나님의 사중계획 안에 있음을 축하드립니다.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도 안 되고, 사람의 지혜의 아름다운 말로도, 교리와 신학으로 사람을 거듭나게 못 하고 오직 하나님이 하셔야 사람이 거듭난다, 이게 지난 주일 말씀의 요지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성경도 필요 없고, 인간 교사는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하나님께서 하셔야 한다면, 처음부터 하나님이 직접 하시지 왜 비효율적으로 사람을 통해서 하시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욥기를 공부한 바에 따르면 엘리후의 말이 끝나기까지 세 친구와 엘리후의 말을 보면 이 사람들이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 교사는 비효율성

첫째, 이 사람들이 다 욥을 돕는다고 했지만, 오히려 욥을 더 아프게 하고 고뇌를 더 깊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욥을 시험에 들게 한 것은 재앙 지체가 아니라, 친구들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이 사람이 하나님 편을 든다고 했지만, 그들의 편협한 신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사법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이 세상에서 재난을 당한 사람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공의를 불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욥만 괴롭힌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든다면서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를 파괴한 겁니다.

 

셋째, 이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는 타락한 인간의 죄성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고난당하는 욥을 악인으로 간주한 외식주의, 고난 당하는 욥에게서 상대적 의와 행복감을 느끼는 악질적인 이기심, 욥의 경건과 의로움에 눈을 감는 교조주의, 자신이 신학에 지존인 것 같이 행세하는 오만함, 이게 다 타락한 인간의 죄성에서 나온 겁니다. 욥을 가르친 네 사람 중에 이 죄성에서 자유한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욥은 “너희는 다 쓸데없는 의원이다”라고 절규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인간의 죄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역자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제도적인 교회가 없는 게 낫다는 무교회주의가 생긴 겁니다. 하나님 하셔야만 한다면 직접 하시면 되지 왜 성경이 있어야 하고, 성경 교사가 필요합니까? 오히려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에 성경과 교사를 주셔서 그들을 통해서 듣게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지를 여기서 해결해야 합니다.

 

왜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나!
욥 4-37장까지는 인간 교사들의 일이고, 38-41장은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즉 37장과 38장의 사이는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의 경계입니다. 이 경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에게 보듯 문제가 많음에도 문제가 많은 인간 교사들을 세우시고, 먼저 그들의 가르침을 받게 하십니까? 그게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시는 계시의 방법이 인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와 문화를 통해서 당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계시하실 때 하나님의 언어로 말씀한다면 말씀해도 사람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인격이신 하나님은 당신을 계시하실 때에 신이라는 당신의 수준을 낮추어서 인간적으로 계시하십니다. 즉 천상의 언어가 아닌 땅 인간의 언어와 문화로 말씀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이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언어와 문화 역사가 계시를 전달하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인간 교사가 필요한 겁니다. 계시가 인간의 언어와 문화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인간 교사가 그것을 해석하고 가르쳐야 하는 겁니다. 인간 교사는 이 도구요 그릇입니다. 인간 냄새가 나는 교사도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먼저 이 사람에게 들어야 하나님께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교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기관으로 믿고 그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진공상태가 아니라, 사람의 구체적인 삶이나 역사적 정황 속에서 당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생전 밥 한 번 사지 않던 친구가 나타나서 점심을 먹자며 내가 밥 사겠다고 하면 제가 속으로 ‘이 친구 왜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뜬금없이!’ 이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계시도 마찬가집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로 충만한 사람에게 믿으면 선물로 칭의를 주시겠다면 ‘나를 어떻게 알고! 내가 책임직 존재인데 내가 거지라는 말이냐?’ 이럴 겁니다. 그래서 창조 이후에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임하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를 의롭게 아는 욥에게 먼저 재앙이라는 사건과 환경을 조성해 주셔서 의로운 내가 왜 재앙을 받나?라고 고뇌하게 만듭니다. 이 고난이라는 구체적인 정황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세 친구와 엘리후의 말을 통해서 사람과의 대화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없음을 절감하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갈망하는 이 구체적인 정황에서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서 임해서 말씀해 주신 겁니다.

 

따라서 욥의 고난도 욥에게 말씀하는 하나님의 도구이고, 욥의 세 친구와 엘 리 후는 욥이 하나님 개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겁니다. 이게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완전치 못해도 교회가 필요하고, 성경과 교사가 필요한 겁니다. 심지어 사건 환경도 필요한 겁니다. 그러므로 내게 말하는 사람, 특히 성경과 성경 교사를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방도로 믿고 그 가르침과 교훈을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 계시의 말씀을 듣는 일에 객관적 기준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욥이 듣기만 하는 상태에서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실제적인 믿음이 된 것은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욥이 사람에게서 듣지 못했다면 보는 것 같은 상태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거나 다 들어도 됩니까? 무엇을 듣느냐가 문제지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고 성경과 선지자와 사도라는 교사를 세우신 겁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기관이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교사가 하나님이 세운 종이라는 이게 공적 권위입니다. 이로 가르치는 말씀이 공적이 되게 하셨습니다. 믿을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 믿고, 이 공인된 교훈에 순종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인간 교사들과 그 교훈을 어떻게 분별하고 받아야 할까요.

 

어떻게 분별하고 받아야 하나?

그게 교훈의 동일성입니다. 누가 하나님이 세우시고 보내신 교사일까요? 그 기준이 말씀과 교훈의 동일성입니다. 37장의 엘리후가 선포한 자연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38장의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성을 가집니다. 이게 엘리후가 하나님의 교사라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인간 교사의 교훈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동일성을 가졌다면 그는 하나님의 교사입니다. 이게 기준입니다. 말씀을 받을 때 이 기준을 사용합시다. 이 기준이면 그를 하나님의 기관으로 신뢰하고 그에게서 가르침에 순종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와 좋은 것을 함께 하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그 가르침을 우리는 어떤 태도로 받아야 할까요? 이걸 주님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눅8:15) 착하고 좋은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가르침 받을 자로 아는 겁니다. 말씀이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말씀에 따르는 고난과 시험을 뚫고 나가서 말씀이 최소 삼십 배 최대 백배의 결실을 하는 구원의 충만한 축복에 이르게 할 줄로 믿습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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