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9,28,주일
본문 : 욥37:21-38:1
말씀 : 라인권목사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세상과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할 제자도라는 의무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욥기가 하나님의 해결로 넘어가기 전에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의 경계인 37장과 38장 사이에서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말로 사람을 돕는 일입니다.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까지도 말로 욥을 도우려고 했지만, 이들의 말은 욥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욥의 고뇌를 더 하게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욥으로 하여금 “너희는 다 쓸데없는 의원들이다” 라고 절규하게 했습니다. 결국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는 유익한 상담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유익한 상담자가 되지 못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이렇게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로 사람을 도우려다가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와 같이 충분히 비참한 사람에게 비참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만들고,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게 하고 죽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욥기를 공부하면서 이 문제를 충분히 공부했지만, 이것 하나는 욥기에서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이게 욥기를 공부하는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엘리후의 말로 인간의 말이 끝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넘어가는 이 지점에서 이 네 사람의 두 가지 장점과 한 가지 단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어떤 사람이 유익한 상담자이고 어떻게 말하는 사람이 유익한 상담자인지를 최종적으로 정리해 갈무리해 두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유익한 상담자가 되려면
첫째, 유익한 상담자는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영적인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우리가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에게 배울 점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관점에서 영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욥 네가 재앙을 당한 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죄를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이렇게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는 욥의 문제를 육신 적인 문제로 본 것이 아니라, 욥과 하나님의 관계라는 영적인 문제로 본 겁니다. 이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욥의 고통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네 사람이 욥을 악인으로 단정한 것은 오류지만, 그들의 이 접근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이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하는 심리상담과 기독교 상담, 즉 성경 상담의 차이점입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심리학을 인간의 문제에 대한 희망으로 알았습니다. 1900년도 초에 의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교 심리학 개론 첫 시간에 담당 교수는 교탁에서 조간신문 일 이면의 타이틀들을 읽어 주고는 “세상은 요지경 속이는구나!”라고 말한 후에 심리학이 이런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줄 세상의 희망 학문임을 한 시간 동안 강의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신문의 타이틀들은 개선되지 않고 사회는 날로 악화하여 지금은 정신병원은 보편화되었고, 성업 중입니다. 그 이유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인본주의적 접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을 놀라게 하는 흉악범이 등장하면 TV에 나온 저명한 심리학자들이나 프로파일러들이 하는 소리는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 불우했다.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그것이 육신적이건 물질적이건, 정신적,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모든 문제는 다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 영적인 문제를 두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건 수술할 환자에게 진통제를 처방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기뻐하실 때 하실 때에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구속의 희생만이 인간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게 합니다. 예수로 하나님과 관계라는 이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게 예수가 모든 문제의 해결자 Savior 주세주가 되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유익한 상담자는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며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 영적으로 접근하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유익한 상담자가 되시기를 원하신다면 거듭나고,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해 나가는 영적 실제가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이 영적인 사람만이 인간의 문제를 영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영적 실제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유익한 상담자가 되는 첫걸음임을 확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유익한 상담자는 철저하게 신학적이고 성경적이어야만 합니다. 이게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의 장점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공의라는 신학, 회개의 신학과 축복의 신학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성경적이고 교리적이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이들의 신학이 편협한 것과 그 신학과 교리를 잘못 적용한 것이 문제이지, 이들이 신학과 성경적으로 욥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유익한 상담자가 되려면 철저하게 신학적이고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항상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접근하고 성경과 신학으로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왜 유익한 상담자는 신학적이어야 하고 성경적이어야 합니까?
그것은 성경은 하나님 구원의 특별계시,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3:15-17에서 이 성경 자체에 세 가지 능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구원받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지혜인 믿음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둘째, 교육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경감된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살아서 좌우에 날 선 검보다 예리해서 신혼골수를 찔러 쪼개기 때문입니다. (히4:12) 셋째,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고 능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이 있게 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 구원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말씀으로 하셨고, 사도들은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명하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예수님 같이 말씀으로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러므로 유익한 상담자는 성경을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으로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고통하는 세상에서 유익한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공부합시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말씀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말씀에 헌신합시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과 같이 편협한 신학과 신앙이 아니라, 성경으로 균형 잡힌 신앙과 신학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러므로 이사야와 같이 학자의 혀를 주사 곤핍한 사람을 도울 수 있게 학자 같이 듣는 귀가 되게 하시기를 기도하셔서 말씀으로 곤핍한 자를 도울 수 있는 유익한 상담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유익한 상담자가 되려면 인간을 이해하는 진솔한 한 인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욥기에서 욥의 친구들과 엘리후의 말이 실패한 원인은 그것이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거나 신학적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너무 신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보다 더 거룩하고 정의로운 것 같이 욥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가르치기를 즐겼습니다. 너무 신적이고 너무 영적이어서 자신이 욥과 동일한 한 인간임을 잊고, 인간성을 상실한 겁니다. 이것이 아들딸 열을 하루아침에 잃은 욥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게 했고, 그들의 신학과 교리에 인격성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존중 배려, 사랑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서로의 감정만 상해서 피차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을 주고받기에 이른 겁니다. 이 사람들은 영적이고 신학적이었지만,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으로 전락한 겁니다. 이게 그들이 유익한 상담자가 되지 못하고 실패한 까닭인 겁니다. 이게 우리 인간의 아이러니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겁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건 자신도 동일한 인간임을 잊어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로 사람을 돕는 유익한 상담자가 되려면 인간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신이 진솔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충고하고 가르치는 선생 이전에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겸손하게 하게 하고, 이게 자기 같은 사람을 긍휼히 여기게 하고, 이게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게 하고, 이게 예절을 갖추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상담자가 인간적이고 인격적이어야 공감하게 되고 듣게 되는 겁니다. 지금 우리말이 실패하는 건 우리는 신적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신적이 되어서 인간성, 인격성을 잃어섭니다. 너무 신령하고 너무 거룩해서 마치 신령계에 있는 사람마냥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유익한 상담자는 진솔한 인간이어야 합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래서 정신분석학도 알 아야 합니다. 제발 우리의 신학과 교리에 인격과 인간성이 있게 합시다. 인격성을 잃은 신학과 교리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죽이는 칼이 된다는 걸 명심합시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우리가 이 사람 되는 길이 무엇이겠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우리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까? 사람이어야 사람을 이해하고, 체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를 낮추어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할 수 있게 하고,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가 되게 하신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은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참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걸 착각해서 너무 신적이 되어서 인간성을 잃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같이 되는 건 하나님이신 예수가 아닌 사람이신 예수처럼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예수님 같은 참사람이 되기를 결단합시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관점이 되게 하고 철저하게 신학적이고 성경적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이 고통하는 세상에서 우리 예수님같이 온전한 사랑으로 말하여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유익한 상담자가 되게 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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