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강해

자기 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3)

아브라함-la 2025. 11. 25. 01:04

025,11,23, 주일

본문 : 욥40:6-14

말씀 : 라인권목사

 

하나님의 사중계획 안에 계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38장에서부터 욥의 자기 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방식을 공부해 왔습니다. 38장은 자기 의를 주장하는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주신 이유를 답변하시거나, 고난을 주신 것을 변명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 앞에 세우신 것만으로 욥을 회개에 이르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9장은 바울처럼 칭의론을 설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욥을 야생 앞에 세우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욥은 자기 존재의 죽음을 고백하는 회개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다시 폭풍 중에서 욥에게 직접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느냐?” 이 하나님의 도전적 질문이 욥을 42장의 회개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 42장의 회개를 헹스텐베르그는 저와 같이 욥의 회심으로 봅니다. 즉 앞의 두 가지 방식이 욥을 중생의 회개에 이르게 했다면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질문은 욥을 회심의 회개에 이르게 한 겁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질문은 어떤 질문이기에 욥이 이 하나님의 질문으로 회심했을까요?

 

첫째, 이 하나님의 질문은 욥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주장한 것이 하나님께 대한 불경과 불신앙이라는 실제적인 죄임 분명히 깨닫게 하여 욥이 정죄를 받게 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8절을 봅시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이 8절의 공의를 현대 번역들은 다 “내 판결”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욥이 자기에게 재앙을 부과한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을 잘못된 판결로 여겼다는 겁니다. 무죄하고 의로운 내게 하나님이 재앙을 부과하기로 판단한 것은 하나님의 오판이라며, 의로운 내게 재앙을 내리신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나님께 따지려고 든 겁니다. 마치 요즘 내란 수괴가 자기가 정당하다고 재판장을 흔들듯 욥이 하나님의 판결을 비난한 겁니다. 여기에 욥의 세 가지 실제적인 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경의 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선하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이 불신앙이 재앙을 주신 하나님을 원수 같으시다고 한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불의하게 만드는 망령된 죄입니다. 이 죄가 욥이 하나님께 범한 실제적인 죄입니다. 그러나 욥은 이 죄를 죄인 줄 몰라서 자기를 무죄하고 의롭다고 알고 있습니다. 죄를 죄로 알아야 양심에 정죄가 되어 회개하는데 욥이 정죄를 받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욥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내 판결을 비난하려느냐? 네가 자신을 옳다 하기 위해서 나를 악하다 하느냐?” 이 하나님의 질문에 욥이 지금까지 자기가 한 짓이 불경과 불신앙인 줄을 확 깨달아진 겁니다. 양심에 불화살 박히듯 정죄받은 겁니다. 그래서 회개한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질문, 욥이 자기를 의를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을 불의하게 만든 불경이라는 말씀은 앞에 이미 욥의 친구들과 엘리후가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말인데 친구들이 말할 때는 그렇게 반발하다가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회개하냐는 겁니다. 우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가 나타서입니다.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논쟁을 하다가 모세나 다윗이 말했다고 하면 논쟁이 끝납니다. 이렇게 친구들의 정죄는 정죄됨을 느끼지 않지만 하나님이 직접 임하셔서 물으시니 그 하나님 되심에 압도되어 정죄된 겁니다.

 

그리고 내 판결을 비난하느냐는 이 질문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을 불의하게 만든 욥은 죽어 마땅합니다. 이런 욥에게 하나님께서 질문하시는 것은 죽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살리시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질문에서 자기를 살리시려고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겁니다. 그리고 “아직도 너는 내 판단을 비난하려느냐? 네가 자신을 옳다 하려고 나를 악하게 만드느냐는 이 질문을 뒤집으면 ”너를 구원의 온전한 축복에 이르게 하려고 네게 재앙을 준 나를 너는 원수 같으시다고 하느냐?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욥이 깨달은 겁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의를 주장하며 원수 같으시다고 한 것이 불경이요, 불신앙의 죄임을 깨달아서 욥의 양심에 불같은 정죄와 죄책이 밀려와 회개한 겁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것이 욥이 회개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 이유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정죄받고 자기가 벌레 같이 되는 회심의 회개에 이릅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고집하는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 앞에 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이 하나님의 질문은 자기 의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죄인지를 분명히 밝혀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욥이 자를 옳게 여겼다는 겁니다. 이 욥의 옳음 즉 의가 무엇입니까? 그게 욥이 하나님께 대한 자기 의무를 다 스스로 다 이행했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질문들은 이 자기 의가 무엇이며 그게 어떤 죄인지를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자기 의는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아는 것이 자기 의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14절의 질문이 결정적인 말씀입니다.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욥이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것을 자기 힘으로 자기를 스스로 구원할 능이 있는 자로 알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려고 했다고 하신 겁니다. 이게 자기 의의 본질입니다. 자기 의는 자기를 알기를 하나님의 은총 없이도 자기의 양심과 지성과 의지로 충분히 자기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계몽주의는 이걸 일깨우는 겁니다. 인간은 교육되면 양심과 지성과 의지로 충분히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교만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 자기 마음도 자기가 어쩌지 못하는 인간이 자기를 전능한 하나님같이 아는 겁니다, 이교만이 아담처럼 하나님을 떠나 자율자가 되고 자주자가 된 겁니다. 이게 자기 의입니다. 이걸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이 죄가 무서운 것은 죄를 죄로 알지 못하니 의원이 쓸데가 없습니다. 자기 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방법을 부정하는 무서운 죄악 중의 죄악이 되는 겁니다. 욥이 이 무서운 죄를 죄로 알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능이 있다는 욥에게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네 팔이 하나님의 팔과 같으냐? 네가 나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9) 네가 나처럼 할 수 있다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인정해 주겠다고 하신 겁니다. 이 하나님의 질문에 욥이 자기 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무서운 죄임을 깨닫고 정죄받은 겁니다. 이 정죄가 자기를 구원할 능이 있는 자로 자기를 중히 여기던 욥이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소망이 없는 어쩔 수 없는 가련하고 비천한 죄인이 된 겁니다.

 

둘째, 그래서 자기 의는 자기를 하나님께 대한 모든 의무를 다 한 사람으로 아는 겁니다. 욥의 경건과 의를 추종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 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이게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이 영이 아니라 문자적 순종인 줄 알기 때문에 모든 의무를 다 이룬 것으로 아는 겁니다. 이게 자기 의입니다. 이렇게 자기 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경건한 사람들만 빠지는 죄입니다.

 

셋째, 그래서 자기 의는 공로주의에 빠지게 만듭니다. 욥은 자기의 경건과 의를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공로 공적으로 안 겁니다. 이 공로 의식이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면 이런 내게 상을 주셔야지 왜 고통을 주십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자기에 부채가 있는 것 같이 여겼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채무자 취급한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가 하나님께 은혜 베푸는 자, 하나님께 덕 보이는 자가 된 겁니다. 이게 자기 의입니다. 이게 자기 의를 주장하는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아니 도전하십니다. 네 팔이 나 하나님의 팔과 같으냐? 네가 나보다 더 공의로우냐? 그렇다면 네가 나 하나님 같은 소리로 세상의 모든 악인이 떨게 할 수 있느냐? 어디 너 나 하나님 같은 위엄과 존귀와 영광과 영화를 갖추어서 세상의 교만한 악인들을 찾아내고 낮추고 짓밟아서 무덤 속에 뉘어 보라, 네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네가 네 힘으로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해 주겠다. 요지가 무엇입니까? 욥 네가 하나님이냐? 네가 나 하나님 같으냐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이 되어보라는 겁니다. 나 하나님처럼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네가 의롭다고 인정하겠다는 거지요. 이게 자기 의입니다. 피조물 인간이 자기를 하나님인 양 아는 겁니다. 피조물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한 수준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한 겁니다. 이게 욥의 죄입니다. 이 죄를 죄로 모르던 욥이 이 하나님의 도전적 질문 앞에서 죄를 죄로 깨닫고 그 양심에 정죄되어 욥이 회심한 겁니다. 지식과 논리가 아니라 이 하나님 경험으로 자기 의를 죄를 깨달아 회심한 겁니다.

 

 욥기는 이걸 가르치는 성경입니다. 욥의 고난이 갑절의 축복이 목적이라는 것, 인내를 배움이 목적이라는 것, 욥의 고난을 이사야가 노래한 하나님의 종들의 고난으로 보는 것은 본문 6-14절에 맞지 않습니다. 자기 의에 빠진 욥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재산도 건강도 자녀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을 고난으로 황무지로 만드시고, 인간 교사들로 말씀하시다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셔서 네가 하나님이 될 수 있냐고 물으셔서 정죄받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정죄가 욥의 자기 의를 깨 주셔서 욥이 회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죄를 죄로 깨닫는 것, 양심이 이 정죄를 받는 것! 이걸 성경은 은혜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의를 죄로 알고 양심에 정죄를 받아야 회심합니다. 이건 네가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 경험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자기 힘으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고 자기 의를 주장하는 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질문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 네가 나 하나님처럼 할 수 있느냐? 이 하나님의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면 의로운 자기, 할 수 있는 교만한 자기가 하나님의 자비이신 그리스도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 되어 회개하는 회심에 이를 줄로 믿습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