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욥 시험이 된 고통 어떻게 인내했나?

아브라함-la 2026. 3. 19. 14:10

026,3, 15, 주일

본문 :약5:10-11

말씀 : 라인권목사

 

평강입니다. 저녁 8시 반에서 9시 사이는 손녀와 영통을 하시는 시간입니다. 지난 금요일 이 시간에 이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손녀와 영통을 하는데  '할아버지 이제 제 에너지가 10% 남았어요"라고 해서, 내외가 손을 뻗으며 '에너지 충전!'을 외쳤습니다. 한 주간의 삶에 에너지가 방전되어 10% 뿐이시면 성령께서 이 예배로 100% 충전시켜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나와 가까운 사람이 나의 정죄자가 됩니다. 의지 하던 하나님이 내게 원수 같은 망상의 하나님이 되고 커뮤니티에서 소외되어 고독해집니다. 이 고난이 낳은 고통이 욥을 시험들 게 하고, 절망시킨 고통이며, 이 고통이 욥에게 인내라는 영적 투쟁을 요구한 고통입니다. 이게 야고보가 본받으라고 한 욥의 인내입니다. 그러면 욥은 이 고통을 어떻게 인내해 나갔습니까??

 

1, 가까운 사람이 정죄자가 되는 고통은 하나님께 변백 하는 기도로 인내하는 영적 투쟁을 해나갔습니다. 욥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의롭다는 자부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욥에게 있어서 이걸 부정하거나 공격하는 건만은 참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런 사람이 재앙을 당하자 위로하러 왔던 친구들이 칠일 칠야를 침묵하며 눈치로 정죄하자, 욥은 견디지 못하고 생일을 저주했습니다. 그러자 욥이 그러기를 기다렸던 세 친구가 번갈아 가며 욥을 정죄하고 가르쳤습니다. 이걸 못 참는 욥이 여기에 맞서서 친구들의 말을 논박합니다. 이게 정죄에 대한 욥의 반응이며 욥의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으로 맞섭니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욥의 말꼬리를 잡고 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 보니 너는 죄인이고, 너 같은 사람이 재앙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라고 합니다. 욥이 말할수록 더 죄인이 될 뿐입니다. 이렇게 세 친구들은 사실에 눈을 감고 욥의 말에 귀를 닫아 버리고 거침없이 정죄를 날렸습니다.  이게 죽을 맛입니다.

 

여기서 욥이 친구들과의 대화에 해결의 실마리가 없음을 절감합니다. 그래서 빌닷의 첫 번째 말에서 욥은 사람과 사람 사이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보 할 중보자를 바랍니다. (9:32-35) 그리고 소발의 첫째 연설에서 사람에게 완전히 절망해서 자기 입에 하나님께 변백 할 말을 채우고 나가서 하나님께 말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고 합니다.(13:3) 즉 말할수록 죄인이 되는 고통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봅니다. 그 하나님이 아시고, 그 하나님이 신원해 주실 것을 바라고, 자기 입에 변백할 말을 채우고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과 변론하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이게 욥의 변백의 기도입니다.

 

욥이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로 변백해 나갈 때에 하나님은 이에 응답해 폭풍 중에 임하셔서 세 친구들을 꾸짖어 주시고, 욥의 얼굴을 들게 해 주셨습니다. 이때까지 기도로 참았습니다. 이때까지 이 변백의 기도가 카타르시스가 되었습니다. 변백의 기도가 인내하게 한 겁니다. 기도가 치료가 되고 안식이 된 겁니다. 다윗도 이 방법으로 원수들의 정죄를 인내하여 하나님께서 원수 앞에서 얼굴을 들게 하고, 상을 차려 주시는 것을 경험한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변백의 기도가 부당한 정죄 속에서 인내하게 합니다. 고난으로 가까운 사람의 정죄가 될 때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보고 인내합시다.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고 변백의 기도로 인내하여 치유와 승리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시험이 만들어 낸 망상의 하나님이라는 고통은 포기하지 않는 신뢰와 기도로 인내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나가 변백 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하나님이 막아섭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수 같으십니다. 그래도 그 하나님께 나가려고 하면 하나님이 지기를 피해서 도망치시는 것입니다. 무죄한 자기에게 재앙을 주신 것이 잘못이라서 욥 자기를 만나지 않으시려고 피하여 도망치시는 것 같습니다.(23:8-9) 이게 시험이 만든 망상의 하나님의 고통입니다. 욥이 이 고통을 참을 수 있게 한 것이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였습니다.. 욥은 그 원수 같은 망상의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고 기도했습니까?

 

첫째, 인생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말하는 것을 죄로 여기신다면 자기 생명으로 속죄해서라도 하나님을 대면해서 하나님의 대답을 듣겠다고 합니다. 자기 손으로 자기를 죽이는 자는 없지만, (13:14) 하나님 앞에 나가서 만약에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를 그를 의뢰하여 자신의 무죄함을 하나님께 말하겠다는 겁니다.(15) 다윗이 맞아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맞겠다는 것 같이 죽어도 하나님의 손에서 죽음으로 하나님을 알겠다는 겁니다. 이 신뢰와 기도가 망상의 하나님의 고통을 인내하게 했습니다. 우리도 이 방법으로 망상의 하나님의 고통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재앙을 주시는 원수 같은 하나님을 장차 자신의 고난의 문제를 풀어주시고 해결해 주실 선하신 하나님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의 하나님은 자기와 싸우는 것 같은 하나님을 자기 호소를 들으시는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23:6) 자기 말을 듣고 죄 없다고 무죄 석방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고 찾습니다. (23:7) 피하여 도망치시는 하나님을 자기를 단련하여 순금 같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 (10) 이렇게 재앙을 주신 현재의 하나님을 선하신 구원의 하나님으로 해석하고 그 하나님께 기도로 육박해 들어갔습니다. 이걸 믿음의 사고라고 합니다. 이 믿음의 사고가 의심과 회의의 망상의 하나님과 싸워 선하신 구원의 하나님에 이르도록 인내하게 한 겁니다.

 

셋째, 망상의 하나님의 고통을 기도로 인내하며 싸웠습니다. 욥13:20-28욥 13:20-28의 욥의 기도를 봅시다.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을 잠시나마 경감시켜 주시를 간청합니다.(13:21) 그러면 두려움이 줄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권력자가 권력을 과시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위엄 과시하여 공포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21) 하나님이 먼저 나를 불러 주시고 대답하여 말할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변백 합니다. ‘내가 죄 없는 것은 아니지만(23) 그래도 순전한 내게 이 큰 재앙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원수로 아셔서, 어릴 적에 참외 설이 한 죄까지 들추어내어 벌을 주어 나를 좀먹은 옷같이 만드셨다고 항의합니다. (24-28)

 

성경은 이런 기도를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씨름하는 기도가 망상의 하나님의 고통을 인내하게 했습니다. 이 기도로 의심과 회의와 싸워 구원의 하나님의 면전에 서게 했습니다. 이 기도로 망상의 하나님과 투쟁하여 의심과 회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해후하는 자리로 나가고 있는 겁니다. 이 기도가 인내의 방법입니다. 망상의 하나님의 고통 앞에 이 기도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기도로 싸워서 망상의 하나님을 넘어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시는 선하신 구원의 하나님에 이르시기를 축복합니다.

 

3, 나 혼자라는 절대 고독의 고통은 침묵의 기도로 인내했습니다. 19:13-19에서 욥은 이 고통을 절절하게 호소합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됩니다. (13) 친척과 친지들이 버리고 잊습니다. (14) 심지어 가솔들도 낯선 사람으로 여기고 종도 무시하고, 가족인 아내가 숨결도 싫어하고 자식이 불쌍하게 봅니다. 아이들까지 업신여기고 가까운 친구들이 미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원수가 됩니다. 즉 고난은 모든 사회적인 관계 인간관계가 끊어지게 하고 거기서 나를 소외시켜 버리는 겁니다. 이 고통은 친구들과 같이 논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온 세상과 더불어 싸우는 격이 됩니다. 욥이 고통을 어떻게 인내했습니까?

 

이것도 다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욥의 마지막 말은 이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독백입니다. 이 작업을 31장까지 합니다. 그리고 욥의 말이 그칩니다. 그 후에 엘리후가 말해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이 욥의 침묵은 해결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절감하고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신앙은 해결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에 길이 있음을 확신하는 겁니다. 그래서 욥이 젊은 엘리후의 교만이 넘쳐흐르는 긴 연설에도 한마디도 안 하고 침묵으로 기도합니다.

 

이 욥의 침묵은 지금까지 하나님께 충분히 호소하고 간구했기 때문에 잠잠히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바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사례입니다. 소돔성의 롯을 위해서 간구할 때에 의인 오십 명에서 열 명까지 구하고 더 이상 구하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욥이 이렇게 침묵으로 기도한 겁니다, 이 기도가 응답이 올 때까지 인내하게 했습니다. 이 침묵의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이 폭풍 중에 임하셔서 말씀해 주시고, 해결이 되어 주셨습니다. 절대 고독이 고독하게 하나님 앞에서 서게 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기도는 고난이 낳는 고통을 인내한 욥의 방식이자, 우리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하시므로 십자가의 고통을 인내하여 구원을 이루시고 우편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이 기도가 인내의 비결이요, 우리의 안식이며 의심과 회의와 싸워 확신과 아들의 형상을 이루게 하는 투쟁의 방법입니다. 이 빛에 이르도록 고통이 낳은 고통을 기도로 인내하며 투쟁해 나가 귀로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확신과 구원의 충만한 축복에 이르시기를 축복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행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주여 인도하소서

내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 J오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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