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3,29, 종려주일
본문 : 약5:10-11
말씀 : 라인권목사
오늘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첫 말씀이 “아버지”이고, 최후의 말씀도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는 하나님의 고통을 “아버지”로 신뢰함으로 참으셨습니다. 이렇게 욥이 시험이 되는 고통을 인내한 근거가 욥 자기의 의지력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이라는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이었습니다. 신앙의 위기는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확신보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내게 선하시다는 확신이 흔들릴 때 오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욥의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느라”라고 하나님의 능력적 완전이 아닌 자비와 긍휼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이 욥의 인내의 근거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욥의 인내의 근거가 하나님이셨다는 건, 결국 욥의 회복과 갑절의 축복인 욥의 결말은 욥의 영웅적인 인내의 보상이기보다는 하나님이 가장 자비롭고 긍휼 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그러면 욥의 결말은 하나님이 선하심을 어떻게 입증하고 있습니까?
1, 욥의 만족한 결말은 하나님께서 욥을 참으신 하나님의 선하심의 입증입니다. 이 본문을 욥이 그 큰 고난을 인내해서 하나님께 갑절의 축복을 받았으니 욥을 본받아 인내하라고 가르친 것을 알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욥의 결말은 욥의 인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로 욥을 오래 참으신 결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욥기가 분명히 증명합니다. 욥기는 욥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욥을 참으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욥의 교만을 참아 주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겨서 욥에게 고난으로 자기 의를 깨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자기 의는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대한 모든 의무를 다할 수 있고, 다 했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했지요. 이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 즉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교만입니다. 이게 죄의 본질입니다. 이교만은 하나님이 물리치시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욥을 물리치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죄에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욥의 자기 의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소유인 재산과 자녀를 치는 행동을 하게 했습니다. 이게 긍휼 하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욥을 참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욥은 이 하나님의 참아 주시는 첫 매에 자기의 회개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의롭다는 자부심으로 그 재앙을 참으며, 예배하므로 자기 의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이걸 참아 주시고, 불쌍히 여겨 건강을 치시자,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아야 한다고 자기 의를 세웠습니다. 이 교만한 욥을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로 참아 주셔서 아름다운 결말에 이르게 하신 겁니다. 따라서 욥의 흡족한 결말은 욥 인내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으심의 결과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며, 하나님을 법정에 세우고 하나님과 변론하겠다는 욥의 불경을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재앙에도 욥이 자기 의를 버리지 않자. 친구들을 보내서 정죄하게 하셨습니다. 네가 이 큰 재앙을 받은 건 네 죄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회개하라고 욥을 정죄합니다. 여기에 욥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자기 의가 부정되는 걸 못 참고, 생일을 저주하고, 무죄한 내게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며 하나님을 법정에 세우고 하나님께 따진다고 합니다. 이런 불경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욥의 불경을 잠잠히 참으신 겁니다. 욥이 가슴속에 있는 고통과 불평, 슬픔과 고뇌와 항변을 다 침묵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자비와 긍휼에 욥이 인내할 수 있고 만족한 결말에 이를 수 있었던 겁니다. 따라서 욥의 흡족한 결말은 욥의 불경을 참으신 하나님의 선하심의 입증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낙심과 절망과 회의라는 욥의 불신앙을 참으셨습니다. 욥이 하나님이 자기를 죽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자기 소망은 죽음뿐이라고 낙심하고 절망에 빠져서 어서 죽어서 재앙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기를 죽게 내려버려 두시라며, 하나님이 내게 원수 같으시다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회의했습니다. 이게 욥의 불신앙입니다. 믿지 못하는 건 죄 중의 죄입니다. 따라서 욥의 결말은 욥이 잘 참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참으신 겁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서 욥이 시험의 고통을 인내할 수 있었고, 만족한 결말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의지가 약한 우리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뢰하면 인내할 수 있다고 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깊은 곳에서 위로와 소망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적 완전보다 완전하신 성품입니다. 이게 시편에 나타난 다윗의 방법입니다. (시130:1-4.7,136:1) 그러므로 시험이 되는 고통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 선하심을 바랍시다.
2, 욥의 이 만족한 결말은 성도 견인의 은혜의 진리를 입증한 사건입니다. 욥의 결말은 하나님께서 욥의 교만과 불경과 불신앙을 참아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의 입증이다, 하나님이 욥을 굳게 참으신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인내로 욥이 시험을 인내할 수 있었고, 만족한 결말에 이르게 하셨다는 겁니다. 이걸 우리 칼빈주의에서 “성도 견인”이라고 합니다. 이 성도 견인은 성도들의 연약함으로 낙심하여 타락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굳게 참고 견디시고 천국에 이르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사람을, 무조건 선택하고, 구속하셔서 불가항적인 은혜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도는 이 사랑 안에 있습니다. 이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으로 넉넉하게 구원받습니다. (롬 8:36,37,29) 욥의 만족한 결말은 이 성도 견인의 은혜의 진리의 생생한 입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하고 흔들려도 이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끝까지 인내하여 천국의 영광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에 시험이 되고 믿음이 흔들릴 때 성도를 견인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합시다. 이 확신이 시험이 되는 고통을 참고 선한 결말에 이르러 욥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간증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3, 욥의 만족한 결말은 우리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자녀들과 종들에게 얼마나 어지시고, 후하시다는 입증입니다. 욥은 재앙이 만든 시험에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회의하고 의심에 빠져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하고 원수 같으시다고 했습니다. 이 교만하고 불경하고 믿지 못하는 연약한 욥을 하나님이 참아 주시고 이끄시고, 나중에는 직접 임해서 말씀해 주시므로 자기 의를 회개시켰습니다. 사람이면 이 욥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했지만 초대교회가 믿어 주지 않았지요. 그래서 바나바가 소개하고 사역에 동참시켰습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용서해도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한 욥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욥의 해결이고 해답입니다. 그리스도를 주신 그것만으로도 다 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 구원받았는데, 병들고 가난한 게 무슨 대수냐? 이러신 게 아니라,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소유를 갑절이 되게 하시고, 자손 삼대를 보고 장수하다가 천국으로 영접하셨습니다. 영생과 함께 영생 구원에 어울리는 삶도 주신 겁니다. 흔들어 넘치게 후히 주셨습니다. 이게 후하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렇게 야고보 사도는 욥의 만족한 결말은 이 하나님의 후하심의 입증이라고 하신 겁니다. 욥의 결말이 하나님의 선하심의 입증이듯 주께서 재림 날의 우리의 결말도 하나님이 가장 가장 선하심을 찬양하게 하실 터이니, 이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약하고 부족하고 흔들려도(약 5:1-6) 욥처럼 인내하여 아름다운 결말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야고보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되는 고통에서 이 하나님의 후하심을 봅시다. 이것이 인내를 이루게 하고, 소망을 이루게 할 줄로 믿습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욥의 결말이 성도 견인의 후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은혜를 입증한 것 같이, 우리의 결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선하셨다는 입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확신이 흔들리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정이신 예수님을 봅시다. 아들을 주실 만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과 확신이 천국에 이르도록 인내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그 천국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하셨다는 입증이므로 우리는 거기서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렇게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품을 찬양할 줄로 믿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기를 십자가에 버리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신 우리 주구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시시로 묵상하셔서 이 확신을 더욱 굳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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