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부활 십가가를 사는 능력

아브라함-la 2026. 4. 6. 14:01

 

2026,4,5 부활절  

본문 : 시 22:22-31 

말씀 : 라인권목사

 

복된 부활절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절 메시지는 요14:19말씀과 같이“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입니다. 주님의 재림 나팔 소리가 울리는 날,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주의 음성을 듣고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는 부활할 뿐만 아니라, 부활하셔서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같이 영화롭게 됩니다.(요일3:2)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장래는 영화롭지만, 이 부활의 영광과 현재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있습니다.

 

부활의 영광이 있는 성도의 현실

부활의 영광이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현재는 꼭 마크 트웨인의 거지가 된 왕자 같습니다. 왕자인데, 왕자라고 하면 경비병에도 얻어맞고, 거지 아버지의 학대를 받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영광이 있는 우리가 영적으로는 사탄과 죄에 시달리고 학대를 당합니다. 육신적으로 결핍과 질병에 시달리고, 환난과 곤고가 있습니다. 이게 부활의 영광이 있는 성도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부활과 부활의 영광이 이런 현재 삶에서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직접 부활이신 예수님에게서 찾아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부활의 현재의 삶에 대한 의미

복음서를 보면 주님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부활을 믿는 것 같이 주님도 당신이 사흘 만에 다시 사실 것을 믿으시고, 선포하셨습니다. (마16:21,17:2,9,23) 이렇게 예수님에게 부활이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삶인 십자가에 어떤 의미였냐는 것을 이 본문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시22편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1-21절이 이 십자가의 고통이지만, 22-31은 부활하여 우편 보좌에 앉으신 주님의 승귀의 신분과 영광입니다. 이는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므로 십자가의 고난을 참음으로 구속을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 부활은 십자가를 살아내 구속을 이루는 능력이었다는 거지요,

 

예수님에게 부활은 십자가를 살아내는 능력

본문을 정리하면 이게 확실해집니다. 21-24절은 구원과 승리의 확신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십자가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구원이 주님을 다시 살리신 부활입니다. 다시 사신다는 부활이 주님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살아내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26절은 복음을 믿고 구원을 사람들을 말합니다. 겸손히 회개하고 믿는 자가 부활한 주님의 분깃이 된다는 것입니다.

 

27절은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어 모든 나라와 족속들이 돌아와 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께 부활 후에 주시는 삯입니다. 28절은 모든 나라가 주님의 나라가 될 것을 말합니다. 29절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걸 승귀의 신분이라고 합니다. 이사야는 이것을 분깃, 몫이라고 하셨고,(사53:11,12)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를 지극히 높여 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빌2:9,10)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주님은 십자가에서 부활과 부활 이후 받을 이 분깃, 상 주심을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이 부활과 부활의 영광이 십자가를 참고, 견디게 하시고, 삭이게 하시고, 이기게 하여 십자가를 살아내 구속을 이루어 구주가 되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히12:2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부활은 십자가라는 현재를 이기고 살아 내는 능력이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현재적인 의미입니다. 부활은 미래적 소망일 뿐만 아니라, 부활은 지금 현재적 삶의 고통을 감당하고 이기고 살아내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부활의 소망과 능력으로 제 몫에 태인 십자가를 살아냈다는 것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현재의 삶을 이루는 능력

첫째,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 삶의 고통을 이기고 삶을 이루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성업이자, 예수님이 살아내야 할 삶인 것 같이 각자의 인생과 살아야 할 삶이 있습니다. 이 삶을 이루는 건, 가시와 엉겅퀴가 나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한다는 말씀과 같이 고통이 따릅니다, 이 고통이라는 현실을 이기는 것에 인생의 성패가 걸려 있습니다. 이 고통을 이겨야 비로소 일가를 이루는 겁니다. 세상 사람은 썩을 소망으로도 이 고통을 극복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소망으로 이겨왔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살 사람입니다. 감당하지 못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죽어도 살 것을 주장하며 나갑시다. 이 부활의 능력이면 현재의 삶의 고난을 승리하고 일가를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둘째,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명에 따르는 고통을 이기고 사명을 이루게 하는 능력이 되어왔습니다. 이걸 부활장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여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당하는 궁핍과 핍박과 박해를 이긴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고전15:19,32) 부활이 있어서 전파하는 것이 헛되지 않을 줄로 확신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이 있으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을 줄 앎이라”라고 하셨습니다.(고전15:58) 부활은 시명을 이루는 현재적 사건입니다. 사명과 직분을 수행함이 고통이 될 때, 부활의 영광을 보고 일어납시다. 부활의 영광으로 우리의 사명인 직분에 따르는 고통과 시험이 이기고 사명을 이루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사는 고통을 이기고 믿음으로 살게 하는 능력이 되어왔습니다. 이 세상과 달리 향락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도 부활이 있어섭니다.(고전15:19,32) 경건히 살고자 하면 유혹과 압력과 고난이 옵니다. 다니엘처럼 세상이 정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에 압력과 유혹을 느낍니다. 국가적인 박해도 있습니다.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런 고난을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해서 피하지 않고 달게 받아 순교도 했습니다.(히11:35) 이게 부활의 현재적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시험이 될 때에 부활의 영광을 봅시다. 이 영광의 소망으로 믿음으로 사는 데 따르는 압력과 시험과 고통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시기를 축복합니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도 없다

우리 기독교에 흔히 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십자가 없이 부활이 없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 없다,” 그러나 저는“부활이 없으면 십자가도 없다”라고 하겠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단순한 살신성인에 불과한 겁니다. 부활이 있어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요 영광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겠습니까? 부활은 삶의 고통을 이기는 능력이요, 사명을 이루는 능력이요, 믿음을 지키는 능력입니다. 말하자면 부활은 우리 인생과 삶의 발전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영광이 있는 우리의 현실이 거지가 된 왕자 같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이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으로 삶이라는 십자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부활의 현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십자가로 상징되는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든 시험과 고통을 이기고 살아나는 부활로, 부활의 날의 영광에 이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산 것 같이 너희도 살겠음이라”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고 살 자입니다. 이 부활이 십자가를 살아내는 능력입니다. 이 부활의 능력과 권능으로 삶에 따르는 세상 모든 고난 풍파를 넉넉히 이기고 승리하여 부활의 예수를 나타내시고 증명해 나가시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온 세상 살펴보니 주 사랑 알겠네

내 맘이 아플 때도 주 사랑 알겠네 

이 세상 풍파 이길 힘주시는 주님,

예수, 예수 늘 살아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 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 계시네 늘 살아계시네”

- A. H. 아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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