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이슬처럼 맺히는 교훈

전도자의 윤리

아브라함-la 2014. 3. 14. 16:20

주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워 보내 실 때에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게 하신 것은 우선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마10;10) 따라서 전도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산다는 삶의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사역자가 복음으로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자존심을 상해하고 일부로 적게 받고 그것을 자기 의로 삼는 것은 소명에 합당한 일이 아니며 일종의 인기주의로 이는 창녀와 같은 짓입니다.

 

 

지팡이 외에 가지 못하게 한 것은 복음 전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케 하시는 일종의 제자 훈련입니다. 제자들은 없어도 사명에 순종하면 주께서 사역과 삶의 모든 필요를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확신해야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가게 하셨고 그 결과 잡히시던 밤 주님이 내가 너희를 보내었을 때 무엇이 부족 하더냐는 주님의 질문에 "없었나이다"(눅22:35)라고 고백하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도리이자 윤리입니다. 전도자는 주님의 공급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것은 전도자에게 물질문제에 있어서 더 가지려는 소유욕을 가지지 말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전도자는 그 사역과 삶의 필요를 주님이 공급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이 공급으로 사역하고 생활 하면 그만입니다. 전도자가 지나치게 받으려고 하거나 쌓으려고 하거나 이 세상에서 누리고 물리려고 하는 것은 그가 전한 복음과 천국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윤리입니다.

 

 

전도자에게 청빈을 강요하는 것은 목양의 도리를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지만 전도자는 자신의 메시지와 천국에 어울리게 스스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않음과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물욕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양떼가 볼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샘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절제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청빈의 자세가 전도자들의 윤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대우에 따라서 입장과 처지를 바꾸지 않게 처음 들어간 집에서 끝까지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도자는 반대와 배척을 받아도 배척자들이 받을 저주와 심판에 자신은 양심에 한 홀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확신에서 자기 발에서 티끌을 떨어버리고 나올 수 있는 당당하고 의연함을 가질 수가 있는 "하나님의 사자"로 세상 앞에 어엿이 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이 그립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