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은 역시 언제 가보아도 좋았습니다. 지난 화요일 노회모임으로 설악산을 다녀왔습니다. 옥녀탕을 지나 한계령 계곡에 접어들자 그 수려한 풍광에 눈이 확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연의 치유력을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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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대를 지나며 한계령 굽이굽이를 올라가는 설악의 깊은 계곡에도 봄기운이 완연했습니다. 간간히 보이는 생강 나뭇가지 끝엔 노란 꽃망울이 터지고 있었습니다. 그 봄기운에 취해 있다 차가 산굽이를 도는 순간 보인 음지쪽 준령들엔 아직도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한계령 정상 휴게소에 내려 내려다보니 거기엔 확연히 두 계절이 마주서 있었습니다. 양짓녘인 대청봉 쪽은 꽃소식이 오고 있었고, 음지쪽인 주전골 쪽은 눈 쌓인 겨울 산으로 있었습니다. 설악이라는 이름대로 3월의 설악의 묘미는 봄과 겨울을 동시에 보는데 있었습니다.
3월의 한계령 정상에서 봄 산과 눈 덮인 겨울 산을 동시에 보는 흔히 보기 어려운 절경에 취해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양지와 음지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3월의 한계령이야말로 축복의 자리에 대한 실증이구나! 축복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임하는 자리이며, 은혜 없는 삶이 곧 겨울이요, 인생이란 은혜의 자리에 서는 것에 사활이 걸려 있구나! 다윗의 집은 점점 강성하여지고 사울의 집이 점점 쇠하여 간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로구나!>
그리고 저 제사장의 축복이 떠올랐습니다.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이 백성들을 축복할 때,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라고 그 얼굴을 강조하셨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 목회도 이 은혜의 자리에 있는 목회와 교회가 되고, 우리 성도들의 가정과 산업도 이 은혜의 빛이 임하는 자리에 있기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리하여 3월의 한계령 꼭대기에서 힘써 은혜의 자리에 서기를 새롭게 다짐해 보았습니다.
지금 혹시 삶이 겨울과 같이 혹독해서 봄날 같은 삶을 동경하시진 않습니까? 결국은 인생은 자리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얼굴빛이 찬란히 비취는 은혜의 양짓녘으로 이사 오십시오. 예수를 구주로 믿으시므로 삶의 음지에서 축복의 양지로 옮기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이신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대상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빛을 의뢰하는 자력이라는 불신의 인생의 음지에 있으시다면 지금 곧 하나님의 은혜를 의뢰하는 믿음의 양짓녘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귀순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자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되기 때문 입니다.이 이치를 아직도 이해하시기 어려우시면 한번 3월의 한계령으로 떠나보시지요! 심령이 가난한 구도자로 말입니다. -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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