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강 해/대제사장의 다락방기도

하늘을 우러러

아브라함-la 2015. 4. 3. 08:04

주님은 다락방 강화를 마치시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실 때,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기도가 상달되기를 바라는 소원과 믿음에 합당한 기도의 자세이었습니다. 이 자세는 주님만이 아닌 히브리인들의 전통이라는 것은 주님이 바리새인과 대조한 세리가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기도했다는 말씀에서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도의 자세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기도하실 때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손을 드시는 것만으로도 언제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셨고 하나님과 말씀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도 이렇게 눈을 들어 기도해도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때 고요하게 눈을 감고 기도해도 임재 안에 있지 못해 중언부언하다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여 삼창을 해야 하고, 피아노 정도가 아니라 벤드를 동원하여 음악을 연주해야 기도가 됩니다. 이런 한국교회의 기도의 형태는 외국교회에는 참 생경한 한국교회만의 독특한 형태입니다.


우리의 이 기도의 형태가 일면 열심 있고, 뜨거워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기도의 영성이 그냥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만으로 기도가 되는 유대인들의 영성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방 전후와 육이오 전후에는 북을 쳐야 기도가 되고, 칠팔십 년대는 피아노를 쳐야만 기도가 되고, 지금은 그로도 충분치 못해 밴드가 음악을 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음악 연주해서 분위기를 잡아줘야 기도하는 영의 수준이 아니라 주님과 같이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수 있고, 거룩하고 영광스런 임재 안에 있게 되고, 마음과 소원이 보좌 앞에 금 제단에 바쳐지는 기도의 영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 이것은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이 뛰는 기도입니다. 이 형태의 기도가 바알종교로 대표되는 이방종교의 기도와 달리 소박함이 여호와 종교의 기도의 특성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 자세로 단지 세 마디 간구하자 하늘에서 응답의 불이 임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알선지자들 같은 유난스럽고, 길고 많은 기도가 아니라 단지 하늘을 우르르는 엘리야 같은 확신과 간절하고 소박한 기도가 우리기도를 하늘로 올리는 날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일 년에 두 번 갈멜산 기도회를 여는 목적중의 하나입니다. 갈멜산에서 이 수준의 영으로 기도하기는 배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과 같이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드는 것으로 기도의 워밍업이 끝나고 즉시 거룩한 임재에 이르시는 기도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