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

전쟁의 위험과 그리스도인

아브라함-la 2015. 8. 23. 19:03

2015,8,23, 주일강론     

본문 : 마5:9 

말씀 : 라인권목사

지난 4일 파주 비무장 지대에서 발생한 북한의 도발로 우리 정부는 중단했던 대북심리전 방송을 재게 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대북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방송시설을 타격하겠다며 경고로 포사격을 해왔습니다. 만약 북한이 우리 대북방송시설을 타격한다면 우리도 대응할 것이기 때문에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여파로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혹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전쟁으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이 희박한 이유

첫째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이해 당사국들-중국, 러시아, 일본과 미국-자국의 이익상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생각해서 중국은 이번 전승절에 중국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하여 우리 대통령을 공식 초청했습니다. 우리 대통령이 가야 중국의 면이 섭니다. 이런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동의할 리가 없습니다.

둘째, 북한의 전쟁 수행능력이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북한의 경제적 차이는 37배입니다. 우리의 국방비는 년 34조이고 북한은 1조라고 합니다. 경제적 차이가 10배 이상이면 전쟁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북한의 대남 심리전 방송시설이 이것을 실증합니다. 70년대까지 남북한 상호 성능이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에는 북한 방송 시설은 남한 스피커 성능에 묻혀서 무력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북한이 돈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셋째는 지금까지 남북관계의 긴장은 공히 남북한의 권력자들이 정권과 체제유지용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참화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이기건 한반도의 군비규모는 전쟁은 공멸의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반도에 전쟁 가능성이 희박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전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한반도

첫째, 전쟁의 승패는 반드시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있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장개석이 무기도 돈도 부족한 모택동 군에게 패했을까요? 미국이 베트남에 패전한 것,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패전한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정신무장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될 수가 있습니다.

둘째, 대부분의 전쟁은 사악한 권력자들의 선동에 놀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유례가 없는 사악한 독재 권력이 3대째 세습되고 있고 지구에서 가장 호전적인 집단입니다. 김정은과 그 수족들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릅니다.

셋째, 북한은 핵무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바벨론을 막대기로 쓰신 하나님께서 김정은을 막대기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성결에 이 민족의 안위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북한 공산주의 전쟁의 위험에 대하여 우리 한국교회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북한 공산주의 전쟁 위험에 대한 한국교회의 태도

한국교회에는 공산화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는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공산화 되면 교회는 폐쇄 되고, 참혹한 박해를 받게 되고, 학교에서는 무신론교육을 받고 자녀들에게 기독교 교육을 할 수가 없고, 재판도 없이 처형당하고 고문당하는 최악의 인권유린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당을 붉은 용의 세력으로 여기서 기독교를 반공으로 아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극단적으로 전쟁을 반대하여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극단적인 패배주의에 불과 합니다. 기독교는 박해 속에 기독교의 능력을 가장 영광스럽게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3백년 박해 동안이 기독교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후자는 순진한 이상주의 유토피아에 불과 합니다. 주님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세상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는 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창칼을 낫과 보습으로 만드는 완전한 평화의 나라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 재림 이후의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의 위험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저는 이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 산상보훈의 팔복에서 묘사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화평케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목케 하는 직분을 받은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셨습니다.(고후5:18) 따라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아니라면 진정으로 천국의 성품을 가진 것이 아니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화평케 하는 자라고 하면 이 민족이 화목할 수 있도록 화평케 하는 자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 대하여 존 스토트는 그리스도인이 화평케 하는 자라면 전쟁의 위험에 대하여 5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제 입장을 보강해서 조국의 평화를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말씀 드립니다.



전쟁의 위험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일

첫째, 우리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케 하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이 본질을 잠식하는 두 가지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전쟁의 위험과 공포를 사소하게 여겨 전쟁의 난폭함에 대한 감각을 잃는 것과 공산주의에 대한 패배주의와 비관주의로 전쟁의 분위기를 묵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기독교는 반공이다. 그래서 싸워야 하고 거기에서 오는 희생과 파괴는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은 화평의 본질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비관주의에서 군비경쟁에 나서게 하고, 적대감과 증오심을 부추기는 정치세력을 묵인하는 것은 화평의 본질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이 시청 앞에 모여 김일성 부자 타와 종북 타도를 외치는 것이 화평케 하는 것일까요? 화평케 하는 자는 싸우려 하기보다 화해케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는 전쟁 여론을 지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화평의 여론을 조성해야 합니다. “정부는 대중의 느낌에 반응을 보인다. 정부는 특별히 그 압력이 넓은 대중적 의견으로부터 올 때 영향을 받는다”-데이비드 오웬박사


둘째, 우리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전쟁에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면 안 됩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도는 응답과 관계없이 우리가 순종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뜻입니다.(딤전2:1-2) 우리는 공 예배에서 진정으로 이 땅이 전쟁의 위험에서의 구원과 평화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은 진실 된 자기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우리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의 공동체로서의 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이 화평케 하는 자요, 화평을 전하고 화목케 하는 사신입니다. 즉 평화의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이 신분과 나라를 반영할 수 있게 화평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임하신 상태를 세상에 반영하는 하나님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회가 불목하고 불화하면 어떻게 세상에 평화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는 할 말이 없는 입장입니다. 초대교회가 로마를 변화시킨 것은 교회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세계는 교회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보라 저들이 서로 어떻게 사랑하는가?” 우리 한국교회가 분열할 때에 이 6,25와 광주학살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서 화평의 공동체를 이룹시다. 작은 천국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교회에서 화목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 민족을 화목하게 하고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우리 한국교회는 죄인들과 화목을 이루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나오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k당신이 먼저 아들로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원수 된 우리를 대적하여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서 아들을 희생 제물로 삼아 구원하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은총, 은혜라고 합니다. 이렇게 은혜는 큰데서 옳은데서 내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 퍼준다고 비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할 일은 아닙니다. 독일교회는 동독에 이 예수님의 방법으로 대하여 통일의 물꼬를 열고 통일을 주도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손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하려고 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한국교회가 조국의 평화를 위하여 이런 희생제물이 되고 예수님의 태도를 가질 때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 땅이 전쟁을 그치고 평화를 오게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것만이 우리사회의 평화를 이룬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개인이 주님의 평화와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화평케 하는 것이 주님을 온전하게 본받는 구원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 때문입니다. 지금 조국을 살릴 수 있는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은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다 같이 성프랜시스코와 같이 조국과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를 이루는 도구가 되시기를 기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