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절은 다윗이 원수에게서 구원 받을 것을 확신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22-25절은 형제 이스라엘과 함께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서원을 갚는 축제의 제사를 드리겠다는 기도입니다. 즉 다윗은 고난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음부에 버리지 않고 구원하실 것과 승리의 날의 기쁨을 내다보며 기도하므로 죽음의 억울한 고난과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살아나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때에 이 시22편으로 기도하시며 아버지께서 다윗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 것과 같이, 당신을 원수의 칼과 개의 세력에서 건져내주실 것을 간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아버지께서 당신을 죄와 사망에서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이 확신으로 주님은 당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부활이 주님의 삶과 십자가에 어떤 의미를 가졌나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고난을 아시는 것과 같이 당신이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서 영광에 이를 것을 아셨습니다. 말하자면 주님은 우리가 장차 될 부활을 믿는 것같이 당신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이 주님으로 하여금 앞장서서 십자가를 행하여 나가시고. 십자가를 받아드리게 하고 십자가의 수욕과 고통을 견디게 하며, 십자가의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살아 나오게 하는 현재적인 능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부활은 현재적인 당신의 삶과 사역과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며, 이기고 살아내는 능력이었습니다. 따라서 부활과 부활의 소망은 장래의 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과 현실과 절망을 감당하고 거기서 살아나오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다고 하지만, 부활 없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이 십자가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영광이 되게 하며, 부활이 십자가를 이루게 하는 동력입니다.
따라서 부활과 부활의 영광은 미래적인 일 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의 현실과 현장에 임하는 현재적인 능력입니다. 이 부활과 부활의 소망으로 내 삶의 현실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고, 부활의 능력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으로 낙심과 좌절에서, 절망이아는 비존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오며, 죽을 것을 죽지 않는 것으로 썩을 것을 썩지 않는 것을 다시 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고난과 절망과 죽음 앞에서 부활의 소망으로 기도하며 십자가의 죽음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으로 드리는 기도가 다윗처럼 불사조와 같이 살아나오게 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으로 드리는 기도가 주님처럼 십자가에서 죽어도 사는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 나오게 할 것입니다. 낙심과 절망이십니까? 살지 못할 것 같습니까? 부활의 소망으로 기도하며 삽자가의 죽음을 살아내신 주님을 봅시다. 주님과 같이 부활의 소망으로 기도하기를 배웁시다.이 부활을 믿는 기도로 죽음을 이기고 새벽 이슬과 같이 영롱하게 살아 나오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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