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2, 26 주일강론
본문 : 마6:31-34
말씀 : 라인권목사
오늘은 불의한 청지기의 이야기로 말씀의 문을 열려고 합니다. 한 부자가 자기 재산을 청지기에게 맡겨 관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지기가 정직하지 못한 인사였습니다. 제 재산이 아니라고 주인의 재산을 함부로 축내서 주인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인이 와서 청지기를 불러서 정산을 보게 하고, 요즘 말로 하면 파면시키려고 했습니다. 청지기 직에서 쫓겨나면 밥줄이 끊어집니다. 생계가 막막합니다. 그래서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땅을 파자니 힘이 듭니다. 빌어먹자니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쫓겨난 후를 대비하여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차용증을 절반으로 차감해 주는 인심을 쓰더라는 얘기입니다.
생계 염려하지 말라
이렇게 인생은 살다보면 생계가 막막해 질 때가 있습니다. 실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가 파산 지경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혀 생계가 보장 되어 있지 않은 인생의 길을 시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계가 막막하여지면 걱정이 되고 염려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생계란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정을 모르는 바보가 아닌 담에 어찌 염려가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기도하는 것은 이런 걱정 근심과 염려의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걱정 근심이 있고, 염려 되는 일이 있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는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십니다. 이 말씀은 생계를 걱정하고 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인간의 형편도 아시고 염려되는 인간의 마음도 아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물정을 모르시는 것 같이, 마치 딴 세상 사람같이 생계를 걱정하고 염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왜 생계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이 말씀의 적용대상
그 답이 32절에 있습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니까 이 말씀은 생계를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적용대상에 제한이 있다는 거지요. 이방인들에게는 적용이 안 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없고, 자기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생계가 자기 노력과 능력에만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생계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대상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필요를 아시고, 사랑과 능력으로 돌보아 주시는 하늘 아버지시라는 겁니다. 누가 이 하나님의 자녀이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31절의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생계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자 하는 참된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계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 다는 뜻입니다.
사도들의 사례
그 대표적인 사례가 주님의 부름을 받아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한 사도들입니다. 이들도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들도 천사가 아닌 사람입니다. 즉 생계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사도들이 헌신을 결단할 때, 그리고 주님을 따를 때에 생계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증거가 제자들이 떡을 가져가기를 잊었을 때 걱정하고 염려한 것입니다.(마16:8) 그런데 주님은 사도들을 부르실 때에 있는 재산이나 생계의 모든 수단을 포기하고 따르게 하셨고, 사도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실 때에,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10:9,10)고 빈손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삼년 세월을 살게 하신 후에 마지막 밤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눅22:35을 봅시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 없이 보내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제자들이 삼년동안을 빈손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의 생계에 전혀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따라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이 인생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 사역에 요구되는 모든 것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지고 공급해 주신다는 언약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생계의 방안이요, 염려를 모르는 풍성한 삶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의 참된 의미입니다.(마16:7-10)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이치를 확신케 하시려고 떡을 늘어나는 이적으로 두 번 반복해서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전적으로 주님과 주님의 나라와 그 일을 구하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생계와 그 일에 소요되는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오히려 하고도 남게 공급해 주신 다는 주님의 제자훈련이 오병이어 이적의 목적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저의 확신이요 간증입니다. 저는 목회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나섰을 때 사흘을 굶은 적이 있습니다. 학비도 생활비도 전혀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계를 염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르심을 이룰 일을 염려하고, 그 일에만 매진했습니다. 일을 해도 생계가 아니라 소명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신실하신 주님께는 제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공급해 주셨습니다. 학비와 생활비만 공급하신 것이 아니라 여행에 필요한 것도 주셨습니다. 저를 좋은 사역지로 인도하셨고, 전임 사역을 시작 한 후로는 사역에 요구되는 것을 채우셨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일만이 아닌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바울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말씀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는 세상의 목회자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자기 인생이 되게 한 사람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에 대한 샘플이요, 모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생계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이 주님의 가르침은 첫째 이 세상을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자기 삶이 되고 인생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무엇을 하든 다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됩니다. 요리문답 제 1문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인생은 어차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뜻을 세워야 합니다. 뜻을 세우면 순종하면 생계의 염려의 시험이 옵니다. 이때 생계의 염려를 주께 맡기시고 다만 하나님이 주인 되게 삽시다. 그러면 그 뜻과 일을 이루도록 하늘 아버지께서 책임지실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말씀은 인생을 가장 가치 있고, 풍성하게 사는 참된 행복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인 만 바꾸면 됩니다. 염려를 바꾸면 됩니다. 생계의 염려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걱정되고 염려가 되어 기도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보장하고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무엇이 염려가 되십니까? 염려는 내 관심의 산물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나라의 일과 내 영이 염려가 되게 하시면 염려를 모르는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 생계가 염려되는 상황을 타계하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계를 염려해서 하나님과 그 나라를 버리면 도리어 생계가 어렵게 되지요. 이때 사는 길은 하나님을 찾는 것인데도 어리석은 백성들은 도리어 생계를 구하려 나갑니다. 이때에 그 모든 시도와 노력과 소득은 구멍뚫인 전대에 넣는 꼴이라고 하셨지요? 여러분! 진짜 생계가 어려우면 오히려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진짜 생계를 구하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염려하고 구할 것은 물질이나, 생계가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면에 요즘 어려운 교회들은 오직 전도가 길이라고 믿습니다. 전도에 순종하면 성령의 권능이 역사합니다. 전도하면 사람이 옵니다. 전도하여 예배자가 오면 사60:4-9말씀과 같이 재물도 옵니다. 전도하면 전도하게 영육의 강건함을 주십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은혜로교회 은혜지침 매일전도한만복기는 부담이 아닌 이 풍성한 삶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다음 주부터 사순절입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옵니다. 이제 떨치고 나가 복음을 전파합시다. 전도를 염려하고, 전도에 매진하는 교회가 됩시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염려하는 이 은혜의 방편으로 우리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풍성히 알아 가시고 체험해가는 삶이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다 같이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부릅시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십자가 밑에 나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 가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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