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하나님의 계획 선물로서의 땅

아브라함-la 2021. 8. 30. 23:22

021,8,29, 주일

본문 : 출6:6-8

말씀 : 라인권목사

 

    코로나만 아니면 김장을 붙이기에 꼭 좋은 날씨를 하고 있습니다. 올 가을에 이 코로나가 종식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 이름이 은혜로교회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 이름은 은혜로 교회로 한 것은 우리 기독교를 한 단어로 말하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의 아이콘 같은 교리가 칭의인데, 이 칭의의 은혜됨을 사도 바울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롬4:5,6) 일한 자에게는 은혜가 아니라 삯, 보수가 됩니다. 한 일이 없는데도 의롭게 여겨 주시기 때문에 칭의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걸 일컬어 이라고 하셨습니다.(롬 4:6).(4:6) 이 복이라는 말을 더 가슴에 닿은 말로 하면 행운이라고 합니다.

 

축복의 축복됨

우리는 여기서 축복의 개념과 축복의 축복됨을 발견합니다. 축복이 무엇입니까? 흔히들 축복받았다는 간증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봉사하고 충성하고, 헌금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셨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축복받기를 힘씁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칭의는 구원이지요, 이 칭의가 삯이 아닌 축복이란 말은 구원이 축복이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삯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죄, 칭의 새 생명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어 천국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축복은 기여와 공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분에 넘치게 좋은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축복의 개념이요, 이게 축복의 축복됨입니다. 축복은 우리 하나님께서 거저, 공짜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축복이 선물이라는 것은 아마도 충격적일 겁니다.

 

축복의 땅은 선물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8절을 봅시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이 본문에 준다는 말이 주기로” “주어라고 두 번 나옵니다. 이를 영어 성경은 “give”, “I will give”라고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의 선포는 오늘 본문과 같이 주시기로” “주기로” “주리라” “주어” “주는이라는 말씀이 반드시 나오는데 신명기에서만 이렇게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신다는 구절이 30개나 됩니다. 대표적으로 신 1:7, 5:31, 6:10,23, 같은 구절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을 네 공의로움이거나 "능력"때문이 아니다,라고즉 축복으로 불리는 풍성한 삶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게 성경의 확실한 증언입니다.

 

이건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땅에 대한 약속을 공부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누릴 축복, 풍성한 삶이 어떻게 확실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무진장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이 가나안 땅을 '너희들이 이 정도, 이 수준은 되어야 하겠다!' 이렇게 수준, 기준을 정하셨다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에게는 이 약속의 땅은 그림의 떡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약속의 땅을 선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것 같이 축복이라는 풍성한 삶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이게 기독교입니다. 구원이 선물인 것 같이, 그리스도 안의 풍성한 삶도 삯이 아닌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며 복 받을 겁니다. 예수님처럼 풍성한 삶이 되고, 하나님처럼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땅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고, 왜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선물로 주십니까?

 

축복의 땅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

첫째, 이스라엘은 그 땅을 받을 자격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아도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씨가 좋고 가문이 좋아서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히브리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자기들을 이방인들보다 의롭게 여겼지요. 그러면 이렇게 조상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보다 더 의로워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 당대에 노아의 아들들이 살아 있었는데도 바벨탑을 쌓은 이들과 다름이 없이 그가 우상을 섬겼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증거 합니다. 여호수아는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다른 신을 섬겼다”라고” 했습니다.(수 24:2)따라서 하나님께서 자격을 따지신다면 아브라함은 무자격이고 실격입니다. 아브라함이 명문이 된 것은 아브라함이 의롭고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명문이 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건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은 그들이 이방인들보다 더 공의롭고 정직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목이 곧은 완악하고 패역한 백성들”입니다.(신 9:4-6)광야에서 자기들의 구원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한 백성들입니다. 따라서 자격을 따진다면 이스라엘은 실격, 탈락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받을 자격이 안 됐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받은 것은 공로나 자격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자격이 안 되기 때문에 선물이라는 은혜를 베푸신 겁니다. 이렇게 구원도 자격이 아닌 선물이요, 풍성한 삶이라는 축복은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자격이 아니라 은혜요 축복입니다.

 

둘째, 능력으로 보아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받고, 차지할 자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 8:17을 봅시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가나안 땅의 재물을 자력이 아닌,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다는 겁니다. 그랬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가 된 백성입니다. 노예에서 벗어날 자력도 없는 백성입니다. 이들은 숫자로 보아도 가나안 땅을 정복할 능력이 안 됩니다. 이렇게 이들이 능이 없음을 실제로 보여준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입니다.. 가데스 바네 아서 돌아온 정탐꾼들이 불신앙의 보고로 가나안 땅을 악평하며 들어갈 수 없다고 할 때에 온 회중에 모세를 죽이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건 그들에게는 믿음이라는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믿음이 없어서 믿지 못해서 들어가면 죽은 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이 능력인데 중요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이 가데스에서 돌이켜 다시 광야로 돌이키게 하셨을 때에, 하나님께서 올라가라고 할 때는 안 가더니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실 때에 말씀을 어기고 약속의 땅에 올라가겠다고 하나님이 없이 자력으로 올라갔다가 도리어 가나안 사람들에게 패했습니다.(민 14:40.44-45, 신 1:44). 이렇게 이스라엘은 믿음의 능력도 군사적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 아이성 싸움입니다.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 승리 후에 아이 성은 작은 성이라서 이 삼천이면 충분하다고 자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충분하게 삼 천명이 치러 올라갔지만 여지없이 패했습니다.(수 7:3-5).(7:3-5) 이렇게 이스라엘은 믿음의 능력도 없고, 군사적 능력도 안 됐습니다. 이렇게 자격도 능력도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은혜를 베푸셔서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이라는 축복을 차지한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받은 겁니다. 가나안 땅은 능력이 아니라, 은혜, 즉 선물입니다.

 

이게 기독교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안 되는 패역한 죄인들이며, 능력이 안 됩니다. 자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아니면 안 됩니다. 삯을 내게 하면 못하고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물로 주시는 겁니다. 이걸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선물하셨습니다, 성령이 선물이며, 우리 구원이 능력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풍성한 삶도 능력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입니다, 자격도 능력도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은혜로 선물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이게 기독교인 겁니다.

 

땅을 선물로 주시는 은혜의 동인

그러면 이렇게 자격도 안 되고, 능력도 안 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상징되는 축복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 즉 그 은혜를 베풀게 하시는 동인은 무엇입니까? 이 은혜의 동인을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신 4:37-38은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너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땅으로 인도해 들여서라고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선택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자격도 능력도 없는 우리를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7:7-8절을 봅시다.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수효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조상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랑이 언약을 지키는 긍휼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자격이 안 되고 능력이 안 되는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에게 좋은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입니다. 이 사랑이 아들을 선물로 주시게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의 선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아들의 형상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예수님과 같이 살고, 하나님과 같이 풍성한 삶을 받게 하셨고, 살게 하시고, 누리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축복은 자격도 능력도 아닌 하나님의 선물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이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0:10)이 말씀은 구원이 선물인 것 같이 그 구원에서 나오는 풍성한 삶이라는 축복도 선물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지금 모두가 축복에 목이 말라 있습니다. 축복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렇게 풍성한 삶, 축복이 선물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받고 싶어 할 것이 아니라, 구원을 확신함 같이 축복 받음을 확신합시다. 그리고 축복은 삯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니 우리가 자격도 능력도 안 되어도 하나님의 사랑의 줄로 반드시 우리 예수님과 같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