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내 영혼의 수상록

그날 뜻밖의 전화 한통

아브라함-la 2013. 6. 12. 07:52

 

  화요일 밤 주보 원고를 쓰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자 알지 못하는 목소리의 여자가 대뜸 ‘동천리에 있던 교회 라목사냐’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반색을 하며 ‘경아’라고 자기 이름을 말했습니다. ‘경아가 누구지?’라고 기억을 더듬는데 ‘할머니와 살던 경아’라며 목사님 덕에 잘 자라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거였습니다. 할머니라는 말에 비로소 누군지를 기억하고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느냐고 물으니 인터넷으로 알아냈다는 거였습니다. 감사하다는 인사에 잊지 않고 전화 준 것이 고맙다며 아이들의 이름을 물어 기도해 주고 전화를 마쳤습니다.

 

 

전화를 끝내고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저를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그 아이네 일에 속 쓰리고 심지어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동천교회 때 권사님 댁에는 월세를 사시는 분들이 여럿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권사님은 그 어려운 일을 다 교회로 가져 오셨습니다. 그래서 위급한 아기를 병원에 보내 살리기도 했습니다.

 

 

경아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할머니 한 분이 손 자녀를 데리고 권사님 셋방에 들어와 사시며 교회를 나왔고 교회는 그분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쓰러진 할머니를 저와 사모님이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집 주인 권사님은 너무 부담을 느꼈는지 이장에 이야기해서 근처에 있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성심원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 할머니 가족들에게는 그게 더 유익했을 것입니다. 생활은 물론 학업까지 보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제 당혹감과 낭패감, 그리고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교인을 내 교회가 돌보지 못해서 천주교의 시설에 가게 했다는 자괴감으로 괴롭고 부끄러웠습니다. 이것은 지금껏 제 목회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아픈 기억이 나중에 교회에 큰 환난이 되게 한 신협을 설립하게 한 동기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경아는 저와 교회를 서운해 하고 나쁘게 생각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교회가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당시의 목사를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가 그 어려움과 상처가 많은 환경에서도 예쁘고 따뜻한 마음으로 자라주었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랑의 시각을 가졌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저로서는 그것이 참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상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한 번의 서운한 일보다 아홉 번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날 그 뜻밖의 전화 한통은 제게 한 줄기 빛이기도 했지만 지금도 지울 수 없는 목회적 부담과 한계와 도전을 다시 인식하게 했습니다. 천주교는 이런 문제들을 수용할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부족합니다. 또 다시 어려운 교인을 돌볼 길이 없어 천주교 시설에 보내야하는 아픔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이것이 우리교회가 성장해야 할 이유 중의 하나임을 우리는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교회 부설 복지시설을 위하여 기도할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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