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제 9계명이 특별하게 금지한 거짓말

아브라함-la 2013. 8. 11. 21:32

9계명을 두번째로 강론한 것입니다. 9계명은 현대인들의 고통과 조국교회와 우리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방안이라는 확신에서 올립니다, 은혜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20;16                                                                                                          말씀 : 라인권목사

할렐루야! 다들 평안 하시지요. 저는 선풍기 바람을 싫어하는데 요즘에는 선풍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금년 더위가 대단하기는 대단한 모양입니다. 내일이 말복인데 너무 무리들 마시고 건강하시기를 축복입니다. 거짓 증언은 재판을 무용지물로 만들 분만 아니라 사법을 살인의 도구로 만드는 사악한 입술의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짓말 속에 거짓 증거를 포함시켜서 금지 하신 것이 아니라 거짓 증거에 거짓말을 포함시켜서 금지하시므로 거짓증거를 입술이 범하는 가장 사악한 마귀적인 죄로 우선적으로 금지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죄를 하나님의 마음의 미워하여 이 죄에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최소한도 하나님이 두려워서도 거짓 증거 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법을 사탄의 도구가 되지 못하게 하려면 사법 살인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나 정부를 용인하지 않는 시민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것이 9계명의 사회적인 요구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지난 시간에 9계명의 우선적인 금지를 살펴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거짓증거에 포함해서 금지 하신 거짓말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우리 마음과 입술을 정하게 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모든 거짓을 다 금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거짓은 하나님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거짓이 금지 되었지만 거짓말은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두 가지는 간단히 말하고 9계명이 제일 강조하는 것을 자세히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자기의 이득이나 목적을 위하여 이웃을 참소하거나 무고하는 하는 것입니다.

삼하16:1-4 좋은 사례가 나옵니다. 다윗의 압살롬의 난으로 피난 가는 길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나귀 두 마리에 먹을 것을 싣고 다윗을 맞으려 나왔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은인 요나단의 아들이라서 다윗이 자기의 상에서 먹게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종만 나오고 므비보셋이 보이지 않자 다윗은 네 주인의 아들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시바가 자기의 주인을 모함해서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고 했다고 참소를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은 다 네 것이라고 재산의 시바에 주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절뚝발이라서 걸을 수 없는 없는 므비보셋을 떼어 놓고 와서 참소를 한 것입니다. 더 문제는 다윗이 돌아온 후에 이것을 확인하고도 재산을 시바와 나누게 했습니다. 시바는 다윗의 예민한 부분의 정치적 심리를 알고 이를 이용해서 주인을 이간하고 모함하고 무고하여 이득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야비하고 사악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모함하고 아첨하는 거짓된 입술을 미워하시고 끊으십니다.(시12:3) 하나님의 마음로 이 악을 미워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거짓말로 이웃을 기만해서 이득을 보려는 거짓말입니다.

제가 소년 때의 일입니다. 그해 가뭄이 심했던지 아버지가 저한테 오후에 가서 차례 물을 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논으로 가서 물꼬를 터서 물을 대고 있는데 아래 말에 사는 재너머 동네의 교회에 나가는 누나가 오더니 자기네 논이 머니 먼저 대자며 자기네 논 쪽으로 물꼬를 트고는 잠간 갔다 올 터이니 그때 까지 막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쪽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꼬에 앉아서 그 누나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해가 져서 어두워지는데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야 제가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서 물을 대고 돌아오니 밤 열시도 넘었습니다. 이곳은 무돌이 골짜기라고 불리 우는 실라와 백제 때부터 임진왜란에 이르기 까지 격전지인 아주 무서운 곳입니다. 저는 지금도 믿는 사람이 어린애를 그 외진 골짜기에 한 없이 기다리게 할 수 있었나 이해가 안 됩니다. 여러분 이게 불신자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거짓을 행하는 순간 하나님이 돌아서서 대적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이 불의한 입술에서 구원 받을 줄로 믿습니다.

 

 

셋째, 9계명이 특별히 강조해서 금하고 있는 거짓말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입니다.

소요리문답 78문은 “구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진실에 대하여 해로운 그 무엇이든지, 혹은 우리나 우리 이웃의 명에 훼손을 금하는 일입니다.”고 했습니다. 즉 진실을 해하는 모든 거짓을 다 금지 하시지만 특별히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을 금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 청교도 선조들은 거짓말 중에서 명예를 훼손하는 말의 죄를 특별하게 강조했을까요?

 

 

우선 남의 말 하는 것은 사람이 가장 쉽게 범하는 입술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지 잠18;8은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말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이기만 하면 대화의 내용이 남의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남의 말이 아니면 할 말이 없습니다. 남의 이야기 하면 시간가는 줄을 모릅니다. 잠11;13 “두두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 한다고 하셨고, 레19:16절은 너는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순간 이웃을 말거리로 삼는 것을 즐기고 있는 우리의 죄성을 하나님은 염려하신 것입니다.

 

둘째, 수근 수근 남의 말을 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험담하는 것은 사람을 가장 아프게 하고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오해를 받아서 피난 다닐 때 다윗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이 사람들의 수근거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로 구설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시31:20) 다윗은 이 사자와 같이 물어뜯는 구설에서 주님의 품으로 숨고 싶고, 날개가 있으면 이 인간들을 피해 멀리 광야로 날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이 너무 아파서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남의 험담을 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비수와 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런 자들은 혀 밑에 칼을 감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험담은 이렇게 사람을 아프게 하고 죽게 하는 것인데 이것을 장난으로 합니다. 좋아하고 즐깁니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지만 그 돌을 맞으면 개구리가 죽는 것입니다. 장난으로 하는 그 말에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날카로운 삭도와 같은 혀를 끊으십니다.(시52:2) 이런 끔찍한 일을 우리가 즐긴다는 사실이 아연하시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이 사악을 인정하는 것이 이 죄를 죽이는 길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수군수군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를 와해 시키고 오도하는 비극을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동경대지진이 있을 때에 조선 사람이 우물에 독약을 탄다는 유언비어를 퍼지게 하여 조선인을 학살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전쟁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헛소문을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출23;1에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드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듣는 것을 조심하시고, 전하는 것을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이웃의 명에를 훼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본질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기 대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고 이것은 성도는 이웃을 명예롭게 하기 위하여 산다는 뜻입니다. 이게 십자가 정신입니다. 이게 성도들의 본색인데, 남의 명에를 훼손하는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의 본색에 위배되고 우리 명예를 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9계명의 적극적인 요구는 이웃의 명예를 증진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명예를 증진하는 이는 이웃의 명예를 허는 죄에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만 금지한 것이 아니라 이웃의 명예를 해치는 글과 미디어도 금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현대는 미디어의 발달로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 뒤에 숨어서 글과 미디어를 동원해서 사람을 매도하고 매장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거의 일상화 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요즘 인터넷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부패하고 거짓된 존재인가를 여실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등장하자 제일 인터넷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공직에 있는 사람들과 정치인과들과 연예인들입니다. 인터넷에 비리나 부정을 올리면 순식간에 퍼지기 때문에 전전 긍긍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사건은 불의한 권력이 인터넷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입증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터넷을 바로 사용하면 부정과 부패를 감사하는 좋은 공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이기능이 얼마나 악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사건이 가수 타블로의 학력이 거짓이라고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한 ‘타진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집요하게 남의 성공을 시기하고, 헐뜯기를 좋아하는지를 유감없이 들어낸 사건이었습니다. 국정원 인터넷 조작사건은 얼마나 악의적으로 소셜 네트위크가 악용되고 있는지를 유감없이 들어내 주었습니다. 십알단이라는 걸 기억합니까? 이게 목사라는 사람이 자행한 일입니다. 인터넷 댓글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성공이나 불행을 시기하고 즐기고 있는 악마성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만이 아니라 이웃의 명예를 해하는 글과 미디어도 9계명을 범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는 죄라는 것을 확신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남의 말을 하는 것, 남을 뒤에서 가만히 헐어서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 미워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있어서는 안 될 부끄러운 일로 확신하시고 힘써 이 죄를 피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술로 이웃의 명에를 훼손하는 이 부끄럽고 망령된 죄에서 성별하고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남의 말은 칭찬이 아니면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는 하지 않는 다는 원칙을 세위시고 지켜나기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악인은 뒤에서 은밀히 허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고 싶으면 비겁하게 뒤에서 하지 말고 당당하게 앞에서 하세요, 본인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안하는 것이 바른 줄로 믿습니다.

 

둘째, 본인이 듣고 본 사실이 아니면 말하지 마십시오. 사실이라도 본인이 확인한 사실이 아니면 말하지 맙시다. 남에게 들은 것을 옮기지 마십시오. 특별히 신문 방송이나 인터넷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성급하게 믿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문이 처음 나왔을 때 미국의 한 순회 전도자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먼저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지금 대중매체를 이렇게 믿는 바보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주교가 뉴욕에서 강론을 하게 되어 공항에 도착하자 신문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혹시 주교님께서 뉴욕에 머무시는 동안 이곳의 명소인 나이트클럽을 한번 찾아보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이 말도 안 되는 악의적인 질문을 주교는 윗트로 받아쳤습니다. “도대체 뉴욕에도 나이트클럽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이틀 날 아침 뉴욕의 조간신문에 이 말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는데 이렇게 실렸다고 합니다.“주교가 뉴욕에서 한 첫 질문은 나이트클럽이었다.” 제가 부드럽게 말하기 위해서 이런 사례를 들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확인된 남매 간첩단 사건 같은 것을 보십시오. 이 사건이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심지어 주간지나 인터넷에서 주어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퍼 나르는 재생산을 아무렇게 않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세 번째는 합리적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1993년 10월에 서해 훼리호 침몰사건을 기억하십니까? 292명인가 죽은 대형 참사였습니다. 그때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로 민심이 흉흉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기자들이 “선장이 혼자서 나와서 도망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가족을 만나는 것을 보았다” “밀항했다” 이런 기사를 막 쏟아냈습니다. 더 우수운 것은 검찰이 선장을 지명수배를 하고 가족들에게 자수시키라고 종용했습니다. 방송은 이것을 기정사실인 것으로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런데 침몰한 배를 인양하자 선장의 시신이 통신실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주보에 올린 글을 그때 쓴 글입니다. 그때 우리 사회는 “설마 그럴 리가?”라는 것은 고사하고 “배를 인양해보고 말하자”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도 안하고 선장을 욕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에 나온 것만 믿고 함부로 판단해서 안 됩니다.

 

제가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명예훼손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식적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좋게 생각하는 훈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나쁘게 생각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논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부풀리거나 깎아 내려서 말하려는 본능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비밀을 지켜 주시고 할 수 있는 데로 허물은 덮어 주시고 가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땅한 바라고 믿습니다.

 

특별히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교회는 말을 중요하게 여기고, 조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딤전3장의 집사의 자격 중의 하나가 11절에 “참소 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지금 번역은 “모함하지 아니 하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교회를 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것이 정직하지 못한 입술의 말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판단하고 비판하게 하는 영을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지체를 누가 정죄하고 판단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대 심방 외에는 교인들과 함께 심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함부로 말하고, 비밀을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이 징계하셨어, 십일조 안하니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쓸데없는 의원이 되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제 가슴이 덜컹 덜컹합니다. 교회에서는 세워주는 말만 하십시오. 은혜 되는 말만 합시다. 그리고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좋게 생각하시는 훈련을 하시고 시험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불쌍히 여기고 덮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물며 고의적으로 교회의 지도자나 성도를 모함하여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우리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도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다 입술이 완전한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교회 안서도 말이, 말이 되고. 말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고 시험 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9계명 아래 자기를 두어서 입술에 허물이 많은 자로 이사야처럼 하나님께 엎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셔서 늘 입술을 억제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그대로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12:36) 교회는 천국의 지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상대방의 행복을 위하여 봉사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내 명예보다 형제의 명예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천국입니다. 교회에서 서로 명예를 지켜주고 높여 주시는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은혜로교회는 상함도 해함도 없는 천국 같은 은혜로운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최소한도 9계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에 우리 교회가 속했던 노회에 한 교회가 두 교회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교회에 주일학교를 충성되게 섬기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러데 이 처녀가 자꾸 배가 불러오는 것을 교회의 나이 많은 권사들과 여 집사들이 눈치를 챘습니다. 처녀가 애를 밴 것입니다. 그러자 목사님께 불만을 가지고 있던 권사들과 성도들이 목사님을 지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매가 사택을 자주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를 노회에 고소하고 배척 운동했습니다. 나중에 자매가 고백했는데 먼 친척 오빠가 왔다가 - 옛날에 다들 한방에서 지내지 않아습니까? - 사고를 내고 갔던 겁니다. 결국 교회는 둘이 되고 그 목사님 오십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 얼마나 억울하고 썩었겠습니까?

 

 

목사에게는 명예가 전부입니다.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는 무자비가 이렇게 목사의 명예를 더럽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시험 들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입술은 부패하고 거짓됩니다. 그러므로 이악한 말이 우리 입에 오를까 삼가 두려워합시다. 내 안의 이 거짓됨을 직시하시고 더욱 십자가 밑으로 나갑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거짓된 입술을 미워합시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 거짓되고 부패한 입술에서 승리하시고 구설의 난을 당하시지 않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은혜로 교회에서 말로 서로 명예를 높여주고 지켜주어서 상함도 해함도 없는 천국 같은 교회를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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