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강해

왜 욥기를 ?

아브라함-la 2024. 6. 20. 15:29

024,6,16 주일

본문 :욥1:1-5

말씀 : 라인권목사

오늘부터 욥기에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욥기는 유명한 성경이지만, 사실은 욥기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격인 앞뒤의 이야기만 알지, 욥과 욥의 세 친구와의 격론과 엘리후와 하나님의 말씀은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욥의 친구들의 말은 거의 같은 말을 고장 난 LP판 돌리듯 해서 욥기 전체를 강단에 올리는 성경 교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6년 전에 새벽 시간에 간단하게 욥기를 강해 하면서, 주일예배에 올리려는 마음이 있었지만, 오늘에야 욥기를 주일 강단에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욥기를 공부하려고 하는 건, 우리 기독자들이 한 번은 특별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 깊이 공부해야 할 주제들이 이 욥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얻는 일의 중대성

첫째, 욥기에서 우리의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그리스도를 얻는 일의 중대성과 복됨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욥기는 그리스도를 알고 얻는 일의 중대성과 그 복됨을 성경에서 가장 절실하게 깨닫게 하는 성경입니다. 이점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 욥기의 시작과 끝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앞에 말씀드린 것 같이 욥기의 프롤로고와 에필로그 격입니다. 이 두 부분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욥의 축복입니다.

 

욥기의 서막은 욥이 고난당하기 전의 축복입니다. 여기에 열거하는 욥의 부에서 빠진 게 있습니다. 그게 부동산입니다. 욥이 부동산이 없었을까요? 그가 시골과 성읍에 방대한 토지를 가진 대지주임을 알리는 소스들이 욥기 군데군데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동산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빼고도 욥은 요즘 말로 말하면 재벌입니다. 재벌에 다복합니다. 아들 딸 십 남매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욥 부부가 금실 좋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권력과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는 명예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욥기의 결론 부분은 욥이 고난 후에 받은 축복, 소위 갑절의 축복입니다. 욥이 이렇게 복 받았습니다,

 

욥에게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러나 이 욥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욥의 축복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이 그리스도를 얻으면 전득이요. 그리스도가 없으면 전실이요, 전무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욥의 소유라도 지불해야 합니다. 저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메디치 가문이 천국 가려고 지은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욥의 소유로도 살 수 없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욥은 어떻게 소득했습니까? 욥16:19-21을 봅시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보인이 높은 데 계시니라,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변백 하시기를 원하노니” 이렇게 하나님 앞에 변백 하는 입술로 소득 했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욥은 이 믿음이라는 한 길로 그리스도를 소득 하고, 그리스도는 전득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롬10:10) 욥의 소유로도 살 수 없는 그리스도를 단지 마음과 입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Amazing한 일입니까? 욥의 축복이 있어도 그리스도가 없으면 전무요, 그리스도가 계시면 전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을 황무지로 만들어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얻는데 이르게 하신 겁니다. 이게 욥의 고난의 의미입니다. 예수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는 일이 이렇게 중대하고 복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라고 그리스도를 알고 얻으려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예수가 아니면 전무이고 예수면 전득입니다. 이 중대성을 욥기에서 절감합시다. 이 예수를 믿음으로 소득 하는 이 도! 이 은혜를 욥기에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고에 대한 해답받은 인생이

둘째, 욥기에서 우리 인생고에 대한 해답받은 인생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다는 엘리바스의 말과 같이, 고난을 피할 수 없고 고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욥5:7) 욥기에는 욥의 인생고를 두고, 욥과 욥의 친구들의 치열한 고민에서 나오는 질문과 고뇌와 투쟁의 격론 있습니다. 인생고에 대한 이 질문은 우리의 질문요, 고뇌입니다. 욥기의 마지막에 장엄하게 등장하시는 하나님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 하나님은 욥의 고난에 대하여 내가 이런 이유에서, 이런 목적으로 고난을 주었다. 이렇게 속 시원하게 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네가 하나님이냐? 네가 하나님 해볼래”오히려 반문하셨습니다.(욥 40:9,10) 하나님은 욥에게 당신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장엄하게 선포하실 뿐입니다. 욥의 고난의 문제는 여전히 미궁입니다.

 

그러나 욥은 강림하신 초월 하시고 전능하고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을 듣자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만족했습니다. 해결된 겁니다.(욥42:5,6)마치 우는 아기에게 엄마가 오면 만사 해결인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충분하고, 만족하고 그것으로 이미 해결 받은 겁니다. 이게 우리가 욥기를 공부할 이유입니다. 저번에 말씀드린 것 같이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을 죽는 것보다 더 힘들게 하신 것을 성경과 교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가슴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이렇게 우리 인셍고를 다 이해할 수 없으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그것으로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해답이신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내 인생고를 하나님으로 사고합니다, 즉 믿음으로 사고하고 해석되는 겁니다. 이게 신앙함입니다. 이게 신앙을 깊게 합니다. 이렇게 욥기는 질문이 있는 인생이 되게 하고, 해답이 있는 인생이 되게 하며, 해답받은 인생으로 살게 해 줍니다. 욥기야말로 우리 인생과 신앙을 곰삭여 깊은 맛이 들게 하고, 완숙시켜 주는 성경입니다. 이게 우리가 욥기를 공부해야 할 이유입니다. 욥기에서 이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참된 위로자 상담자가 되게 

셋째, 위로가 없는 세상에서 참된 위로자와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학대받으나 위로자가 없는 것이 세상의 폐단입니다.(전 4:1)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대안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채워주시기 위해서 제자를 부르시고 보내셨습니다. 광야에서 주린 무리에게 떡을 나누어 주게 하신 것도, 이렇게 믿음으로 채워줄 수 있다는 걸 훈련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 즉 이 세상의 필요에 민감하고, 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서로 불쌍히 여기고, 서로로 격려하고, 권하여 세워 주게 하신 겁니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려고, 먼 길을 왔음에도, 욥에게 위로가 아니라, 비참한 욥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 같이, 많은 사역자와 신자들이 선무당 사람 잡듯 하는 “쓸데없는 의원”이 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입니다.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없는 의원이니라”(욥13:3,4) 위로한다며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죽입니다. 이게 어쩌면 교회 안이 세상보다 더 심합니다. 건듯하면 정죄하고, 징계받았다느니,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욥은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욥16:2) 욥기는 왜 위로자가 학대자가 되는지를 폭로해 줍니다. 욥기는 이런 우리를 고쳐서 하나님 같은 참된 위로자와 상담자로 세워 줍니다. 이게 욥기를 공부할 이유입니다. 이 욥기의 은혜로 학대받으나 위로자가 없는 세상에서 진짜 의원이 되어 사람을 세워 주고 세상을 치료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바로 이해하게 하는 능력을

그리고 욥기를 공부하면 따라오는 부가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그게 성경을 바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파악하게 하는 것입니다. 욥기는 성경을 바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만들어 주는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욥기만큼 성경을 비성경적이 되게 하는 일이 흔한 성경도 없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말을 그대로 적용하면 그것은 성경 같으나 성경이 아닌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축복받는다, 회개하면 축복받는다, 맞지요, 그러나 이게 욥에게 맞지 않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족장들 사도들이 다 이랬습니다. 그러나 욥에게는 맞지 않고, 잘 믿는 신자도 심지어 순교합니다. 그러면 망한 겁니까?

 

따라서 욥기를 제대로 공부한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무엇인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안목이 열리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욥기를 공부하는 부가적인 은혜이지만 이것은 축복 중인 축복입니다. 말씀이 열리면 모든 것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번 욥기 강해에서 이 말씀을 보는 안목이 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들음에 더욱 이성과 의지를 사용해야 하는 욥기 강해를 이 더위에 시작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 은혜를 사모하고 이 강해를 위해서 기도하고, 받은 은혜를 나누고 전합시다. 이게 저를 돕는 길이자, 여러분이 은혜받는 길입니다. 이 길로 주일예배가 이 욥기의 이슬에 흠뻑 젖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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