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잠긴 호수에서
-라인권-
팔당호에 가을이 오롯이 잠겨 시리다.
세월의 풍상 곱게 물든 호면의 황홀한 꿈을
물새 한 쌍이 무심히 가르는데,
저편 호반의 철길에
태백을 넘은 가쁜 숨 고른
서울 가는 열차를
물속에 거꾸로 선 검천 갈 꽃이 손 흔들고 있다.
삼복 내내 물색을 몰랐다.
서리 맞은 지금에야 물빛을 알겠다,
본디 내 빛은 無色이다
투명함이 내 本色이다
무색한 내가 색을 지니는 건
오로지 흐르고 모여 깊어짐에서인 것을.......
팔당호가 오롯이 담은 가을이 시리다.
늦가을 해는 深湖에 낙조를 담다 서울로 이울어
백자를 수운하던 길동무 황포 배를 그리는데,
양평 쪽에서 수면에 긴 그림자 드리운
가을에 타는 먼 산만 잔영에 우뚝하다.
옛적 분원의 도공은 이 물길 막히기 전
네 가을 물빛에서 분청을 빚고
낙향한 다산은 여유與猶를 뇌었을까?
늦가을 마음 둘 곳 없어 홀연히 찾은 나그네
가을을 담은 호수에서 제 빛을 찾고 간다.
깊어야 색을 갖는 제 빛을 찾아
풀빛 시든 호반 고개 넘는 가을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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