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삼하18:31-33
말씀 : 라인권목사
할렐루야!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 동안 자녀와 교회를 위하여 많은 희생을 지불하신 어르신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여생에 건강을 주시고 평안과 기쁨이 넘치시는 여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세월 호 희생자 부모들의 슬픔을 보면 “단장의 슬픔”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이 납니다.
진(晉)나라 환온이 촉을 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양쯔강 중류의 협곡(峽谷)인 삼협(三峽)을 지날 때 한 병사가 강가의 덩굴에 매달려 노는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이를 본 어미 원숭이가 슬피 울며 새끼가 잡혀 있는 배를 좇아 백 여리를 뒤따라옵니다. 그러다가 배가 강폭이 좁아지는 곳에 이를 즈음, 어미 원숭이는 몸을 날려 배위로 뛰어 들었지만 배에 오르자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배에 있던 병사들이 이상히 여겨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습니다. 새끼를 애타하는 애끓는 마음이 창자를 끊어낸 것입니다. 여기서 “단장의 슬픔”이라는 사자성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세월 호의 희생자들의 부모의 심정이 이럴 것입니다. 사고 25일 째인데 아직 시신도 건지지 못한 부모들의 정말 창자가 끊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이 땅에 흐르는 어버이들의 눈물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이렇게 자식 죽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식이 죽어서 창자가 끊어지고 애간장이 녹는 한 아버지의 아픔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아버지 다윗을 반역한 압살롬이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압살롬이 패하자 노새를 타고 도망치다가 긴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매달립니다. 이 보고를 받은 요압이 창으로 찔러 죽이고 구덩이 던져 버렸습니다.
이 기별을 들은 다윗은 “마음이 심히 아파서 성문 위층으로 올라가며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이 다윗의 슬픔은 옳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공의를 세워야할 왕의 태도가 아니고, 압살롬의 반역을 토벌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 헌신한 다윗의 군대의 지휘관들과 군사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승전하고도 마치 패전한 사람들 같이 조용히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압으로부터 뼈아픈 질책의 충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다윗의 슬픔에서 우리가 역역이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자녀를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에게는 이성이나 도리나 정의보다 앞서는 것이 자식 생각이요 자식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고 그에 따라서 행동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자식 생각과 사랑은 이성적이기 보다 본능적입니다. 그래서 자식 사랑이 무모하기도 하고, 무 경우 하기도 하고, 심지어 비윤리적이고, 불의하기도 합니다. 부모는 이만큼 자식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이 정도로 자식을 사랑합니다. 이게 부모 마음이고 이게 부모의 자식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부모인데 압살롬이 이 부모를 반역했다가 부모 앞에서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다윗이 얼마나 그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이 아버지의 단장의 슬픔이 오늘 어버이 주일을 지키는 우리 자식 된 사람들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최소한의 효도라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효도라는 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부모를 위하지 못한 다고 하더라도 최소한도 그렇게 자식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나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하고, 눈물이 나게 하는 일이 없게 내가 잘사는 것이 최소한의 효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부모의 마음을 생각할 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효도는 어떤 것입니까?
첫째, 육체적으로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자신의 몸과 생명을 소중하게 간수하도록 자중자애 하는 것이 최소한의 효도라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비참한 죽음은 다윗에게 다윗에게는 그가 반역한 것보다 더 충격이고 슬픔이었습니다. 그가 도망을 하든, 망명을 하든 살아 있었다면 다윗이 이렇게 아픈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부모 생각하면 내 몸과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라”는 말도 이런 뜻일 것입니다.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위험한 데는 가지 말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효도입니다. 부모님 생각해서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효도입니다. 부모님 생각해서 안전운전 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세월 호 희생자 부모님들의 슬픔과 고통을 보십시요! 자중자애 하여 몸과 생명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합시다. 효도는 자중 자애 하는 것입니다.
둘째, 도덕적, 윤리적으로 지탄받지 않고 사는 것이 최소한의 효도라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반역하여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올 때 다윗은 맨발에 머리를 풀고 울면서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서 도망했다고 합니다. 그때 다윗이 자기 심복들과 백성들 앞에 얼마나 부끄러웠습겠습니까? 결국 압살롬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반역과 불효의 기념비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18:18) 다윗이 이것을 볼 때 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적극적인 효도를 못해도 최소한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는 것 자체가 효도라는 것입니다. 지혜서는 미련한 자, 악인은 부모의 욕이고 지혜 자, 의인은 부모의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세월 호 선장은 부모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욕이 되었습니까? 이런 자식 되지 않는 것이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삽시다. 불의를 미워하고 의롭게 살아서 부모에게 근심과 욕이 아니라 자랑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잘되고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최소한의 효도라는 것입니다.
자식 잘되기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실 내가 성공해도 자식이 잘되지 못하면 성공이 아니고 공허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 걱정하고, 잘해드려도 내가 실패하고 안 되고 망하면 결국 부모님은 근심이고 가시방석일 것입니다. 이 부모 마음을 야곱에게서 잘 볼 수가 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짐승에게 찟겼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요셉이 살았다고 해도 믿지 않다가 요셉이 보낸 애굽의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했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가지 두려워했지만 아들 요셉 잘된 것 보려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효도는 내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하는 일에 근실하고 충성하는 것이 효도요. 자기 일에 전문가가 되고 성공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내가 행복하게 살는 것이 효도요, 쓰임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 효도입니다. 결국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내가 잘되는 것이 효도입니다. 내 성공이 부모의 성공입니다. 내 행복이 부모의 행복입니다. 내 영광이 부모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 장성한 나무 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딸들은 궁중의 식양대로 다름은 모퉁이 돌과 같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장사의 수중의 화살과 같은 자녀가 되어 부모의 자부심이요 행복이 되는 효를 드리는 자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효를 위해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는 사람은 자신을 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기를 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결코 자신의 몸과 생명을 허투루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의롭고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최선의 삶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생과 내생을 성공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정말 믿음의 사람이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다 의롭고 풍성하고 성공적인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부모를 영화롭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고의 유산은 믿음이라고 믿습니다. 압살롬이 신앙이 있었다면 그렇게 망하게 부모를 아프게 했겠습니까? 믿음의 사람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서 아버지의 슬픔이 되었지만 믿음으로 자기 몸을 간수하고 양심과 도덕을 지키고 최선을 다하니 결국 아비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효도의 기본이고 최고의 효도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효도는 부모의 마음을 아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압살롬이 조금이라도 부모의 심정을 헤아렸다면 그렇게 비참하게 죽고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제 몸 아끼고 자중자애 합니다. 부모심정 알면 지탄이 아니라 칭찬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모마음 알면 성공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부모의 기도를 알면 믿음으로 최선의 삶을 살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네 마음을 네게 달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녀가 됩시다. 그래서 최소한도 내 불행 때문에 부모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일이 없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월 호에서 보듯 이 땅에는 우리 부모님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에게 이런 고통과 슬픔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집에 모시지 못하고, 좋은 옷에 좋은 음식에, 요셉과 같이 애굽의 수레에 모시지 못해도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이 효도요, 의로운 자녀가 되어 이 땅을 건강하고 안전한 국가와 사회를 만들어 이 땅에 흐르는 부모의 눈물을 그치게 하고 눈물을 닦아 주는 자녀가 됩니다. 의롭게 사는 것이 효도요 잘되는 것이 효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의롭지 못해서 세월 호의 눈물이 흐르고 있지요? 의로운 자녀가 됩시다. 그래서 이 땅에 흐르는 어버이들의 눈물을 그치게 하고, 부모에게 근심걱정과 우환과 눈물을 닦아주고 마르게 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신이 잘되어 쓰임 받는 자녀가 되어 어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긍지가 되는 자녀가 되라는 것이 세월 호의 눈물 속에 맞는 어버이 주일에 이 땅의 자식 된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강 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율법 안의 삶 (0) | 2014.07.20 |
---|---|
2014년 5월 19일 오후 04:16 (0) | 2014.05.19 |
우리 교회가 꿈꾸는 부부 (0) | 2014.05.19 |
2014년 5월 5일 오후 07:50 (0) | 2014.05.05 |
바로의 나일 강에서 자녀를 지키라! (0) | 2014.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