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새벽이슬

유다의 메시지

아브라함-la 2016. 1. 26. 12:48

유다서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중 막내인 유다가 기록하여 모든 교회가 회람하게 한 공동서신입니다. 유다는 이 서신을 시작하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의 형제 유다”라고 소개 하고 있습니다. 이 유다는 자기 형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믿지 못하다가 부활로 말미암아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형제 유다는 당시 성도들에게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형제이면서도 믿지 않다가 믿게 된 것은 얼마나 극적인 간증꺼리겠습니까? 주님의 임재 속에서 태어나 주님과 함께 자라난 유다에게서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이 어떠셨는지,얼마나 궁금하고 듣고 싶었겠습니까? 그리고 유다에게는 말하자면 예수에 대한 토픽거리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따라서 유다가 요즘 “천국과 지옥 간증”이니 방탕하거나, 망했다가 일어난 유명인들이나, 연예인들과 같이 간증집회를 했다면 집회장소의 문을 뜯어야 했을 것이고, 그는 스타강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해 달라는 요구에 그는 항상 직면하고 있었을 것이며, 스스로도 그런 유혹에 항상 직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씻고 보아도 유다서에서 그런 이야기는 단 한 단어도 한 문장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유다가 전하는 것은 단번에 받은 구원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는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것뿐입니다. 이 구원의 도를 왜곡하는 사람들의 죄상과 받을 심판을 엄하게 선포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릴 적 예수님의 이야기는 몰라도 구원받을 수 있지만, 구속의 도리는 반드시 알아야만 구원의 지혜인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유다의 메시지는 다른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하고 전파한 메시지와 동일성을 가집니다. 사도들과 유다는 “구원을 받는 지혜인 믿음에 요긴한 것”외에는 기록하거나 전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기록한 방식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을 얻기에 요긴한 주님과 주님의 사역만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사람들의 영적인 호기심과 기호를 채워주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에 필요한 구원의 진리만을 전하고 파수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단에서 오직 구원의 진리만이 울려 나오게 강단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유다서는 이런 청중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몸만 기르는 목자들의 발을 벌을 엄하게 경고하는 성경입니다.


따라서 청중은 자신이 듣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해야 합니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은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 나의 관심과 소원의 표출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세상이 있고 그것이 소원이면, 거기에 관심이 집중 되어 세상 것을 좋아하여 그 말 듣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천국이 있고, 그 천국이 관심이며 소원이면 천국에 이르게 하는 구원과 그 천국을 누리게 하는 구원과 천국의 이치를 듣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중 자신이 이렇게 몸만 기르는 목자가 아니라 영을 기르는 목자가 되시는 것이 영원한 성공일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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