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새벽이슬

은혜, 은혜, 은혜!

아브라함-la 2016. 1. 29. 19:43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찬란하게 나타는 것이 한 사람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 받게 되는 사건입니다. 유다서의 발신인과 수신인에게 대한 소개는 이 은혜로 가득하며 이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디 예수를 “미쳤다”고 하던 유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것은 부활 때문입니다. 부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다는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주시기 전에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죽어 주시고 살아주셔서야 비로소 믿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 때문에 자기를 예수의 형제나 사도가 아니라, 예수의 노예로 인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가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된 성도들을 보는 인식이기도 했습니다. 유다는 성도들을 “부르심을 받은 자”로 알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들을 받고 거듭나게 하심으로 믿어 영생을 얻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발작으로 아들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믿어 영생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의 발작으로 구원 받는 성도는 또한 그 사랑으로 지키심을 받아 마침내 영화롭게 하시므로 아들의 구속 사역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해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부르심, 사랑, 지키심, 이 삼중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칼빈은 불가항적인 은혜라고 불렀습니다. 유다는 이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을 이렇게 축복합니다.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임한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아는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임하는 구원하시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가 얼마나 거룩하고 존귀한지를 알고, 그 은혜를 예찬하고 그 사람들을 축하하며 축복하기를 마지않는 것입니다. 은혜는 은혜의 렌즈로 성도를 보고 예찬과 축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거지요.


현대 교회에서 성도를 거룩하고 존귀하며, 축하하고 축복해야할 사람으로 알지 못하는 풍토가 있는 것은 유다처럼 자신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가 분명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닐까요? 자신이 구원 받은 것이 기적인 것을 아는 사람만이 한 사람이 구원 받게 되는 것이 얼마나 기적적인 은혜인가를 알게 되고 그때야 비로소 성도를 귀하게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체를 이룬 교회에서는 정착이나 양육의 걱정은 없지 않겠습니까?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에게 있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은혜 받은 성도이고 축복이 합당한 성도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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