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주 날개 그늘 아래

아브라함-la 2016. 7. 11. 22:01

016,7,10,주일강론 

본문 : 시91:1-6 

말씀 : 라인권목사


벌써 다음주일이 초복입니다. 제가 이때면 매년 한 번씩 안전한 삶을 위하여 주의하고 조심하며 삼가고. 상식과 예절을 지키고, 경건한 삶의 자세를 가지라는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이렇게 그 동안 안전한 삶을 위하여 믿음 안에서 우리 사람이 지키고 해야 할 도리를 다해서 하나님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주의하고 조심하고 삼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과 태도는 자칫하면 우리를 늘 조바심하게 하고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의 시를 쓴 다윗을 본다면 다윗은 하루하루를 마치 살얼음판위를 걷는 것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낮에 흐르는 화살”이라는 말씀에서 보듯 언제 어디서 적이 나를 쏠지 모릅니다. 화살이 사람을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흐르는 화살은 유탄이라고 번역하면 좋습니다. 겨냥한 화살이 아니라, 흐르는 유탄 같은 화살에도 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왕입니다. 그래서 많은 원수와 정적이 있습니다. 이들이 마치 새를 사냥하는 사냥꾼이 올무를 놓는 것 같이 함정을 파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식도 원수가 됩니다. 다윗도 사람이지 철인이 아닙니다. 고대에는 전염병은 전쟁보다 무서웠습니다. 특히 전쟁터는 위생이 좋지 못해서 더욱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이 하룬들 마음 편할 날이 있겠습니까? 어딘들 마음 놓을 곳이 있겠습니까? 성안의 궁중은 안전하겠습니까? 이 지경이면 늘 전전긍긍이고,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전전긍긍하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여유가 있고, 확신과 담대함으로 위험과 맞서 행했습니다. 5-7을 봅시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명이 네 오른 쪽에서 만 명이 네 왼쪽에서 엎드려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이와 똑 같은 말씀이 시3:5,6에 나옵니다. “내가 누어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이 골리앗에 나갈 때 조심 또 조심하는 태도가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 이렇게 과감하고 담대하게 나갔습니다. 이 확신으로 담대하게 전진을 달리고, 성벽을 뛰어 넘었습니다.(삼하22:30)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다윗은 평안하고 담대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에게 위험과 질병과 재앙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니지요. 본문에 전쟁의 위험, 질병의 위험 재앙의 위험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여유롭고 담대히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위험이 있어도 평안하고 담대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천재지변이 피하고, 총알이 피해가서 전쟁터에서 죽거나 부상당하지 않고, 질병이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노회 선교사 가운데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선교하시는 분이 페이스 북에 그곳에 선교하려 왔다가 죽은 대학생 이야기를 올려 심금을 울렸습니다. 놀러간 것이 아니라 선교하러 갔는데도 사고로 죽었습니다.


우리한국사회는 지금도 휴전 중입니다.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 간이들 많습니다. 대학 보내서 다 키운 줄 알았는데 M.T가서 죽고 군대 가서 의문사 당합니다. 세월호보세요. 살릴 수 있는 사람도 죽이는 세상입니다. 신자라고 위험이 병 안 걸리고, 전사하지 않고, 사고 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다윗처럼 여유롭고 담대히 맞서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를 다윗은 전능자의 그늘, 깃 날개 아래에서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은혜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에게서 이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믿음

첫째, 믿음은 하나님을 지존하신 전능자로 아는 것입니다.(1)“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여” 이 하나님이 평안과 담대함의 근거입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해할 자가 없습니다. 어떤 위험에서도 하나님은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우리 평안이요 담대함입니다. 둘째, 믿음은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이 세상 모든 존재와 생사화복이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10-12)자연도, 전쟁도 재앙도 질병도 그 분의 뜻과 손 안에 있습니다. 그 분이 친히 지키고 완전하게 통치하십니다. 그 능력으로 손으로 만물을 붙잡고 통제하여 당신의 뜻대로 되게 하는 겁니다. 이를 섭리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아니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마10:29,30) 이 뜻과 섭리 안에서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이요, 모든 것이 선을 될 것이기 때문에 평안하고 담대한 것입니다. 

 

셋째 믿음은 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의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존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여 아들을 주시는 구속의 하나님이시고, 진실하여 모든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4) 이 은혜를 “ 그늘” “ 깃, 날개 아래”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전능한 하나님을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2)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사랑하시며 내게 진실하심을 믿는 것이 재난 앞에서도 잠들 수 있게 하고, 전쟁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했습니다. 이 믿음으로 나가는 다윗은 마치 사슴의 발과 같아서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적진을 달리고 뛰어 넘을 수가 있게 했습니다. 이 믿음이 다윗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삶의 위험 앞에 조바심하며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사고 날까 운전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걸으면 안전합니까? 추락이 두려워 비행기 못타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동차는 비행기보다 안전합니까? 사고 날까 조마조마하여 자꾸 백미러 보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없는 운전을 하면 더 위험합니다. 애들 학교 보내 놓고 마음 놓지 못합니다. 사고 날까 수련회나 캠핑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위험 부담 때문에 해외 여행 못 가고, 위험 부담 때문에 착수할 것을 착수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방어적으로만 일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이 만물이 지으신 목적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백성이 중심이 되게 그 지혜와 능력의 손으로 붙잡으시고 완벽하게 통치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이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 아니라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진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나의 피난처요 요새시요 내가 의뢰하는 산성과 방패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우편보좌에서 간구하시는 주 날개 그늘 아래 우리를 두셨습니다. 이 은혜의 날개 아래 있는 우리를 누가 해하겠습니까? 누가 이 사랑 끊겠습니까? 이 은혜 안에서 모든 것이 선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눅21:18)고 하신 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세상에서 위험과 환난을 당할 때에 주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고 숨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험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14) 위험에서 세상을 찾고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같이 위태할 때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에게 그늘이 되시고 그 깃으로 덮어 주십니다. 친히 그늘이 되셔서 낮의 해가 상치 못 하고, 밤의 달도 해치 못하게 하십니다. 그 사랑의 나래 아래서 지친 우리 영혼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덮어 주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위험한 때에 하나님을 피난처와 요새로 삼아 하나님께로 피하여 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세상에서 위태한 일과 환난을 당했을 때에 내가 하나님의 뜻과 손안에 있음을 알고 확신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 날개 아래 있는 우리를 손댈 자가 없습니다. 머리털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풍랑이 오면 더 빨리 가게 할 것입니다.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죽는 것도 선하신 뜻 안에 있습니다. 이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태 한 때에도 내가 이 하나님의 뜻과 손이라는 주 날개아래 있음을 아시기를 축복합니다.


따라서 믿음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 할 때에 기도로 주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세요.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겠고 영화롭게 하리라” 위험과 환난이 있으나 우리에게는 전능한 하늘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는 그 분께 나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의 구름이 몰려 들때 기도로 나갑시다. 기도는 주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쉴 수 있습니다. 거기서 위로받고, 새 힘을 얻고, 거기서 하나님의 구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세상이 손대지 못하는 주 날개 그늘아래 있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세상에서 위험과 환난을 당할 때에 주 날개 아래서 얻은 확신과 소망으로 작아지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나가는 것입니다. 주 날개 아래서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과 안식을 얻은 사람, 거기서 소생하고 회복된 사람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이 거침이 없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적진을 달리고 성벽을 뛰어넘은 비결입니다. 이 비결은 가진 사람은 다윗과 같이 위험과 환난에서 승리하고 영광에 이를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은혜로 가족은 지금 우리가 이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고, 주 날개 아래 있게 하신 것을 확신합시다. 세상은 참 험하지만 우리는 주 날개 그늘 아래 있습니다. 이 주 날개 그늘 아래서 평안을 누리십시오, 주어진 삶을 즐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아이들 말로 쫄지 말고 어떤 일에도 확신과 담대함으로 맞서 나갑시다. "주 날개 밑 내가 평안이 쉬네를 다같이 찬송합시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몰아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평안이 쉬리로다 주 날개 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거기서 영원히 살리" -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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