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강 해/새벽 정신으로 읽는 욥기 강해

욥을 지탱한 기둥

아브라함-la 2018. 9. 12. 22:24

욥기의 22막은 일대 반전으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사탄의 거듭된 공격에도 의연하게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돌리던 욥이 돌변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일을 저주하는 건 못난 아들이 부모에게 왜 날 낳았느냐?’고 하는 것과 다름없이, 자신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굳게 믿음을 지키던 욥이 돌변 하여 생일을 저주한 것이 의아할 지경입니다. 무엇이 욥으로 하여금 이렇게 갑자기 무너지게 했을까요? 그 까닭을 설명하는 말이 1절의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앞으로 화자가 바뀔 때 마다 계속되는 대답하여 이르되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즉 욥이 대답했다는 겁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대답한 겁니다. 칠일 칠야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말없는 말과 시선으로 욥을 정죄한 친구들에게 화를 발한 것입니다. 이렇게 욥이 친구들의 정죄 앞에 맥없이 무너진 것은 지금까지 욥을 지탱해 준 기둥, 또는 욥의 최후의 보루가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하게 해준 것이었습니다.

 

그 욥의 기둥이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자기 의라는 것입니다. 욥은 죽어도 자기 의를 놓지 않겠다고 합니다.(27:6) 자기 의는 욥의 성이었습니다.(30:14) 자기가 의롭다, 자기가 옳다는 이 자부심, 이것을 부정하고, 공격하니, 욥은 마치 작살 맞은 뱀장어같이 못 견디고 무너진 것입니다. 진정한 성자는 자기를 가장 비천한 죄인으로 인식하는 사람인데, 욥은 스스로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교만한 성자였던 겁니다.

 

자기가 옳다는 이 기둥이 그 참혹하고 혹독한 큰 재난에도 의연하게 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욥이 고난을 당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 병은 예리하게 맞고, 광야가 되어야만 치료되기 때문입니다. 이 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병이 치료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품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 자기 의를 버렸는지! 즉 자기가 죽었는지의 시금석이 무엇일까요? 누가 내게 틀렸다고 하고, 나를 옳지 못하다고 할 때의 나의 반응입니다. 내가 틀렸다고 하는 말이 나를 못 견디게 하고, 나를 욥처럼 폭발하게 한다면, 내가 살아있는 겁니다. 인생은 본래 죄인입니다. 인생에게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이걸 인정했다면 내가 틀렸다는 게 대수겠습니까?

 

이게 오늘 새벽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할 문제입니다. 지금 나를 지탱하는 기둥, 내 최후의 보루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내 의가 남아 있다면 나는 욥과 같이 광야가 되도록 하나님께 예리하게 맞는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자기 의라는 기둥을 스스로 뽑아내는 길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