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7,21, 주일강론
본문 : 마7:24-27
말씀 : 라인권목사
지금 회개할 줄 모는 저 악랄한 일본의 광풍이 몰려왔는데, 태풍까지 왔지만 이번 태풍은 큰 피해 없이 이 땅의 가뭄만 해갈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저 일본의 문제도 모든 것이 합력해서 이 땅에 선이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고향 아랫집에 살던 죽마고우 가있습니다. 이 친구가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제게 톡을 보내는데 “평생 보관하세요.” 라는 톡이 몇 번 왔습니다. 지난 주간에 온 것은 건강 10훈으로 시작해서 보이스피싱 피하는 법, 50가지 음식 상식, 편리한 생활의 지혜, 늙지 않는 방법, 공복에 물 한 잔의 효과에 이르기까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로 가득합니다. 지금 이런 정보 글들이 SNS상에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정보 과잉시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글 넘치는 정보과잉 시대
이런 정보들이 혼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만 이런 정보, 글들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 나름 과학적 근거가 있고, 옳고 좋은 말들입니다. 이렇게 좋은 정보를 생산하고, 좋은 글을 쓰고, 올리고, 퍼 나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글 참 좋다!’ 그래서 올리고 퍼 나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마음이고 이렇게 좋은 정보와 글들이 넘치니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고, 정의롭게 되고, 행복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병원은 만원이고, 개인도 사회도 개선되거나 발전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왜 이렇습니까? 사실은 읽지도 않을뿐더러, 읽어도 실천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느니, 말로 떡 하면 세상사람 다 먹인다느니, 이렇게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속담과 격언이 차고 넘칩니다.
산상보훈이라는 명약도 듣기만 하면
그렇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의 저 유명한 산상보훈의 결론입니다. 산상보훈은 우리 기독교의 근본이며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교훈을 주신 후에 이 말씀을 듣고도 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상 깊게 마음에 새기도록 두 건축자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세운 것 같아서 큰 비와 바람과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지만,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것 같아서 큰 비와 바람과 창수가 나면 무너져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산상보훈을 약이라고 한다면 유비가 없는 명약이지요, 이 명약이라도 먹지-행하지- 않으면 말씀의 효과를 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 주님의 비유에서서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인생 병
그 첫째가 우리 인생이 해결 받지 못하고, 개선되고, 발전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의 가장 큰 관심이 건강입니다. 건강하려면 운동해야한다, 이거 다 공감합니다. 그래서 가정마다 운동기구 하나 씩 없는 집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사택에 있는 자전거 90년대에 산 것입니다. 뉴스나 드라마 볼 때 타면 꿩 먹고 알도 먹는 게 되지만, TV 보면서도 안 탑니다. 그래서 운동기구가 아니라, 옷걸이가 됩니다. 이렇게 공부해야 산다. 노력해야 성공한다, 알면서도 못합니다. 알면서도 못하니 늘 만족하지 못하고, 불편합니다. 몰라서 못하고, 안돼서 못하는 것 아닙니다. 하면 합니다. 안 하는 것이 병입니다. 안 해서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병 고쳐야 삽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자해행위가 됨
둘째, 이렇게 듣고,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 병이지만. 우리 주님이 이 건축자의 비유에서 진짜 강조한 것은 듣기만 하고,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자기 인생의 금생과 내생을 파괴하는 자해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했습니다. 지은 집이 오히려 재앙이 된다는 것입니다. 안전과 안락을 위한 집이, 도리어 가족을 죽이고, 상하게 하는 재앙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며 어떻게 재앙이 됩니까? 먼저, 자기가 나빠집니다. 의지가 약해지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습관이 됩니다. 심지어는 비전을 갖지 못해서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막나가는 인생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지 못합니다. 직업을 가져야 할 때에 일할 능력을 갖추지 못해서 일을 갖지 못합니다. 결혼할 준비가 안 됩니다. 노후가 준비가 안 됩니다. 심지어 마지막 심판대에 설 준비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자기를 자해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게 인생 병입니다. 이 병으로 망합니다. 누가 나를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사탄도 나를 망칠 수 없고, 죄만 없으면 하나님도 나를 망하게 하실 수 없으십니다. 나를 망치는 것은 오직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망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인생이 알면서도 행하지 않아서 금생과 내생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어서
바로 여기에 우리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 인생이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행하는 것과 행하지 못하는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게 지혜롭지 못하고 미련하고 어리석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해를 위하여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신학을 마치고 처음 부임한 교회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분! 좀 나아지면 교회 안 나오고 다시 마셔요. 그래서 제가 심방 가서 독한 말을 했습니다. ‘냇물에 고기 통을 두면 거기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고기들을 보면서도 계속 들어가더라. 술이 당신 죽이는 줄 알면서도 그거 계속 먹는 거 이성 없는 짐승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 당신 이 나이에,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 두고 죽으려고 하냐? 그 다음 주일에 다시 교회 나옵니다. 그러나 이걸 반복하다가 결국 간경화로 죽었습니다. 이렇게 인생이 미련하고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를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지혜가 행하게 하여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실천하게 하는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결과를 내다보고 그 결과를 뼈저리게 절감하는 것
본문의 “지혜로운”은 문자적으로는 “생각이 깊은 것”입니다. 즉 결과를 통찰하는 생각입니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큰 비와 바람과 창수가 날 것과, 그것에 대비하지 못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내다보았기 때문에 힘들어도 튼튼한 반석위에 기초를 닦아서 집을 지은 것입니다. 이게 지혜입니다. 그 곳이 우기에는 물이 차는 지역이기 때문에 기초를 튼튼하게 해서 집을 짓지 않으면 그 집이 무너져서 안전과 안락을 도모한 집이 도리어 가족의 생명도 잃게 하는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을 내다본 것, 즉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일이 내게 닥칠 것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래서 튼튼한 기초의 필요성을 점감했습니다. 이게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깊이 생각하세요. 공부 안하는 결과를 절감하세요. 내가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내 장래가 없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심판 날이 온다! 이걸 뼈 속 깊이 절감하는 것이 지혜이고 이 지혜가 행하게 만듭니다. 이 지혜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믿음은 이것을 내보고 알게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이 되고 원이 되는 것
그리고 지혜는 이렇게 결과를 알고, 절감하여 홍수가 나도 가족에게 안전과 안락을 주는 집을 원하고 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말로는 절치부심, 切齒腐心, 외신상담臥薪嘗膽하는 것입니다. 오 왕 구천이 교만해서 방심하다가 월 왕 부차에게 패하여 종이 되었을 때, 나무 단 위에서 자고 쓸개를 핥으며 자신의 실패를 반성하고, 재기를 다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부차를 이기고, 그를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한이 되고 원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을 평생 닭이 울면 통곡했다지요? 그래서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서 순교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게 지혜입니다. 이 애통,이 원! 이 한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지혜가 없어서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읽고, 기도하기를 이렇게 한하고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복 받기 원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 되기를, 주님처럼 되기를 소원하는 이 지혜를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행하기를 결단하는 것이 행하는 지혜
그리고 이렇게 그 결과를 뼈저리게 절감해서 그것을 행하기를 결단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결과를 분명하게 보면 결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수가 날 것을 보면 반석위에 집을 짓기를 결단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단이 무엇입니까? 다니엘과 그 친구들을 봅시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우상이 포로 되게 한 죄임을 깨닫고 죽어도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기를 결단했지요. 그래서 먹는 것도 가렸습니다. 왕의 우상 앞에, 풀무 불에도 굴하지 않고, 사자 굴에도 기도합니다. 즉 결단이란 죽기로 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인생을 거는 것이 결단입니다. 이렇게 죽기로 하면 이상하게 죽지 않고 도리어 사는 것입니다.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은 한 번도 이렇게 목숨 걸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결단하지 못해서입니다.
이 결단이 지혜입니다. 이 결단이 능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나를 따르라”는 이 결단입니다. 주님은 어부 되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를 결단을 요구하셨습니다. 이 결단을 하면 주님이 어부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믿음은 이 결단합니다. 이 결단이 살리는 지혜입니다. 결단이 실천하는 지혜입니다. 이 결단이 없어서 행지 못하고, 변화되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은 것, 아는 것, 계획한 것, 기도한 것, 배운 것을 행하기로 결단합시다. 그리고 주님께 힘을 주시기를 기도하세요. 그러면 주님이 도와 주십니다. 힘이 되십니다. 주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됩니다. 변화 됩니다. 성장합니다. 이러면 대우가 달라집니다.
결단하고 행하면 대우가 달라져
우선 내가 나를 대접하게 됩니다. 자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자신을 존중하게 됩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긍정적이 됩니다. 평안해집니다. 건강이 달라집니다. 경제가 달라집니다. 인격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집니다. 환경도 나를 대우합니다. 하나님이 대우하십니다. 이걸 축복이라고 합니다. 이 축복이 옵니다. 그래서 해결됩니다. 변화됩니다. 성장합니다. 영원이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대접, 이 대우 받는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은혜로 가족여러분! 지금 우리는 만족하십니까? 지금 우리가 이 침체를 벗지 못하는 건, 은혜로 은혜생활 지침, 이 간단한 것 행하지 않아서입니다. 여러분! 인생, 사업! 이대로 좋습니까? 이렇게 불만의 풍선껌이나 불며 사시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가 창수, 즉 환난의 때, 마지막 심판 날에도 안전하고 평안한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행하지 않는 인생의 비극을 보이셔서 행하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장래를 알고 절감 하는 이 지혜를 가집시다. 믿음으로 하지 못하고 되지 못하고, 이르지 못함을 한 하고 기도가 되는 이 지혜를 가집시다. 믿음은 죽기로 하기로 결단합시다. 믿음은 이 결단입니다. 이 결단이 실천의 지혜입니다. 벌써 칠월도 중순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결단하고 일어나 실천의 길을 걸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결단에 주님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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