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하나님의 기쁨 그 영적 예배

아브라함-la 2020. 8. 9. 18:13

2020,8,9,주일강론

본문 : 롬12:1-2

말씀 ; 라인권목사

 

        한 주간 은혜들 많으셨지요? 입추가 지나고 이번 주말이 말복입니다. 이제 곧 더위가 가시고 찬바람이 날 터인데, 이 찬 바람에 코로나도 가셔서 중단한 찬양예배가 회복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예배가 구원의 목적입니다.(5:3) 구원이란 예배 자가 되게 하여, 예배자로 성장해 나가다 천국에서는 완전한 예배 자가 되게 하시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은 당신을 어떻게 예배해야 할지를 레위기를 통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고, 이 예배 법을 따라서 드리는 예배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열납 하셨습니다.(1:9,13,17)

 

예배는 호황인데

이렇게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제사를 좋아하셔서 이 제사 드려주기를 바라고 기다리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제사와 제물이 부족해서 너희들 더 많이 제사를 드려라! 더 많은 제물을 바쳐라!’ 이런 신 데는 단 한 군데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는냐”(50:8-13)고 하시며, 제사보다 회개를 기뻐하시고, 제사보다 순종과 인애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51:16,17,삼상15:22,6:60)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예배는 많고 예배 자는 많지만, 참된 예배와 참된 예배자는 찾기가 어렵다는 탄식이며 한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호황이어도 참 된 예배와 예배 자는 보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 주님도 하나님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4:23)

 

신약의 예배법 

오늘의 본문은 이런 실정에 있는 우리게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레위가 구약의 예배법이라면 오늘의 본문은 신약의 예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예배 법을 레위기 한권을 몽땅 할애하고, 출애굽기와 민수가 신명기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은 이것을 단 두 절로 가르쳤습니다. 참된 예배란 구원의 은혜에 응답하여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헌신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하여 "제물"이라는 동형론을 사용해서 산 제물이라고 칭하고 이를 신약적으로 정리해서 영적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이 영적인 예배가 우리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되도록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이 세상을 따라서 엄벙덤벙 되는 데로 살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산제물이 되는 삶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신령과 진정의 예배요, 이 예배가 우리 하나님의 기쁨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하나님은 이 영적인 예배를 원하시고 기뻐하실까요?

 

첫째, 산 제물은 한 사람을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그러므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대속, 대행과 대형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맏아들이신 아들의 형상을 이루도록 구원받았습니다. 이 은혜의 감격은 더 이상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살리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를 바치는 산 제물이 되게 합니다. 이것은 지금 사도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의 가능성과 자랑하던 것을 다 분토와 같이 버리고, 오직 주님과 복음과 교회를 위한 산 제물이 된 것은 박해자이며 무죄한 피를 흘린 죄인 괴수인 자기를 살리셨다는 이 감격 때문입니다. 이 감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배자가 되게했고, 자원적인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예배가 나옵니다. 예배는 이 감격, 이 감사, 찬양, 헌신과 순종을 드리는 결단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이 고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 감격, 감사, 찬양, 헌신을 고백하고 결단 하는 것을 공 예배라고 합니다. 이 감격이 있고, 이 감사가 넘치고, 이 찬양과 헌신의 결단으로 하는 예배가 참된 예배이며 이 예배에 하나님이 임하셔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예배는 먼저 이 감격과 감사와 찬양과 헌신이 있는 참된 예배자가 될 때 가능합니다. 이 사람이 되어야 예배가 있고, 공예배가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됩니다. 바로 이 사람! 이 예배, 이 예배 자가 우리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이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깊이 아시기 바랍니다. 구속의 은혜를 깊이 알아 은혜의 깊은 감격이 있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요 즐거움이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구원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를 바치는 삶이 곧 산제물, 영적인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공 예배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삶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하고 섬기는 것이요, 이게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예배입니다. 이게 산 제물입니다. 제물은 죽어야만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제물은 한 번 죽은 것이 아닙니다, 먼저, 단 칼에 죽입니다. 그 다음 가죽을 벗깁니다. 이게 두 번째 죽음입니다. 그리고 각을 뜹니다. 세 번 죽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단에 올려서 불태웁니다. 이렇게 죽고 또 죽어야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를 바치는 것은, 먼저 자기가 죽어야 가능합니다. 자기를 위하고 싶은 자기. 자기를 지키고 싶은 자기, 자랑이며 자부심인 자기 이 자기가 죽여야 비로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는 참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자기를 제물삼고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 산 제물이 됩니까? 수행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십자가에 화목제물이 되신 이 십자가의 은혜로 아담과 같이 자기를 위하려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가며 자기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바치는 산 제물이 됩니다. 이 삶이 진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예배하는 영적인 삶이기 때문에 영적인 예배라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이 영적인 예배-거룩한 삶-를 드리도록 아들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 영적인 예배의 본이 되게 아들을 십자가의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로 아들이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되신 것 같이 우리도 이 은혜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제물이 되고, 이 아들을 본 받아 제물이 되는 삶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게 우리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산 제물이 된 성도를 당신의 기쁨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산 제물 된 영적인 예배자가 하나님의 기쁨이십니다. 이 헌신 된 삶이라는 영적인 예배가 하나님의 기쁨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주 날 위해 그 귀하신 몸 버리사 이 내 몸을 피 값으로 사셨으니 내 생명도 아낌없이 드립니다!” 이 고백이 있는 예배자가 되시고, 이 고백이 삶이 되시고 생활이 되는 영적인 예배로 우리 하나님의 기쁨이요 만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산 제물 되는 삶이 공 예배를 예배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를 바치는 삶으로 준비 되고, 이 제물이 되는 삶으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일에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한 주간을 자기를 부인하고 산제물로 삽니다. 이것이 공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이 은혜로 한 주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영적인 예배를 성공하게 하며, 이것이 영원한 예배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영적인 예배가 없으면 공 예배는 헛것이 되고,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망령된 예배가 되게 합니다. 역사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삶이 없어서 예배를 헛것으로 만들고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조롱 받게 해왔습니다. 미국 남부 인들이 경건한 예배자들이며 신사입니다. 이 사람들이 흑인노예해방을 반대해서 전쟁했습니다. 남북전쟁 후에도 KKK단이라고 해서 흑인들을 린치하고 죽이는 만행을 십자가를 들고 감행하며 거룩하게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이득을 섬긴 것입니다.

 

이게 남의 이야기일까요? 6,25 , 국민방위군 운영기금을 간부들이 빼돌려 착복하고 정치자금으로 주었습니다. 이로 9만 명이 넘는 사람이 얼어 죽고 아사했습니다. 보도연맹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좌익사상자를 교화시킬 목적으로 만든 관변단체입니다. 여기에 사상과 관련 없는 사람들을 가입시켰습니다. 심지어 비료 준다. 배급 준다고 해서 가입시키고, 북한괴뢰군에게 밀려서 서울을 내 주고 대전으로 후퇴하게 되자, 이들을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투옥하고, 굶기고, 고문하다가 집단학살했습니다. 제 고향 인근 산내 골령골이 이 학살의 현장입니다. 이때 죽은 사람들이 각 군에서 100명에서 1000명꼴로, 모두 2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4,19때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죽었습니다. 이걸 결정한 대통령, 국방장관, 내무장관 다 경건한 기독교인들입니다. 이 사람들 다 주일이면 경건하게 예배드린 독실한 기독교들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렇습니다. 부산 형제원에서 12년 동안 513명이 맞아 죽고, 영양실조로 죽거나 병들어 죽게 했습니다. 이 시체를 구당 2백에서 300만원씩에 실습용으로 팔았습니다. 이 사람이 장로입니다. 교회도 세웠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를 경악시킨 비인간적이며 반 인륜적인 사건들의 장본인이 독실한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런데 소위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이런 대통령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장로 대통령 만들기 했습니다. 이게 이 땅에 안티 크리스찬이 생긴 이유입니다.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자기 이득이 걸리면 심지어 성직자도 권모술술수를 쓰고, 싸웁니다. 이러면서 거룩하게 예배합니다. 예수 믿는 이가 이방인 보다 물욕적이며, 더 이기적인 성도가 흔합니다. 영화가 묘사하는 것 같이 한 주간 열심히 부정부패를 행하고, 주일에 감사헌금내며 회개하고, 주일이 지나면 또 열심히 죄짓습니다. 

 

이런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심판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상 취급하는 망령된 죄입니다. 이것은 예배를 거룩한 종교놀음으로 만들고, 자기 위안제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예배를 비방하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와 함께 악을 행하는 것에 신물이 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으로 하나님을 만날 예배를 준비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리고 일어나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영적인 예배자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제사보다 인애를 원한다. 순종을 원한다고 하신 것이지요. 우리 하나님은 이 영적인 예배와 영적인 예배자에 주리시고 목마르심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이런 예배가 있으면 동지섣달에 꽃 본 듯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밑으로 갑시다. 십자가 밑에서 화목제물 된 예수를 보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를 제물 되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가 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영적인 예배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함

그리고 이렇게 산 제물 되는 영적인 예배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본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이 구원이 되고, 구원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제물 되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옛 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살게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여 그리스도를 닮게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내가 이웃을 사랑할 때 나라는 자기는 죽고 참 자기가 변화 됩니다. 성장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도록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따라서 물에 물 타고, 술에 술탄 듯 살고, 엄벙덤벙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전심전력해서 죽고 살아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요, 믿는 겁니다. 이게 예배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예배를 보고 싶어 하시고, 이 예배에 주리시고 목마르십니다. 이렇게 산 제물 되어 구원을 이루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십니다. 이게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예배의 복을 주심

이렇게 영적인 예배로 하나님의 기쁨이 된 그리스도인은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예배의 복을 받습니다. 이 사람은 주리고 목마름으로 영적예배할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예배없이 안되는 예배중심이 되는 복을 누립니다. 이 삶의 상한 심령 때문에 예배에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게 됩니다. 예배마다 말씀의 잔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 사람을 예배에서 만나 주십니다. 이 사람의 예배를 하나님이 기쁘시게 열 납 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되고, 응답 받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배의 부흥을 경험 할 것이며, 이 경험이 삶의 부흥을 경함케 할 줄로 믿습니다. 이걸 예배의 성공이라고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것을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아는 성도만 예배에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거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가족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부은바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감격과 감사와 찬양과 헌신과 순종의 결단이 있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은혜로 교회가 이 은혜의 감격의 사람들이 모인 예배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감격으로 예배하고 일어나서 이 감격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영적인 예배를 드립시다. 이 영적인 예배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이 예배, 이 예배자가 되어 우리가 거리에 나가면 "저기 예수님 오신다!"이렇게 말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이 영적 예배자를 우리 하나님께서 동지섣달 꽃 본 듯이 하실 줄로 믿습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