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은혜로 묵상

가정의 행복과 법정의 기준

아브라함-la 2022. 6. 5. 15:40

읽을 말씀 : 17:1-28, 찬송 516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15)

 

세상은 물질에 사는 것과 행복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 물질적 가치관이 사회의 근간인 가정의 행복과 정의의 보루인 법정의 판결의 기준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가정의 행복이 물질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한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이 말씀은 물질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사랑이 없어서 불목 하거나, 그 재물 때문에 불화한다면 재물이 오히려 화라는 것입니다. 한 가정의 행복의 기준은 물질이 아닌 사랑과 화목인 것입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라고 하셨습니다. 손자는 웃게 하지만, 손이 없고 금만 있는 집에 웃음이 있겠고, 권세와 부가 있어도 자식이 없으면 그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행복은 가족이며, 그 가족이 신앙을 기반으로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고 근로하는 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물질주의 세계에서 물질이 정의의 보루인 사법과 법정을 움직이는 기준이 되기 일수입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절규는 여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것, 악인을 의인으로 판결하고, 의인을 악인으로 만드는 판결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입니다.

 

법철학은 법은 강한 자들이 아닌 약자들을 위한 제도임을 분명히 해 주고 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호소할 데는 법정뿐입니다. 이 법정이 뇌물이나 집권자를 따라서 판결하면 사회는 약육강식의 밀림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판결의 기준을 명백히 설정해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 나라와 같은 불공정이 없는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부와 권세를 따라서 판결을 굽게 하여 약한 백성들이 불공정에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을 선지자들은 준열하게 꾸짖었습니다.(암 5:12)불의한 판결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의 성품에 맞지 않는 가증한 것이므로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정의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법적 공의와 사회적 정의를 유념해서 입법과 법 집행에서 바른 판단과 행동으로 대처할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의는 곧 하나님께 대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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