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12,11
본문 : 호1:2-11
말씀 : 라인권목사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사중 계획 안에 있는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이번 주도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용서 받지 못할 사람
우리 교회에 장로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의 아버님이 당시 명문고를 나오신 분인데 처를 버리고 신식 여성과 살림을 차리고, 아내와 어린 삼 형제를 버리고 돌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식모로 장로님은 머슴으로 자라서 자수성가를 했습니다. 이 아버지가 늙어 병이 드니 버린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분 하관할 때 보니 장로님 외에 다른 형제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이해 안 되고 용서가 안 되는 겁니다. 이렇게 아버지 아버지가 아니고, 자식이 자식이라고 할수 없고, 남편이 남편이 아니고, 불쌍히 여길 수 없는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상을 섬김
오늘 본문의 호세아가 사역하던 북방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습니다. 이때 북방 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 2세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아합의 집을 멸망시킨 예후의 3대 손으로 탁월한 정치력으로 다윗과 솔로몬 시절의 판도인 하맛에서 아라바까지를 회복하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 국제적인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은 이렇게 하나님이 축복할수록 하나님을 멀리하고 더욱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걸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나는 나를 연애 하는 자를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호2:5)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우상과 우상의 전을 아름답게 했습니다.(2:8,10:1) 마치 남편 것으로 간부를 섬기는 아내같이 된 겁니다.
고멜이 낳은 음란 자식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의 패역과 영적인 음행을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의 혼인이라는 방법으로 꾸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자자에게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인과 혼인하여 음란한 자녀를 낳게 하셨습니다, 첫 아들을 낳자 이름은 이스르엘이라고 칭하게 했습니다. 이스르엘은 아합이 죽은 곳으로 버림받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딸을 낳자 로루하마라고 이름을 짓게 했습니다, "로"는 히브리어의 부정사로 영어의 not에 해당합니다. 루하마는 긍휼라는 뜻입니다. 긍휼히 여길 수 없는 자식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셋째로 아들을 낳자 이름을 로암미라 했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내 고멜이 하도 음란해서 자식을 낳았지만 내 자식인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내 백성이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도무지 긍휼히 여길 수 없어 용서가 안되니 이스르엘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 두목을 세울 때에
그래도 하나님은 이 백성을 사랑하셔서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너희 형제를 암미라 하고, 자매 루하마로 부르게 하신다고 합니다.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하고, 긍휼을 받지 못하는 자를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겁니다. 어느 때에 이렇게 됩니까? 그것을 유다와 이스라엘이 한 두목을 세우는 때라고 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열된 이스라엘이 한 두목을 세울 때에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한 사람들에게 내 백성 정도가 아니라,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하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하십니다.(10)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해변의 모래와 같이 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한 두목이신 주 예수
여기의 한 두목이 주 예수이십니다. 왜 예수를 두목이라고 합니까? 예수는 본래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즉 주이십니다. 여호와를 아도나이 이를 신약에서 퀴리오스 즉 주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는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 언약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나셔서 긍휼을 입을 수 없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높이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들을 주로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 정도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자에게 이 예수를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예수로 말미암아 회복될 영적인 이스라엘의 번성의 소망과 비전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호세아가 본 주되신 예수의 은혜의 수혜자는 누구입니까?
백성 아닌 자들을 내 백성 삼으심
먼저 내 백성이 아닌 우리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긍휼히 여김을 받는 은총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본래 우리 이방인들은 언약 밖에 있었고, 율법도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엡2:12) 공중 권세 잡은 마귀를 따르는 불순종의 아들들이고 본능대로 사는 진노의 자식입니다.(엡 2:2,3) 예를 들면 이방인들은 음행을 스포츠와 같이 압니다. 세상 사람들에는 음행이 자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방인들은 본래 내 백성이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긍휼이 아닌 저주와 진노가 합당한 백성입니다.
이런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에 아들을 화목 제물로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를 그리스도, 즉 주로 믿을 때에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 내 자녀라 하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기업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게 예수를 주로 고벡하는 이들이 참 이스라엘입니다. 이 영적인 이스라엘이 지금 해변의 모래와 같이 된 줄로 믿습니다. 이게 호세아가 본 주이신 예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로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주되시는 은혜로 우리 교회가 바다 모래 같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이 용서를
둘째,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긍휼히 여김 받을 수 없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이 주가 되신 예수의 은혜로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의 이스라엘, 로루하마, 로암미는 하나님이 사랑과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만하여 하나님과 율법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우상을 아름답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 믿고 구원받고 축복받았았는데, 그 축복으로 세상만 따라는 것은 꼭 내 자식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도저히 불쌍히 여길 수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패역할수록 사랑하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 이게 주가 되시는 예수의 은혜입니다. 자기 피로 구속한 백성이 내 자식이 아닌 것 같아도 포기하시지 않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세우십니다. 이게 견인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의 주되시는 은혜로 온전해집니다. 그러므로 부족하고 넘어져도 일어나고 온전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도무지 이해 못 하고, 용서할 수 없는 죄인들도 긍휼을 입고 내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예수의 은혜입니다. 요즘 출소한 흉악범들로 지역사회가 흉흉합니다. 용서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주이신 예수 안에서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는 이런 죄도 담당해 피 흘리시고, 주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하시고 긍흉히 여김을 받는 은총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은혜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한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보고 소망을 가집시다. 이 은혜를 전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용서 못할 자를 용서하는 주 예수의 마음이
셋째, 예수가 두목이 된 사람,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그 권세에 복종하는 이는 예수님과 같이 긍휼히 여기지 못할 자를 긍휼히 여기고, 용서 못할 자를 용서하는 예수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참 묘합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원수라고 하셨지요, 부모를 내 부모라고 할 수 없는 부모를 만나기도 합니다. 자식이지만 내 자식이 아니고,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자식이 있습니다. 부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잘하면서도 그 한을 품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분은 교회일 잘하는 집사인데 아버지 하면 살이 떨립니다. 의절하고 삽니다. 그러나 장로가 되신 분은 어머니와 형제를 버려서 머슴으로 살게 한 아버지가 늙어 병들어 손 벌리자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을 장로로 세웠습니다.
이게 왜 가능합니까? 본래 내가 하나님께 남의 자식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긍휼히 아니라, 진노를 받아 마땅한 나를 하나님은 아들로 구속하여 백성 삼고 사랑하십니다. 내 나를 버리 그 아버지 같은 겁니다. 이 은혜 이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 예수의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처럼 용서가 안 되는 이를 용서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때 우리가 주님을 본받는 구원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주 되신 예수의 통치를 순종합시다. 이로 원수 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의 마음을 닮고 이룹시다.
이제 성탄절이 두 주 남았습니다. 성탄은 긍휼히 여길 수 없고, 내 백성 아니라고 한 곳에서 내 백성 되게 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는 긍휼히 여길 수 없는 백성, 내 백성이라고 할 수 없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할 하셔서 우리의 두목 주가 되셨습니다. 이 아들의 발에 엎드려 입맞춥시다. 그리하여 주 예수께서 심판이 아닌 구원이 되시고 용서받을 수 없는 영혼의 목자와 두목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강 론 >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가정 (0) | 2022.12.25 |
---|---|
요엘이 본 예수의 영 (2) | 2022.12.20 |
에스겔이 본 생명강 예수 (1) | 2022.12.03 |
말할 수 없는 그 은혜를 (0) | 2022.11.22 |
절망에서 소망이신 예수 (1) | 2022.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