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요나의 표적 예수

아브라함-la 2023. 2. 12. 14:32

023,2,12, 주일

본문 : 욘1:17-2:10

말씀 : 라인권목사

 

        평안입니다. 오늘은 요나서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로 여로보암 2세 때에 사역한 선지자입니다. 왕하14:25을 보면 요나의 예언대로 여로보암 2세가 영토를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까지를 회복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요나가 선지자로 처음 받은 메시지는 이스라엘이 영토를 회복한다는 긍정적인 축복의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이 성취되었으니, 요나는 여로보암 2세나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는 선지자였습니다.

 

이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을 쳐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이 앗수르가 후에 북방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요나에게는 니느웨는 우리의 일본 도쿄와 같은 곳입니다. 이런 곳을 쳐서 말씀을 전하라는 것은 죄를 지적해서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이 하나님의 미션이 싫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이 합당하다고 여겼고, 그들의 반응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치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바다에 던져지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살아 나와서 니느웨에 말씀을 했습니다. 니느웨는 이 요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이를 우리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요나의 표적 예수

이 요나와 요나의 표적이 바로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첫째 요나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만에 살아 나온 것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 속에 계시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결정적으로 예수님이 “선자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당신을 요나의 표적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 12:39) 이 주님의 말씀은 요나가 물고 가 뱃속에 있었던 것을 예수님이 역사적 사실로 아셨다는 거고, 요나의 기적을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예표로 여겼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요나와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과 부활의 승리의 예표하는 표적입니다. 이 표적 ”세메이온“은 사인 표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요나와 요나의 표적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표적 사인이겠습니까?

 

첫째 요나의 표적 예수는 믿는 자의 부활과 현재적 부활의 능력과 소망의 표적이십니다. 창조 과학회를 하시는 분은 고래는 악어가죽 백도 소화 시킨다고 합니다. 요나가 불순종으로 이런 물고기 뱃속에서 있었지만 요나는 소화가 되지 않고, 그 속에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이렇게 요나를 소화시키지 못한 큰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 냈습니다. 죽음의 물고기가 요나에게는 살아 있는 잠수함 격이 된 것입니다. 이게 요나의 표적이고 예수님의 표적입니다. 예수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으신 분입니다.(행 2:24) 죽음이 예수님을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죽음이 예수님을 내놓았습니다. 아니 예수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 죽음으로 죽음을 죽이시고 나오셨습니다.  

 

이 요나의 표적 부활이신 예수는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예수님처럼 다시 산다는 부활의 표적이 됩니다. 우리는 요나처럼 불순종하여 사망이라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이는 죽음이 요나와 예수님처럼 소화하지 못합니다. 죽음이 배탈 납니다. 오히려 죽음은 우리를 예수님같이 완전한 육체, 신령한 육신으로 나오게 합니다. 죽음이 우리를 영생에 들어가게 합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요나의 표적 예수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다시 산다는 사인이요, 표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는 우리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라고 하신 겁니다.(고전 15:20)이 요나의 표적 예수로 무덤에도 부활의 소망의 빛이 가득한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 요나의 표적 예수가 강조하는 것은 마지막 날의 부활만이 아닌 부활의 현제적 능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이걸 확증했습니다, 요나는 불순종했지만 하나님과 그 구원을 믿었습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6) 이미 응답받고 구원받은 것으로 찬송했습니다, 이 확신이 물고기 뱃속에서 믿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믿는 일이 무엇입니까? 회개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하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삽니다. 살아 나와서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요나는 부활을 현재적으로 경험한 겁니다.

 

이렇게 요나의 표적 예수의 부활과 부활의 소망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난의 물고기 뱃속에서도 믿는 일을 하게 합니다. 회개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바랍니다. 그러면 사망과 고난이 소화를 못하고 토해 냅니다. 물고기가 니느웨로 가게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을 마지막 때로만 아는 마르다에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른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부활을 현재적으로 말씀하신 줄로 믿습니다.(요 11:24-26) 우리에게는 이 표적, 사인, 표지인 예수가 계십니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입을 벌리고 삼키려고 하면 요나의 표적 예수를 보고 믿는 일하시므로 부활을 현재적으로 경험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요나의 표적 예수는 완악하고 완고한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구원의 표적이 되십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는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고 선포했습니다. 요나는 이걸 단지 하나님께 대한 의무감 만으로 했습니다, 말씀을 받고 회개하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거절하고 망 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외침에 왕부터 모든 백성들이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이 회개의 이유를 예수님이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눅11:30) 즉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고 물고기 뱃속에 들었갔다 살아 나온 표적이 완악한 니느웨 사람들을 듣게 했다는 겁니다. 이게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던 니느웨 사람들을 듣게 했습니다,

 

이렇게 요나의 표적 예수는 두면에서 믿게 하는 표적이 됩니다. 먼저 요나의 표적 예수님의 부활은 최종적인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을 보내도 듣지 않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셔서 그들 앞에서 대신 죽고 살아나 보이는 최종적 표적을 행하신 겁니다. 이 부활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입증입니다.(롬 1:4)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이 이 표적을 부인 못하고 믿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은 것은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은 것도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요나의 표적 예수의 부활은 직접적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표적입니다.

 

그리고 요나의 표적 예수의 부활은 우리가 요나와 같이 구원과 부활을 현재적으로 경험하게 하셔서 완고한 자들이 믿게 하는 표적이 되게 하십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만에 나와 말씀을 전하는 게 표적이 되어 완고한 니느웨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요나의 표적 예수는 우리가 믿지 않는 세상에 이 표적이 되게 하십니다. 요나와 같이 부활을 현제적으로 경험하게 하셔서 나사로의 부활이 많은 유대인들을 믿게 한 것 같이 믿지 않는 사람들, 완고한 사람들을 믿게 하는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 표적이 핍박하는 마을이 교회 나오게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지점장을 하던 집사님은 자기 집에 세든 교계의 유명한 장로가 아무 걱정 없는 것 보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순교를 당해도 평안한 것이 표적이 되어 로마인들이 믿었습니다. 부활의 현재적 경험은 최소한 하나님과 교회를 긍정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의 소망과 능력으로 위기에서 믿는 일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합시다. 고난에서 살아 나오는 부활을 경험하셔서 세상에 믿게 하는 표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요나의 표적 예수는 듣지 않고 믿지 않는 세상에 대한 심판의 표적이자 이 표적으로 승리하십니다. 주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요나의 표적 외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성육신이 표적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표적이요, 부활이 표적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듣지 않는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표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롬 5:8) 이 표적으로 믿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믿지 않고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는 요나의 표적 외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제 남은 일은 십자가에 죽어 주시고 살아나 보이는 일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 앞에 죽어주고 살아준 것입니다. 즉 죽으심과 부활은 최종적인 표적입니다. 이 부활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습니다.(롬 1:4) 이 보다 더 큰 표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는 믿음의 빙거입니다,

 

그러나 이게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에게도 믿게 하는 표적이 될까요? 표적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한 것은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시험하여 그들의 불신을 정당화할 구실을 찾기 위해섭니다. 이게 악한 것입니다. 이걸 성경은 “믿지 않는 악심”이라고 했습니다.(히 3:12) 이 악심은 음란함에서 나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한분이 아닌 돈을 사랑했습니다, 이 영적인 간음이 믿지 않기로 결심하는 악심을 갖게 했습니다. 이렇게 안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나사로의 비유에서 듣지 않는 자들은 죽었다가 살아 돌아와서 말해도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즉 표적이 되지 못합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비웃거리일 뿐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안 믿으면 예수님은 실패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승리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으로도 믿었는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표적으로 믿지 않는 자들은 재림 날에 니느웨 사람에게 정죄를 받습니다. 즉 그들의 불신과 불순종, 악심이 심판의 표적. 표지가 됩니다. 그 거역과 불신과 불순종이 예수의 공의의 심판을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날에 믿지 않는 자들, 그를 찌른 자들도 공중 재림하시는 예수를 볼 것입니다. 그 앞에 엎드려 예수로 주로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정은 구원이 아니라 심판에 이르게 합니다. 그들의 믿지 않음이 심판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요나의 표적 예수님은 이 요나의 표적으로 불신과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실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요나의 표적 예수로 이 세상 고난 풍파 중에서 살아나는 부활을 경험해 나갑시다. 이 부활의 현재적 경험으로 세상에 믿게 하는 표적이 되십니다. 요나의 표적 예수는 불신에 대한 심판의 표적이십니다. 믿지 않아도 예수님은 승리하십니다. 담대히 전파하여 이 승리에 동참합시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이 완악하고 완고함에 빠질까 삼가 조심합시다. 들을 수 있는 마음, 가르침을 받는 마음, 깨닫는 착하고 좋은 마음이 되셔서 요나의 표적인 예수의 구원과 부활의 능력을 경험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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