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미가가 본 구원의 완전성

아브라함-la 2023. 2. 23. 09:40

023, 2,19, 주일

본문 : 미5:1-9

말씀 : 라인권 목사

 

       오늘이 우수입니다. 이제 봄비가 내려 해토하는 것 같이 우리 영과 삶이 풀어지는 은혜의 봄이 오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미가서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미가는 유다 모레셋 사람으로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 히스기야 때에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사역을 한 선자자입니다. 이 미가가 히스기야 왕 때에 전한 미3:12절 말씀이 약 100년 후에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숨을 구합니다.

 

예레미야의 목숨을 구한 미가의 예언

유다왕 여호야김이 즉위한 때에 오늘 우리와 같이 예배하려는 사람들이 성전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는 무서운 예언을 합니다.”이 성전이 실로와 같이 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주 거리가 되게 하리라“(렘26:4,-7)이 말에 충격을 받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붙잡아 성문으로 끌고가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이 때에 유다의 장로 몇 사람이 일어나서 미가의 예언으로 미가를 변호했습니다, ”히스기야 때에 미가가 모레셋 사람 미가가 예언하여 시온은 밭같이 경작함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 같이 되게 하리라고 하였으나 히스기야와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렘26:18-19)이에 제사장과 유대인들이 감히 예레미야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예레미야를 살린 미가서의 말씀이 오늘 우리 구원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완전성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와 그 구원을 만나는 곳

그러면 선지자 미가는 어디서 이 예수님의 완전한 구원을 보았습니까? 그게 바로 히스기야 시대의 왕과 백성들의 율법의 실패와 그 죄고에서입니다. 히스기야는 다윗과 바금가는 선왕이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히스기야도 성공하자 교만해져서 바벨론 사신들에게 보물고와 심지어 군기고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이로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 될 것을 처음 선고 받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이 수준이니 백성들의 형편은 어떠했겠습니까? 이때의 선민의 상태를 보여주는 말씀이 미4:6-13이 보여주는 이스라엘에 대한 명칭입니다. 저는 자, 쫒겨난 자, 환난 당하는 자(4:6) 왕이 없어서 부르짖는자(9) 더럽혀진 시온(11)이라고 부릅니다, 이 상태를 로마서는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고 하셨습니다.(롬2:9)


이게 꼭 나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해도 저는 사람 같이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합니다, 즉 나라는 사람이 완전치 못합니다. 그러니 삶이 비 정상적이며 생활이 비정상입니다. 꼭 저는 사람 같고, 쫒겨나 환난 당하는 곤고하고 부정한 사람입니다. 이걸 성경은 죄와 비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가는 이런 선민의 환난과 곤고와 비참에서 대 반전이 일어나는 걸 봅니다.

 

대반전의 분수령인 예수

모든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산, 시온산으로 가르침을 받으러 올라오는 선교의 웅지를 봅니다.(4:2) 이로 칼을 쳐서 보습을 말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전쟁을 연습하지 않고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 거하는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4:3,4,) 시온의 쁠이 무쇠와 놋이 되어 열방을 정복하고 열방을 구별해서 여호와께 드림을 봅니다.(4:13)이 놀라운 대 반전은 백성의 상태의 변동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 백성은 여진히 절고, 환난 당하고 더러운 상태입니다. 이 대반전이 미5:2에서에서 일어납니다, 선지자가 베들레헴에서 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봅니다,(5:2) 이 예수로 절고 쫒겨나고 환난 당하고 더러운 백성이 열국을 구별해서 여호와께 드리는 대반전, 역전이 일어납니다,

 

대반전이 보이는 구원의 완전성

베들레헴에서 나시는 메시아 예수로 인한 이 대반전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 본문4-9입니다. 그 백성이 안연하고 창대하게 됩니다.(4) 평강의 사람이 됩니다.(5)이슬 같이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사람이 됩니다.(7) 사자같이 승리하는 사람이 됩니다.(8)이게 무슨 말입니까? 완전한 사람, 완전한 삶, 풍성한 삶이 된 것입니다. 모든게 정상이 된 겁니다. 이게 예수님의 구원이요, 그 구원의 완전성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죄로 천국가는 정도로 구원하시려고 아들 예수를 죽게 하시고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들의 형상에 이르도록 구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이신 예수를 영접할 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니 모든 게 정상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비정상인 사람을 정상이 되게 하고, 온전치 못한 삶을 온전하게 하며, 곤고한 인생을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풍성한 삶이 되게 하는 겁니다. 지금도 구원을 예수 믿어 사죄 받아 천국 가는 정도로 아는 형편인데, 선지자 미가가 이 예수의 구원의 완전성을 예수님 오시시전 700년전 전에 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는 이 완전한 구원자이십니까? 이 풍성한 삶이 되게 하시는 미가가 본 예수는 어떤 분이십니까?

 

미가가 본 완전한 구원자 예수

첫째, 예수는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나신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는 것이 예수가 위대한 다윗왕의 자손으로 오시는 왕으로 압니다, 그러나 미가가 본문에서 강조히는 것은 위대함이 아닌 작음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난 다윗은 밧세바와 범죄하고 사인한 어쩔 수 없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여기에 나셨다는 건 예수님이 다윗과 같은 동네 사람이 되셨다는뜻입니다.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의 극점을 나타낸 것입니다. 자기 백성이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형제중 하나 같이 되시고 죄인 중 하나로 오셨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고 낮고 가난하게 베들레헴 구유에 오셨습니다.(고후 8;9)

 

이 비하의 지점이 예수를 구주로 만나는 곳입니다. 예수는 죄인 중 하나와 같이 되셨으므로 내가 건강한 사람이 아닌 병든 사람 일 때에 예수를 구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 같이 더 이상 낮아질 것이 없는 평지가 될 때에 예수가 구주가 되시고 예수를 만나 구원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저는 것, 쫒가난 자, 환난 당하는 더러운 상태가 예수님을 만나는 구원의자리, 인생 대반전의 자리입니다. 거기서 예수는 안연히 거하게 하시고, 창대하게 하시고, 이슬 같은 사람이 되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완전한 구원의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 미가가 본 구원의 완전성은 예수님의 신성에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나시는 예수는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습니다((2) 이 예수의 신성을 사9:6은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아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께에 장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즉 나사렛 목수 예수는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 자체시라는 겁니다. 이게 인간 메시아와 다르게 완전한 구원자가 되시는 겁니다.

 

선지자, 제사장 왕이 그리스도, 즉 메시야인데도 백성을 안연하게 못하는 건 유한한 인간 메시야이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에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신 예수의 피가 단번에 영원하고 완전한 구속이 되었습니다. 사람으로 할수 없으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는 이 신성의 충만한 능력으로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시는 Savior 주세주, 모든 문제의 해결자 이십니다.(눅2:11) 그러므로 믿음은 예수를 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겁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시는 이는 완전한 구원자로 완전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 하셔서 완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미가가 본 예수는 선한 목자로서의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4) 선민이 절고 쫒겨나고 환난 당함은 목자들이 선한 목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양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선한 목자이십니다.(요10:11) 이 선한 목자 예수 아래의 상태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예수가 선한 목자로 푸른 풀 밭에 누이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구원이 되십니다. 이 구원으로 아버지 집에 이르게 구원하십니다. 즉 예수가 목자가 될 때에 죄로 상실한 인간의 귀중한 것들이 차례로 돌아와서 회복됩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람, 완전한 삶, 풍성한 삶이 되게하십니다. 이게 구원의 완전성입니다. 예수는 이 풍성한 삶을 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이 한 목자 아래 이 큰 구원이 있습니다.

 

만유이신 예수

그야말로 예수는 총괄갱신입니다. 예수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고후5:17)) 예수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통일 되게 하십니다.(엡1:10) 이 통일이라는 말 ”아나케팔라이오 사스다이“는 한 주제 아래 모든 것을 포괄 한다는 뜻입니다. 구속받은 사람의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는 만유라고 하셨습니다. 만물 만유가 예수가 지으시고, 예수로 말미암고 예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골1:16)이렇게 예수 안에서 모든게 새로워지고. 만유가 통일 됩니다. 하늘도 땅도 돕는 사람이 됩니다. 이 예수로 구원받고 거룩한 공동체가 되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땅, 즉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할 줄로 믿습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인생이 온전치 못합니까? 예수님은 예수님 당신같이 되게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 완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예수를 구주로 모셔드립시다. 이 예수가 우리 인생의 전부가 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가 인생의 대반전이시고 역전이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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