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하박국이 본 믿음의 근원 예수(2)

아브라함-la 2023. 3. 14. 15:04

023,3,12, 주일

본문 : 합2:1-4

말씀 : 라인권목사

하나님의 사중 계획안에 있음을 축하드립니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없는 봄은 없습니다. 꽃샘 추위는 봄을 더 아름답게 피우게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도 신앙이 시험이 되는 현실에서 그 효용성이 찬란하게 드러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믿음의 효력을 경험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 예수님에게서 믿음이 인간의 덕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에무나를 신뢰하는 것 임이 분명히 드러났고, 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받으신 시험과 고난과 죽음으로 친히 본을 보이셨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하면 믿음이란 한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만남으로 전적인 신뢰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을 성경은 에무나, 아만, 즉 믿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학생 때,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과 조우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경례를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알면 거기서 경외와 순종이 나오게 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에게 나오지만 믿는 것은 인간이 믿습니다. 그러면 크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응답으로서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믿음의 근원이신 예수님에게서 이 믿음이 어떻게 분명해질까요? 이것을 성경에 나타난 사례별로 정리해 봅시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응답으로 믿음은 하나님의 에무나에 대한 확고한 신뢰입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의 아만-진실, 신실 충실 확고함-이 나의 아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입증하는 사례가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료 여시고”(창 15:6)입니다. 여기의 믿었다는 말이 에무나“에서 파생된 “헤어민”입니다. 이를 직역하면 “의지하니”입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자기 몸의 죽음과 같음을 알고도 하나님의 전능함, 진리, 신실 충실함을 확고하게 의지했기 때문에 믿음이 약해지거나 의심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견고했습니다.(롬 4:18-22)이게 헤어민, 즉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아브라함의 의료 여겨주셨습니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확고하게 의지하는 믿음에 감동하셔서 아브라함이 허물이 많은 사람이지만,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의로 간주해서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신할 것이 있습니다. 칭의를 받는 믿음이 단순한 지식적 동의이고 입술의 고백 정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느9:8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충성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이 충성이라는 말이 에무나 헤어민과 동의어인 “네에민”입니다. 이 “충성”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에무나가 사람의 에무나가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이걸 보시고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한 겁니다.(약 2:21-24)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만나면 하나님의 아만으로 하나님을 아만 하게 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믿음 자체가 충성이며 충성하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믿음은 단순한 지식적 동의나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전인적이며 실제적이며 역동적입니다. 이 믿음이 사죄, 칭의. 새생명을 얻는 살리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이신칭의의 교리는 신약에서 비로소 나온 교리가 아니라 본래 여호와 종교는 하나님과 그 구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선물로 받는 종교입니다. 이것이 율법 아래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사람의 덕성으로 의로워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착각했지만 예수님이 오심과 구속으로 구원이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임이 분명해져서 믿음이 사람에게 있는 덕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확고하게 믿는 것임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 영혼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살리려고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믿음만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하나님을 만나셔서 이 확고한 믿음을 선물 받아서 이 믿음으로 영혼을 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대한 응답으로서 우리의 믿음은 견디고 지탱하고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 에무나라는 말이 처음 쓰인 곳이 출17:12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 모세가 산에서 손을 들면 이기고 내려오면 졌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앉치고 양편에서 그 손을 잡아 올렸서 해가 지도록 그 손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의 “내려 오지 아니했다는 말이 ”에무나“입니다. 진행 되는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 견디어 나가는 지속성, 일괄성을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이 하박국의 예언을 인용해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마암아 살리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고“ 했고, (히 10:38,39) 바울이 이 일괄성을 강조해서 의인은 믿음에서 믿음에 이른다고 한 것입니다.(롬 1:17)

 

그러므로 믿음은 첫째 하나님께 대하여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와 같이 지속적, 일괄성적으로 신뢰를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들어가고 기도하면 사자굴가도 하나님께 대하여 지속적으로 진실, 신실, 충성합니다. 이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믿음에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둘째 믿음은 나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진실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할 수없습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진실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셋째 믿음은 타인과 환경에 대해서 하나님을 신뢰해 나가는 겁니다. 사람과 환경 물질이 시험이 되고 환난이 와도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뚫고 나갑니다. 물질이 시험이 되면 아들을 주신이가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믿고 나갑니다. 이게 산을 옮기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능치 못함이 없게 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이 믿음이 사람을 예수님이 가시 떨기가 아닌 옥토에 떨어진 씨라고 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 믿음의 방식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 타와 환경에서 일괄되게 신뢰를 유지하셔서 이 믿음의 본이 되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을 구주가 되시게 한 것 같이 이 믿음이 아들의 형상을 이루는 구원이 되는 겁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믿음은 역동적입니다. 이 믿음이 유일한 삶의 길입니다. 이 믿음이면 영생과 삶에 대하여 충족하고도 남습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이 믿음의 근원이십니다. 이 시간 예수님으로 하나님을 크신 하나님으로 만나셔서 하나님의 에무나가 나의 에무나가 된 참 믿음이 되고 이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께서 이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셔서 이 믿음으로 금생과 내생을 살려 나가는 풍성하고 영원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