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4,30, 주일
본문 : 슥1:7-11,18-21
말씀 : 라인권목사
평강입니다. 내일부터 오월이고, 이번 토요일이 입하입니다. 성장의 계절 여름이 왔습니다. 이번 여름 하나님의 사중계획 안에 영육 간에 큰 성장이 일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스가랴는 학개와 더불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회복기에 사역한 제사장 출신의 선자자입니다. 이 스가랴서에 “순”이라 이름하는 예수, “평화의 의논”이라는 은혜계약이 있고, (6:12,13)) 새끼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시는 예수님과(9:9) 은 30에 팔리시는 목자와(11:13) 십자가의 고난과(12:10) 성령강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이렇게 스가랴서는 시편 이사야서와 힘께 구약의 복음서입니다.
이 스가랴서에는 일련의 여덟 개의 환상이 있는데, 오늘은 이 중에서 1장의 두 가지 환상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첫 번째 환상은 선지자가 한 사람이 붉은말을 타고 골짜기의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것을 본 것입니다.(7-11) 그리고 두 번째 환상은 네 뿔과 그 네 뿔을 떨어뜨리는 네 공장을 보았습니다.(18-21) 이 환상은 먼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처지이며 어떤 형편인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상 교회의 처지
지상에 있는 교회는 골짜기의 화석류 나무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화석류는 이스라엘에서 흔한 관목으로 윤기가 나는 잎은 상록이고, 작은 별 모양의 꽃을 피우고, 이 잎이 상처를 받거나 으깨면 좋은 향기가 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스더의 히브리 이름 하닷사가 이 화석류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과 교회를 나무 중의 여왕 같은 레바논의 백향목이나, 거인 같은 오크가 아니라, 이 작고 약하여 상처를 받지만 향기로운 화석류 나무로 상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백향목과 참나무와 같이 강하고 슬기롭고 지혜 있는 자들이 아니라,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작게 여기고 자기를 가르침을 받을 자로 아는 사람들이며, 박해와 핍박을 당하면 그 진가가 나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화석류는 골짜기에 있습니다. 골짜기는 낮은 곳, 깊은 곳입니다. 깊은 골짜기는 그늘이 지고 어두운 곳입니다.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이게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의 처지입니다. 교회는 위가 아니라 아래에 있는 것 같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어둠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깊은 환난의 골짜기에 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래서 사도 바울을 우리가 천국에 이르려면 많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곳에서 생존해야 하고, 여기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많은 대적과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신 예수
그러나 선자자는 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한 사람이 홍마를 타고 선 것을 보았습니다. 이 홍마를 타신 사람을 선지자는 “내 주”로 부릅니다.(9) 11절은 “여호와의 사자”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이 정오에 나그네 셋을 영접해서 대접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여호와”이셨습니다.(창 18:2,16,17) 이 여호와의 사자가 성육신의 서막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교회는 골짜기의 화석류 나무와 같지만 그 교회 안에 신인이신 예수가 교회의 머리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머리라는 것은 통치를 의미합니다. 머리는 보호자입니다. 머리는 공급자입니다. 교회는 작은 화석류 나무 같으나 그 안에 이 예수가 계십니다. 이 예수가 교회의 영광입니다. 이게 교회의 능력입니다. 이게 교회의 내면입니다. 그래서 학개는 재건하는 초리 한 성전에 이 보배이신 예수가 오시면 만국을 진동시킨다고 하신 겁니다. 이 예수님이 교회의 영광입니다. 이 예수가 교회의 능력이며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선자자가 본 교회에 계신 예수는 어떤 분으로 계셨습니까?
구원에 능한 전사와 심판주로
선지자가 본 예수는 구원하시기에 능한 전사와 심판주로 교회 안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홍마를 타셨고, 예수님이 거느린 세 천사도 말을 탔습니다. 말은 전쟁의 상징입니다. 성경에서 홍색은 보복과 전쟁과 진노, 심판을 의미하고, 흰색은 번영과 승리를, 자줏빛은 적색과 백색이 섞인 것인데 이는 환난과 기쁨, 곤고와 승리가 교차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홍마를 탄 천사는 원수를 징벌해서 심판하는 직무를 행하고, 백마를 탄 천사는 위로와 승리의 기쁨을 위해서 싸우며, 자색은 환난과 기쁨 곤고와 승리가 교차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형편이든지 능히 구원하셔서 모든 것이 선이 되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주님이 “서신”것입니다.(8) 서심은 긴장하여 대기 상태에 있는 상태입니다. 두루 다녀 정탐하게 하십니다.(11) 하나님은 정탐이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즉 예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서 안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적이 있지만 예수님이 구원에 능하신 전사로 심판주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흔들 수 없습니다. 교회의 원수들은 심판받고 교회는 넉넉히 이길 줄로 믿습니다.
능숙한 문제의 해결자로
그리고 선자자가 본 교회 안의 예수는 문제의 해결자로 계셨습니다. 18-21절의 둘째 환상은 첫째 환상의 보완적인 환상입니다. 이 두 번째 환상은 네 개의 뿔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뿔은 다윗이 내 뿔을 높이셨다는 말에서 보듯 힘과 권세를 뜻합니다. 이 뿔은 선민을 친 뿔입니다. 이 뿔이 네 개인 것은 사방에 원수 대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네 뿔은 첫 환상에서 말을 타고 나가 싸우려는 대적이 누구인지를 밝힌 것입니다. 공중권세를 잡은 자가 세상권세와 하나 되어 대적하고 핍박합니다. 마치 이리 가운데 양과 같고, 가시나무속의 백합과 같은 처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주죽이 들어 걱정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 뿔이 있지만 네 공장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도 있지만 예수님이 해결자로 교회에 계십니다. 네 뿔에 네 명의 공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예수님이 문제 하나하나에 해결자 공장을 예비해 두시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장은 노련하고 능숙한 기능공입니다. 성경에서 공장은 나무를 다루는 목공과 쇠를 다루는 철공을 이르는 말입니다. 뿔이 나무라면 목공이, 철이라면 철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나무라면 빠개 버리고, 철이면 녹이고 쳐서 부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한국차가 세계의 명차들과 경쟁을 하지만 80년대만 해도 문제 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정비소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차의 슬라이딩 문이 고장이 나서 원천에 있는 기아 서비스센터로 A, S를 받으러 갔습니다, 배정은 받은 정비사가 와서 고치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해결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다 이걸 본 공장장이 커다란 드라이버를 대고 망치로 딱 두번 치니 해결되었습니다. 이 능숙한 공장이 문제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공장들로 능숙하게 예술적으로 처리하시고, 해결하십니다.
이 공장이 유다를 친 바벨론을 얼마나 능숙하게 해결했습니다.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원수가 보낸 고발장이 도리어 다리오 왕으로 하여금 조서를 내려 성전건축에 필요한 재정과 물자까지 지원하도록 멋지게 해결하셨습니다.(에 5:6.6:6-12) 사도행전은 이런 구원과 해결로 가득합니다. 저는 이것을 새 성전을 지을 때 경험했습니다, 대적을 예술적으로 처리해 주셨습니다. 원수의 궤계가 도리어 해결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요 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으며, 이로 더욱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더 큰 은혜가 임하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승리를 확신합시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기도하면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께서 말 탄 자들을 출동시키시고, 공장을 보내서 한 방에 처리하시고, 예술적으로 해결해 주셔서 부흥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그러므로 이 시간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좌절은 사탄의 자식들에게 던져 버리고 승리를 확신하고 맞서 나가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신 예수님을 문제의 해결자로 경험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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