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이혼의 완악함

아브라함-la 2024. 5. 19. 13:52

024, 5,19, 부부사랑 주일

본문 : 마19:3-9

말씀 : 라인권목사

 

샬롬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부부사랑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우리 은혜로 가족 부부들을 축복하셔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대한민국의 이혼율은 3.5%로,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수준입니다. 혼인한 열 쌍 중 3쌍이 넘게 이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혼이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22년 3월 22일 자 동아일보는 "경성부 내에서 작년 1년 중에 결혼한 수와 이혼한 수를 보면 결혼 6쌍에 이혼 1쌍의 비례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게 10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주전 1천5백 년 전에 기록된 신명기에도 이혼이 나옵니다.(신24:1) 혼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이혼하고,  조영남의 "지금"이라는 노래말 처럼,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이혼, 완악한 마음이

이걸 밝혀 주는 것이 본문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에서 유대 지경에 오셨을 때에 ,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사람이 어떤 이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주님은 성경으로 가서, 성경으로 답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고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반박을 했습니다, 그러면 왜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고 했냐는 겁니다. 이에 주님은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완악한 마음이 이혼의 원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모세가 이혼을 허용한 완악함은 어떤 겁니까?

 

모세 때의 완악함

본문의 “아내를 버린다”말은 아내를 한 인격이 아니라 소유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 줍니다. 이게 고대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보다 더 좋게 보이는 여자가 있으면 자기 욕심 대로 그 여자와 혼인하려고, 아내를 학대했습니다. 이걸 방치하면 아내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모세는 일종의 양보로 이혼을 허용했고, 이혼증서를 주게 해서 이혼을 공적인 것이 되게 해서 이혼을 제한한 겁니다. 아내를 인격이 아닌,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 완악함입니다. 자신의 정욕을 따라 조강지처를 버리는 것이 완악함이요, 정욕을 따르려고 아내를 학대하는 것이 완악함입니다. 이게 모세 때 이혼 하는 남자들의 완악함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완악함

그런데 예수님은 이 완악함을 “너희의 완악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파 중에서 힐렐파는 신24:1의 부정을 저지른 “아내를 기뻐하지 아니하면”을 아내의 사소한 잘못은 물론, 남편이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포함시켰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이혼하고 다른 여자를 취했습니다. 이혼을 억제하는 법을 이혼을 권장하는 것으로 만들고, 성경을 불의한 이혼을 합법화하는 수단, 성경을 이혼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게 바리새인들의 완악함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이혼의 완악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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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완악함

첫째 이혼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깨뜨리는 완악함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일남 일녀로 지으시고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혼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려 대적하는 완악한 불신앙입니다. 이혼은 윤리적 문제 이전에 신앙적인 문제요, 영적인 문제입니다. 영이 잘못되고, 신앙이 잘못되어서 이혼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혼인과 이혼은 신앙적인 문제로 접근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혼인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으로 확신하여, 하나님과 그 말씀을 무시하고 이혼하는 완악함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둘째, 이혼은 자신과 배우자의 고통을 배려하지 않는 완악함입니다. 본문의 아내와 합하여, 헬라어“콜라오는 명사 아교풀 ”콜라“에서 유래한 말로 아교풀로 붙인다는 뜻으로, 히브리어 다바크도 같은 뜻입니다. 아교로 붙인 것 같이, 한 몸 된 부부는 사망 외에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입니다. 따라서 이혼은 이 몸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거열이라는 형과 같습니다. 이혼 법정에서 다투는 것 꼭 거열입니다. 이혼이 이렇게 완악한 겁니다. 이걸 무릅쓰고 이혼하는 이 완악함에서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이혼은 자식들의 고통을 배려하지 않는 완악함입니다. 정신과 의사는 이혼은 자식에게 암환자의 고통을 안긴다고 보고 하고 있습니다. 암과 같이 불안-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혼은 자식들에게 아버지 감정과 어머니라는 감정을 파괴합니다. 이것이 자식을 거리의 자식이 되게 하고, 어둠의 자식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 목사는 부인과 사별했는데 재혼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재혼하지 않는 이유를 자꾸 묻기 때문에 그 답변으로 <내가 재혼하지 않은 이유>라는 강론을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자녀의 어머니라는 고귀한 정서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재혼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노회 목사님 한 분도 상처 하셨는데, 아내 만한 여자가 없고, 자녀들의 상처를 생각해서 재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혼은 자녀의 부모라는 고귀한  정서를 파괴하는 완악한 일입니다. 시험을 받고 있는 부부들은 자식을 배려하지 않는 이혼의 완악함에서 구원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혼의 완악함은 타락에서

그러면 이 이혼의 완악함은 어디서 왔습니까? 이것을 규명하는 것이 창3장입니다. 타락 전 아담과 하와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지요. 이러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자, ”여자 그가" 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창3:12) 이 죄에서 이혼하게 하는 완악함이 나왔습니다. 죄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것입니다. 자기만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배우자도 자식도 모르게 하는 이 죄가 이혼하게 합니다. 이렇게 이혼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혼의 완악함에서 구원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이 죄 사함 받고,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의 보혈만 죄를 씻게 합니다. 예수로 거듭나 하나님과 이웃만 있는 참사람 되면 이혼은 남의 나라의 일이 됩니다. 이 예수가 부부의 주가 되셔야 합니다. 사람은 육정영입니다. 영이 없으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부부의 중심에 예수님이 주가 되셔야 합니다. 육정영이 하나 된 부부가 되고, 영적일수록 부부생활이 만족하다는 것이 가정사역의 통계입니다. 이게 부부 사이에 예수가 계셔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신 부부가 됩시다. 예수님이 부부의 주되시게 합시다. 이것이 이혼의 완악함에서 부부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계획 대로 해로하며 부부의 행복을 누리게 할 뿐만 아니라, 이혼하는 완악한 세상에 빛이 되고, 간증이 될 줄로 믿습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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