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튼 날 찰스턴의 아침이 밝기 전에 숙소 주변을 둘러보러 나섰습니다. 호텔 문을 나오자 어제 밤에 보았던 붉은 동백꽃이 비에 젖어 노란 미소로 아는 체를 했습니다. 호텔은 애슐리강 하구 곁에 위치해 있었고, 하구는 크고 작은 요트로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숙소주변을 둘러본 후 숙소를 정리하고 어제 밤 둘러보았던 찰스턴 구시가지로 향했습니다.
찰스턴(Charleston)은 남북전쟁이 촉발된 곳이지요, 그래서 남북전쟁이 촉발된 역사의 현장섬터 요새를 꼭 보고 싶었습니다만, 배를 타야 하는고로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섬터 요새는포기하고 구시가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어제 밤 돌아본 찰스턴 거리는 한마디로 고색창연했습니다. 현재가 아닌 영화세트장에 들어온 듯 했습니다. 저 킹 스트리트의 거리모퉁이나, 저택의 현관에서 소설속의 레트 버틀러가 그 특유의 미소를 띠고 나올 것만 같은 그런 도시였습니다.
- 화이트포인트 가든 -
찰스턴 구시가는 고색창연한 건물과 교회들의 높은 첨탑, 종려나무와 고목이 울창한 공원과 바다가 어우러진 도시였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남북전쟁 시절로 돌아 간 듯 한, 찰스턴 골목길을 돌아보고, 흔히 배터리공원(The Battery)으로 불리 우는 화이트 포인트 가든(White Point Garden)과 매리언 스퀘어(Marion Square)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메리언 스퀘어 인근의 멕시코 식당에서 점심을 때우고 올랜도를 향해서 찰스턴을 떠났습니다.
찰스턴 시가를 벗어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국적인 풍경은 나뭇가지에 줄줄이 늘어져 있는 스페니쉬 모스(Spanish mdss)이었습니다. 이 식물은 습기가 많은 남미와 미국 남부 아열대 지역에서 큰 나무에 기생하는 기생식물입니다. 주변을 괴괴하고 음산해 보이게 하는 이 스페니쉬 모스가 플로리다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소나무에도 자라고 있는 것이 이채롭고, 이국적이었습니다.
- 찰스턴 교외에서 본 노예 농장과 스페니쉬 모스 퍼온 사진 -
그리고 길은 이 스페니쉬 모스가 줄줄이 매달린 평지의 숲과 늪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찰스턴은 최대 고도가 8미터이며, 평균 표고가 1미터에 불과하니 이곳이 늪이 많고 평지인 것은 당연합니다. 이 평지의 숲과 늪이 올랜도로 가는 길에 반복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숲 하면 산인데 평지가 우거진 숲인 것이 이채롭고, 그 망망한 늪지가 늪지 그대로 있는데서 이 나라의 국력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는 개발로 습지와 늪을 보기 어렵지요. 바다의 개펄도 개발로 남아나질 않습니다. 이게 우리의 국토가 작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 찰스턴에서 올랜도로 가는 17번 도로에서 본 광활한 늪지 -
그러나 이런 풍광은 올랜드(Orlando)로 가는 길 내내 누릴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찰스턴 교외에서 한곳의 아울렛을 들러서 이미 오후가 기울었습니다. 게다가 95번 하이웨이에 접어들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하이웨이에는 거대한 트럭이 지배한다고 할 만큼 트럭이 많았습니다. 양차선의 빗속을 달리는 그 거대한 트럭의 바퀴에서 뿜어 나오는 물보라는 시야를 완벽하게 가렸습니다. 속도규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처지에 빗속에서 드센 물보라를 뿜어내는 트럭 뒤를 하염없이 따르는 것은 참 고역이었습니다.
- 찰스턴에서 올랜드로 가는 17번 도로의 망망한 늪지 -
이렇게 빗속에서 물보라를 뿌리는 트럭의 꽁무니를 따르기를 반복하다 길에서 또 날이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겨울비가 여름 소나기 오듯 하는 어두운 길을 운전해서 조지아 주를 지나 그날의 목적지 플로리다 주의 데이토나 비치의 힐튼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한 밤이었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창문을 여니 어둠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데이토나 비치(Daytona Beach)에 거친 파도가 하얗게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 파도소리를 들으며 발코니에 늦은 저녁상을 차렸지요. 그 만찬은 한국마켓에서 쇼핑해온 컵라면과 컵 밥과 햇반 이었습니다. 본시 컵라면 같은 즉석식품과 패스 푸드를 멀리하는 터였지만, 미국의 기름기에 물린 입맛을 달래기는 그만 이었습니다.
- 숙소 힐튼호텔의 수영장, 데이토나 비치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 -
미국의 호텔은 참 실용적이었습니다. 객실에 전자레인지가 비치 되어있어서 음식을 데워먹을 수 있고, 간단한 조리가 가능했습니다. 그 전자레인지로 컵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워서 파도소리 요란한 호텔 발코니의 둥근 탁자에 차리고 경건하게 감사기도를 올렸지요. 그날 밤 데이토나 비치의 파도소리를 반찬 삼아 컵라면에 말아 먹은 밥맛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맛이 되었습니다.
이튼 날 새벽같이 올랜드 디즈니월드를 향해 아직도 어둠에 쌓인 데이토나 비치를 떠났습니다. 그날 디즈니월드는 플로리다답지 않게 추웠습니다. 가끔 비를 뿌리는 을씨년스런 날씨에 싸늘한 기온에 뼈가 시렸습니다. 디즈니월드는 아내를 들뜨게 했지만, 놀이공원이 별로인 저는 그 추위에 시달려 겨울옷을 차에 두고 온 걸, 종일 후회한 하루였습니다. 그날 디즈니월드에서 깨달은 것은 이 디즈니월드는 동심의 고향이기기 보다는 미국자본주의 표본과 같은 곳이라는 점입니다. 돈이면 무엇이 든 우선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디즈니월드의 밤은 조명으로 신비로웠고, 불꽃놀이는 황홀했습니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찬란하게 수놓은 디즈니월드를 서둘러 빠져나와 올랜드 시내의 숙소에서 종일 추위에 언 몸을 녹였지요. 전자레인지로 컵라면을 끓이고 컵 밥을 덥혀 디즈니월드의 패스 푸드 음식에 시달린 위를 위로하고, 곧장 꿈나라로 갔습니다. 이동거리로 치면 이날은 이번 여정에서 가장 짧은 거리였지만, 제겐 춥고, 힘든 하루였습니다.
그날 취침 기도에서 나의 첫 미국여행을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 다고 불평을 하다 시정했습니다. 비를 맞으며 출발해서 디즈니랜드에 입장 할 때도 하늘은 비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입장 한 후에는 비가 그쳤습니다. 매일 그랬습니다. 차로 이동 할 때는 비가 오고, 차에서 내리면 신기하게 비가 그쳐서 관광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구름과 불로 인도하심이 아니겠습니까?
- 숙소에 내다 본 올랜도 시내 높지 않은 지붕과 수림의 선이 지평선과 맞닿은 느낌이다 -
그래서 순례자는 이렇게 노래했지요.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시84:6) 아! 돌아보면 눈물 골짜기를 지나야 했던 적이 몇번이었까요? 피할 곳 없는 들판에서 소나기를 만나고, 언 땅에 선 나목 같이 속절없이 세파에 얼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플로리다의 추위에 어는 행복(?)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내일도 이른 비도 은택이 되는 여정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이 감사가 미국 남방에서 둘째 밤을 안식이 되게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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