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행/길에서 줍는 진주

길에서 본 미국동남부(2)

아브라함-la 2020. 3. 15. 17:11

 

 

       

워싱턴DC에 도착한 건 이미 한 밤중이었습니다. 어느 한식당에서 순두부찌개로 늦은 저녁을 때우고 매서운 한파가 몰려온 백악관 인근을 벼락치기로 돌아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주마간산이었지만, 링컨기념관에서 거대한 대리석 기둥 사이로 내다보이는 워싱턴기념탑(Washington Monument)위에 보름달이 둥실 하니 떠있고, 그 만월아래 조명으로 꼭 달덩이 같이 빛나는 거대한 오벨리스크(Obelisk)가 링컨메모리얼 리플렉팅 풀(Lincoln Memorial Reflecting Pool)에 비췬 광경을 보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미국을 자주 간들 이 광경을 보긴 어려울 겁니다. 이런 상대적 자부심으로 그 날로 워싱턴을 떠나는 아쉬움을 자위하며 그 밤에 아들이 수학하는 노스캐롤라이나 웨이크 포레스트 발길을 돌렸습니다.

 

 

 

웨이크 포레스트(Wake Forest)에서 아들과 함께 사우스이스턴 세미나리(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캠퍼스를 돌아보고 총장공관에서 총장을 접견했습니다. 이튼 날 아들의 졸업식을 보고, 아들의 미국인 친구 헤들리의 집에 유하며 미국남부가정을 체험했지요. 주일에는 아들이 봉사하는 RTP지구촌교회에서 두 번의 강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헤들리 부부의 전송을 받으며 미국최남단 키웨스트(Key West)를 향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 사우스이스턴 세미너리와 신학교부지안의 지역교회 - 

 

  - 위는 웨이크포레스트 침례교회, 주일에 강론한 RTP침례교회가 빌려서

     예배하는 지역 미국인교회, 아름다움과 소박함이 대조적이다 -

 

웨이크 포레스트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Charleston)로 향하는 길의 첫 인상은 길섶의 소나무 숲이었습니다. 웨이크 포레스트는 소나무 숲의 고장이었습니다. 구릉도 마을도 대학캠퍼스도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에 쌓여 있었습니다. 리기다 송 같지만, 우리나라의 리기다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줄기는 백송이 아닌가 싶게 회색이거나 검었고, 아름드리는 높이가 족히 3~40메타가 넘어보였습니다, 잎은 우리나라 솔잎보다 거의 세배 정도 길고 굵었습니다. 이 소나무가 도로변에 숲을 이루어 플로리다까지 계속 되는 게 이채로웠습니다. 같은 종이라도 토질에 따라서 생육이 다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지나 다름없는 대륙의 비옥함이 우리나라의 척박한 산지의 소나무와 달리 높이 자라게 하지 않았나싶습니다.

 

 

                                             - RTP지구촌교회 부지의 숲 -

 

 

                                        - 웨이크포레스트 온통 소나무 숲이다 -

 

 

      - 찰스턴을 벗어나 올랜도로 가는 길,  병풍처럼 소나무가 끝없이 서있다 -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남쪽을 향해 내려가며 미국이 대륙임을 실감케 한 것은 끝 간 데가 없는 직선도로였습니다. 애틀란타에서 펜실베니까지 북상했다가 워싱턴을 들러서 남행하여 플로리다까지 갔지만, 우리나라에 그 흔한 터널은 단 한 번도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그 광활한 대륙을 종단하며 이 나라가 바람이 드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쉼터에서 차문을 열다 바람에 차문이 꺾일 뻔 했습니다. 예전의 대관령 휴게소의 거센 바람이 생각났습니다. 산이 없는 대륙은 공기의 막힘이 없을 터이니 바람이 셀 수밖에요. 이 나라에 왜 집이 날아가는 토네이도가 이는지 알듯했습니다.

 

 

                                           - 끝간데 없는 직선으로 뻗은 하이웨이 -

 

그 곧은길을 달리며 우리나라에 흔히 있는 것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게 과속을 단속하는 무인단속카메라입니다. 아들의 말로는 그 방대한 도로에 단속카메라를 설치 할 능력이 없답니다. 그 한적한 직선 도로를 고속으로 달려보고 싶은 유혹이 있을 터이지만, 과속을 하는 차량은 보기 어려웠습니다. 단속카메라는 없지만 경찰이 있어 설까요? 아니면 준법의식 때문일까요? 어째든 속도규정이 바뀌는 곳에는 거의 경찰이 있는 듯했습니다.

   

 

 

이번 미국여행은 모든 목적지에 밤에 도착했습니다. 그만큼 길이 멀었다는 뜻이지요. 찰스턴으로 가는 길도 저물고 말았지요. 아직도 갈 길은 먼데, 저 멀리 길과 맞닿은 하늘에 황혼이 물들고, 대지에 검은 땅거미가 지는가 싶더니 금방 사위가 짙은 어둠에 덮여버렸습니다. 이렇게 황혼이 오고 날이 어두워지는 것이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서산에 해가 떨어진 후에도 금방 캄캄해지는 것이 아니라 긴 여명의 시간이 있어 차츰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산이 없어선지, 황혼이 함께 땅거미가 드는데, 시커먼 땅거미가 마치 먹물이 밀려오듯 하는 게 무서울 지경입니다. 그리고 사위가 곧 캄캄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땅거미와 어둠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것이 대륙의 현상인지, 아니면 나그네의 낯설음에서일까요?

    

 

 

 

                  - 황혼과 더불어 검은 땅거미가 들자 사위에 먹물 같은 어둠이 -

 

어두운 밤에 도착하는 것이 워싱턴에서는 링컨기념관에서 보름달을 머리에 인 워싱턴 기념비를 보는 행운을 가져왔다면, 찰스턴에서는 고색창연한 찰스턴의 야경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해들리의 아내가 소개한 맛 집의 저녁식사도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늦은 밤에 도착하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닙니다. 올랜도로 가는 길에 데이토나비치에서 일박을 했지만, 늦은 밤에 도착하여 아직 어두운 새벽에 다시 길을 나선 고로 자동차 경주로 유명한 데이토나비치Daytona Beach는 밀려오는 파도소리만 듣고 왔을 뿐입니다. 밝은 날의 저 레트 버틀러의 고향이자 남북전쟁을 촉발한 찰스턴이 어떤 풍광으로 다가올지를 기대하며 동백이 핀 숙소에 곤한 몸을 누였습니다.

    

 

- 찰스턴 구 시가의 야경 - 

 

 

               - 늦은 밤에 도착한 데이토나비치 힐튼호텔의 수영장 너머로 드센 파도 소리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