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랭거스터 숙소 앞의 교회 -
“미국은 좋은 나라, 소련은 나쁜 나라” 그때 말로 국민학교 시절 교장선생님의 훈시입니다. 휴전동인 저는 이런 훈시를 귀 닳도록 들으며 자랐습니다. 미국은 내게 복음을 알게 해준 고마운 선교국가입니다. 소년시절 미국침례교의 후원으로 배포하는 성경통신과를 수료했습니다. 그 덕에 저는 소년시절부터 성경의 골격을 이해하는 성경지식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은 미제 껌과 초콜릿, 사지바지에서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Made in USA는 말로만 듣는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목회초년기에도 미국은 태평양만큼이나 내겐 너무 먼 나라였습니다. 이중 언어로 국내에 개설한 미국대학 과정을 마쳤지만 정작 졸업식에는 못 갔습니다. 저를 인터뷰하는 주한 미 대사관의 영사는 제 서류를 한 번 들추어 보곤 단 한마디도 묻지 않고 비자발급을 거절해버렸습니다. 그것도 아주 모욕적으로 거부당했습니다. 거부 이유를 묻는 내게 통역을 하는 한국인 여직원이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목사님들이 거짓말하기 때문이지요. 목사들이 미국가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돌아오지 않으니 안 주지요.’ 얼굴이 다 후끈했습니다. 그 시절은 우리사회에American dream이 절정이었습니다. 6,25이후 80년대까지 우리한국에서 미국은 이상향과 같은 곳이었던 겁니다.
- 사우스 이스턴 세미니리 채플 -
이 미국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이 변했습니다. 미국은 내게 더 이상 “미국은 좋은 나라” “고마운 나라”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주민주항쟁을 거치며 미국이 좋은 나라라는 제 인식과 인상은 깨어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국이 청교도들의 후예이며, 초 인류국가, 세계제일의 나라라는 인식은 변함이 없었나 봅니다. 그러기에 아들과 딸을 그 미국에 유학을 보냈던 것이지요. 좋은 사람에게 정이 식어가는 것 같이 미국은 내게 결국은 그런 나라였던 셈입니다.
이런 미국을 지난 달, 아니 지난해 12월에 비로소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제힘으로 공부하는 아들이 남들의 곱절에 달하는 햇수에야 비로소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미국에 보내고 팔년의 긴 세월을 찾아보지 않은 타조와 같은 부모의 무정함을 씻기 위해서, 조금 무리가 있어도 미국을 가기로 했던 것이지요. 밤 10시 조금 지난 시간에 인천공항을 이륙한 DL0026편 보잉777-200LR기가 하츠필드-잭슨애틀란타국제공항(Hartsfield-Jackson Atlanta International Airpor)에 우리부부를 내려놓은 것은 익일 저녁 8시반이 넘어서였습니다. 난생처음 밤에서 낮 없이 밤을 맞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 찰스턴 매리언 스퀘어 풍경 -
14시간이 넘는 그 지루한 야간비행 끝에 도착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도시, 애틀란타에는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밤비 내리는 애틀란타에서 북상하여 펜실베니아의 아미시 빌리지로 해서 워싱턴까지 올라갔다가, 워싱턴에서 다시 남하하여 아들이 수학하는 학교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웨이크 포레스트로, 그곳에서 남행하여 고색창연한 찰스턴을 경유하여 올랜드, 마이애미를 거쳐 미국의 땅 끝으로 불리는 저 key west까지, 그리고 그 키웨스트에서 플로리다를 동서와 남북으로 횡단해서 애틀란타까지 총 4500마일가량을 여행했습니다. 첫 미국여행으로는 대단한 여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돌아보면 남들이 선교여행이니, 탐방이니 여행이니 하며 미국을 제집 다니듯 하던 때, 저는 십여 년에 달하는 긴 환난의 세월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그 흔한 미국교회탐방 한번 못하고. 딸이 삼년, 아들이 미국에서 8년을 지내도록 찾지 못하다가 이제 68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 America trip을 했으니 참 주변머리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나름 의식 있는 목회자로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겨울비가 여름 소나기 내리듯 하던 애틀랜타 공항에서 그 땅에서 참 고달프고 외로웠을 아들을 홀로 두고 돌아설 때 이런 회한이 어쩔 수 없이 가슴에 차올랐습니다. 이 두 주간의 나의 첫 미국 여행 4500마일 여정을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서 실어보려 합니다. 아직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 광대한 대륙의 망망한 지평선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 키웨스트의 헤밍웨이의 집 별채 집필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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