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행/길에서 줍는 진주

홍도! 유치환의 바위가 생각나게 한 섬

아브라함-la 2019. 10. 20. 23:23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곳없네"

이 옛시조와 같이 사람은 변했으나

절경 홍도는 여전하게 거기있었습니다.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

 이 작은 섬과  띠섬, 탑섬등 20여개의 부속 섬들은

 1965년 4월에 홍도천연보호구역,

 천연기념물 제 170호로 지정 되어있습니다.

 유명한 풍란을 비롯 아름드리 흰 동백,

 후박나무등 274종의 식물들이

 이 섬을 더욱 보배롭게 하고 있지요.

 

 저녁무렵 황혼에 온 섬이 붉게 믈들어

  "홍도"라 명명했다지만

 저는 홍도가 붉은 바위섬이라서

 홍도가 아닌가 합니다. 

 관동8경이니 하는 자랑거리인

 경승들도 10경을 넘지 못하지만  

 이 홍도에는 남문 바위등

 홍도33경 자리하고 외롭게 있습니다

 

   홍도에서 하루 밤을 보낸 후

   유람선으로 이 홍도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이 유람선은 관광객으로 만원이고,

   유명한 포토 존인 뷰 포인트에서는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는 탓에

   이 홍도의 절경을 급하게 담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급하게 폰카로 잡은 사진이지만

   아쉬운 대로  홍도의 절경을 음미할 수는 있습니다.

 

이 홍도의 관광을 마칠 때

일행인 한 젊은 목사의 소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젊은 목사는

"오늘 홍도를 돌아보며

유치환이 왜 바위가 되겠다고 했는지를

알듯 하다."고 했습니다.

유치환은 바위를 이렇게 읊었지요.

 

"내가 죽으면 한 개의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哀憐에 움직이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흐르는 구름

먼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이렇게 시를 아는 낭만적이며

서정적인 젊은 목사가

이 아름다운 바위섬 홍도를 돌아보며

왜 유치환의 바위가 생각났을까요?

이 젊은 목사가 목회 애환을

깊이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목회야 말로 애련과 희로에도 물들지 않고

자아의 존엄이 둘로 쪼개져도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하는 거지요.

마치 바위처럼 말입니다.

 

그 날 그 젊은 목사가 기특하기도 하고

또 얼마나 저 사람 목회가 힘들었을까

안스럽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위임목사직을 노회와 상의없이 사임한

젊은 목사가 정치부에 불려와 고백한

사임의 변이 생각났습니다.

'인간적인 비애를 느껴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습니다"

 

홍도를 보니 유치환이

왜 바위가 되겠다고 했는지 알것 같다.

이 젊은 목사의 말은

이번 홍도여행이 내 목회 인생을 회고하고

감사하며 다짐하는 

시간이 되게 했습니다. 

 

돌아보면 목회자로 산 40평생은

정으로 쪼개도 소리내지 않는

바위로 산 셈입니다.

 

어려서 부터 저놈 소리 한 번 안듣고

자란 사람이 목사가 되고나서

필설로 말할 수 없는 환난의 정이 

 나를 바위 쪼게듯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대로

악하고 무리한 사람들에게

만물의 쓰레기처럼 되기도 했구요.

심지어 쓰러져 가는 담과 울타리 같은

저를 쓰려뜨리지 못해서 안달인

목사들이 저를 쪼개는  

정이되기도 했습니다. 

 

이 속에 깨지고 쪼개져도

바위처럼 소리내지 않을 수 있고

기품있게 고난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주님이 약한 저를 붙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로 사십여년 목회자로 목사로

의연히 그리고 목사답게

어였이 살수 있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내 목회의 시름은

그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목회의 고민과 시름은

처음보다 깊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저는 유치환이 말한

그 바위는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십자가에서도 잠잠하셨던

  주님처럼 될 날은 언젤까요?

그래서 그날 비 바람, 파랑에도  의연한

홍도의 붉은 바위섬을

다시 눈에 담아 두었지요.

 

이것이 이번 홍도여행길에서 

건진 진주일겁니다.

                                                           아직도 반석이 되지 못해

                                                              흔들리는 빈석인

                                                           늙어가는 목사에게도

                                                            여전히 주님은 내가 피할

                                                       저 높은 바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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