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행/길에서 줍는 진주

길에서 스쳐본 미국 동 남부

아브라함-la 2020. 2. 22. 19:41

      이번 저의 16일간의 미국여행은 그 대부분의 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애틀란타에서 북상하여 사우스 케롤라이나와 노스케롤라이나, 버지니지아, 웨스트 버지니아, 메릴랜드, 펜실베니아에서 워싱턴DC로 거기서 남하하여 미국의 땅 끝 키웨스트에 이르고 거기서 플로리다 반도를 동서로 남북으로 횡단하여 애틀란타까지 무려 4500여 마일을 달리는 차안에서 보냈기 때문입니다.

 

                                                        - 아름다운 인천공항 제2터미널 탑승게이트  -

                                   

제가 이 런 이유에서 길에서 본 미국이라는 제목을 채택한 것만은 아닙니다. 길이라는 말에는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도로하면 인격을 느낄 수 없지만, “이라고 하면 인격이 느껴지고 서정이 있고, 문학적이기 때문입니다. 달리는 말 등에서 보는 것도 대충인데, 하물며 하이웨이를 달리는 차안에서 스쳐본 것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길은 그 나라의 첫인상이요, 국력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 다는 말처럼 전체를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행은 떠나는데 묘미가 있고, 가는 것이 설레게 하기 때문입니다.

 

                                                          - 탑승할 델타항공보잉777-200LR기 -

 

                                             하늘 길 애틀랜타 공항의 인상

어제나 그렇듯 외국여행은 하늘 길로 가기 때문에서 공항에서 시작되고, 공항이 첫 인상입니다. 10시가 넘어서 인천공항을 이륙한 델타항공보잉777-200LR기가 14시간의 지루한 야간비행 끝에 밤 깊은 애틀랜타 공항에 우리 부부를 내려놓았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같은 날을 두 번 맞고 밤에서 낮없이 다른 날 밤을 맞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델타항공의 허브공항인 하츠필드-잭슨애틀란타국제공항(Hartsfield-Jackson Atlanta International Airpor)은 세계최대의 허브공항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좀 칙칙한 인상이었습니다. 이건 우리 인천공항의 이미지 때문에 일어나는 상대적 인상일 것입니다.

 

                                                                  - 몇년만에 상봉한 모자 -

 

 입국심사대의 긴 줄에서 지루하게 기다리는데 두 창구에서 유달리 까다롭게 심사하는 것이 눈이 띠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영어가 모자라서 인터뷰가 부담이었는데, 이게 묘하게 긴장감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줄이 바뀌어 그 까다로운 창구를 피해서 간 창구 입국심사관은 아주 긍정적이고 유쾌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자기도 한국어 못하는 건 마찬가지라면 좋은 여행되라고 아내와 주먹을 마주 대는 인사까지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그 직원에게 아내가 귀엽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애틀랜타 공항의 첫 인상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 퍼온 애틀란타 다운타운의 야경 -

 

                                                밤이 깊은 애틀랜타에서 북으로 

수하물을 찾아 나오니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려 삼년 반만의 해후였습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어둠에 쌓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도시 애틀랜타에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의 애틀랜타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빛나는 애틀랜타 다운타운을 지나는데 에모리대학(Emory University)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많은 건물 중에서 에모리대학이 제 눈에 띤 것은 제가 목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관심 있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 미국에서 첫 숙소 힐튼호텔의 소박한 성탄트리 -

 

애틀랜타를 벗어나서 한참을 달리다가 늦은 저녁을 하려 들어갔습니다. 아들은 미국에 오셨으니 미국햄버거를 먹어보셔야 한다며 미국에서 기독교정신으로 유명한 패스 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반 정도를 더 운전해 조지아 주를 벗어나 사우스케롤라이나 접경 지역의 힐튼호텔에서 첫 여장을 풀었습니다. ! 하루 길에 참 길고도  먼 길을 왔습니다. 그 노독이 미국 땅 첫 밤을 편한 잠을 자게 했지요.

 

                              - 비 안개에 쌓인 하이웨이, 발광 차선과 도로표지선이 야간운전을 편하게 해준다  -  

 

                                       주간 하이웨이(Interstate Highway)풍경

둘째 날 숙소에서 조식을 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첫 미국여행을 시샘이라도 하듯 흐린 하늘은 비를 뿌리고 바람은 사나웠습니다. 비 내리는 하이웨이는 운전에는 부담이었지만 오히려 낭만적이었습니다. 도로는 시원하게 직선으로 뻗었고 한적했습니다. 젓빛 안개에 젖은 도로변의 숲과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 달리 상하행선 가운데 도로보다 넓은 녹지가 목가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노면도 우리보다 깨끗했습니다. 도로체계도 편리했습니다. 홀수도로는 남북으로, 짝수는 동서로 잇는 길이고, 지역마다 이 체계로 번호가 부여되어있어서 번호만 알면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표지판과 신호등도 차선 만큼 설치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와 같은 휴게소가 없다는 점입니다. 하이웨이를 빠져 나와야 주유도 식사도, 용무도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화장실이 불편했습니다. 우리나라 휴게소 화장실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 널찍한 중앙녹지와 숲이 어우러져서 목가적 이미지의 도로 - 

 

그 하이웨이를 한나절을 달리며 비로소 우리와 다른 점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도로를 운전해가면 도시와 마을 산과 산, 계곡과 강과 시내 그 사이에 크고 작게 펼쳐진 들녘이 연이어 반복됩니다. 어느 지점이건 마을이 보이지 않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아기자기하달까요? 이와 달리 이곳은 한 나절을 달려도 산도 도시도 마을도 계곡도 경작지도 보이질 않습니다. 사우스케롤라나주에서 노스케롤라이나주를 지나는 동안 끝없는 구릉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다가 차량 통행량이 많아지면 보이지는 않지만 인근에 마을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버지니아 산지에 계속 되는 광대한 목장

버지니아가 멀지 않은 곳에서 미국에서 첫 점심을 했습니다. 아들은 맛 집을 알아 두었던 모양입니다. 비를 맞고 들어간 남부 식 맛 집으로 소문난 그 식당의 메뉴는 김치생각이 났지만 먹을 만했습니다. 식사 후 다시 81번 하이웨이를 따라 북행을 시작했습니다. 노스케롤나이나 주를 벗어나 버지니아 주에 접어들자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이지만 도로변 절개지도 보이다가 드디어 산지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완만한 산지는 목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드넓은 초지에서 방목된 소떼를 보며 우리나라의 좁은 목장의 소들이 가여워졌습니다. 대륙은 가축도 가축다움을 누린다고나 할까요.

 

                                           - 미국에서 첫 점심인 남부가정식 메뉴와 식당 풍경 -

 

 

                                  81번 하이웨이를 끝없이 따라오는 셰넌도어 능선

이렇게 끝없이 산지의 목장 속을 지나다 문득 저 멀리 앞에 하얀 비구름이 내려오는 높은 산줄기 하나가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통과하자 풍광은 다시 평평한 분지가 되고 도로는 북으로 곧게 뻗어가고 있었습니다. 81번 하이웨이를 달리다가 꽤 규모가 있는 한 지역을 통과하자, 멀리 왼편으로 마치 잔등 같은 검푸른 능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찌보면 커다란 통나무가 누어있는 듯도 하고, 거대한 홍두깨 같기도 한 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둥글고 순하며 부드러운 언덕 같은 일자 능선이 가도 가도 끝없이 따라 오는 게 저를 매료시키고 압도케 했습니다. 그 능선이 저 셰넌도어(Shenandoah Valley)였습니다.

 

                                             - 버지니아 산지에 접어 든 하이웨이 처음 본 도로범면이다 -

 

                                      - 81번 하이웨이를 가로지른 큰 산을 비구름이 넘어오고 있다 - 

 

캐나다 퀘벡 주에서 일어나 미국 뉴욕을 지나 앨라배마중부에 이르기까지 3,200에 걸쳐 있는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의 한 줄기가 셰넌도어이지요. 이 셰넌도어 계곡(Shenandoah Valley)만해도 그 길이가 약 241, 폭이 40, 높이914m로 솟아 셰넌도어 강을 남북으로 가르는 장대한 산줄기입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한 컨트리송 가수 존 덴버(John Denver)는 이곳을 “Take Me Home Country Road”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Almost heaven West Virginia Blue Ridge Mountains Shenandoah River” 가끔씩 운무가 넘실대며 그 장대한 능선을 넘는 풍광을 보며, “가히-Almost를 "거의"로 번역하지만 -천국 같은 웨스트버지니아, 블루리지 산맥 셰넌도아 강이라고 한 것을 알 듯 했고, 왜 미국인들이 이곳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지를 알듯했습니다.

    

                                     - 셰년도어 항공사진, 끝없이 뻗어가는 두개의 일자 능성의 셰년도어의 위용 -

 

  버지니아에서 웨스트버지니아, 메릴랜드 펜실베니아까지, 블루리지 산맥으로 이름과 위치를 바꾸어 가며 따라오는 이 순하고, 부드러운 둥근 능성에서 나는 비로소 대륙을 실감하고 대륙의 기상을 느꼈습니다. 흔히 위대함을 드높음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나 드높은 준령은 높지만 험하고 뾰쭉하며 날카로워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셰넌도어는 언덕 같지만 높이가 9백 미터가 넘게 높고, 높지만 둥글고 부드럽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다가서면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산입니다. 이렇게 진정 위대하고 큰 것은 둥글어 부드럽고 순한 기운이라는 걸 말입니다. 이렇게 둥글어 순하고 부드러운 것이 큰 사람이 아니겠습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이 그런 산 같은 분이셨습니다

 

  - 사진을 찍지 못해서 구글지도에서 퍼온 81번 도로에서 보이는 셰넌도아 능선 -

 

 - 저 둥글고 부드러운 일자능성이 81번 하이웨를 끝없이 따라온다 -

 

 

  대륙에서 보는 달

셋째 날 펜실베니아의 아미쉬 마을을 탐방하고 워싱턴DC를 향했습니다. 출발이 늦어서 갈 길이 바쁜데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는 헛 길을 간 것을 깨닫고, 거의 30분정도를 소요해서 제 길을 찾아 들자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 저무는 하이웨이의 한 곳에 이르자 눈 아래로 펼쳐 친 끝 간 데 없는 광대한 구릉지 위에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달은 우러러야 볼 수 있었지만 이곳은 달이 눈 아래로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게 대륙의 광활함 때문일 겁니다. 지금까지 본 달 중에서 가장 커 보이고, 그 빛이 노란 만월이었습니다. 끈간데 없는 광활한 분지의 구릉에 낮으막하게 떠 있는 달! 그 노을진 하늘을 한 떼의 기러기가 날고 있었습니다. 한 수 읊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알 수 없는 깊은 여수에 잠겼습니다. 아직 내가 가야 할 길은 먼데 여명을 어둠이 잠식해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위싱턴으로 가는 길 땅거미 지는 하이웨이에 보름달이 둥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