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행/길에서 줍는 진주

길에서 스쳐본 미국 최 남부

아브라함-la 2020. 3. 31. 00:50

- 일망무제“一望無際니, 일망무애 一望無涯니 하는 말이 비로소 실감났습니다. 그 일망무제의 망망한 지평선 위에 저녁 해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활함에 압도되어 생각마저 망망해져버렸습니다.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의 그 끝없는 습지와 수풀의 바다, 그 수풀의 바다에 물결을 이르키며 달리는 거친 바람, 그리고  노을 빛에 젖어드는 흐린 하늘에 맞닿은 지평선에 동화 되어 나는 작은 점 하나로 태고로 부터 거기 있는 듯했습니다. -

                                                      - 본문 중에서 -

 

 

 

 

                -키웨스트의 바다와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의 지평선-

 

일망무제의 지평선 앞에 넋을 놓고 서 있는 것! 그 지평선에 해가 뉘엿 뉘엿 질 무렵이면 더욱 좋으리! 한번 물리도록 일렁이는 파도가 망망한 바다를 달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끝없는 해변도로를 드라이브해 보는 것! 이것이 여행에 대한 나의 로망 중의 하나입니다. 이번 플로리다 횡단은 이 로망을 이루고 원을 푼 여정이었습니다. 미국 최남단 주 플로리다에서 두 번째 아침을 올랜도에서 맞았습니다. 숙소의 커튼을 열자 수림에 쌓인 올랜도 시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무엇 하나 막힌데 없는 망망한 지평선 그것이었습니다.

    

 

성탄절을 앞 둔 올랜도의 기후

컵 밥으로 조식을 하고 여름 복장으로 호텔 인근에 위치한 아울렛을 들렸지요. 비 개인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에 빛나는 플로리다의 태양이 바람에 흔들리는 드높은 야자수 푸른 잎에 빛나고, 기온은 사월처럼 기분 좋게 따뜻했습니다. 선선한 바람! 약간 따가운 태양이 우리나라의 초가을 그것이었습니다. 성탄절을 딱 한 주 앞둔 때에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올랜도를 누비는 게 웬 호사냐 싶었습니다. 이날 올랜도에서 정말 미국이 부러웠던게 잘 보존된 자연환경과 달게 느껴지는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이였지요.

         

                 

 

올랜도 아울렛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Miami를 향해서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은 그저 반반한 평지와 습지, 호수들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철도를 보았는데 참 허름해 보이는 철길에 열차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대륙인 미국은 철도가 접근성이 부족해서 활성화 되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미국이 고속철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온난화로 소나무가 몸살을 하고 있는데 아열대인 플로리다에 소나무가 있고, 소나무가 열대식물인 종려나무나 야자수와 함께 서있는 것이 제 눈을 끌었습니다.

 

 

 

산 없는 플로리다의 쓰레기 산

이렇게 동산 하나 언덕도 보이지 않는 하이웨이를 달리다 한 곳에 이르자 수많은 까마귀 떼가 하늘을 맴도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아래로 제법인 푸른 산 하나가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플로리다에 웬 산이고, 여기에 왜 이렇게 까마귀가 많은가라는 궁금증은 금방 풀렸습니다. 거기는 쓰레기 처리장이고, 그 산은 쓰레기 산이었던 겁니다. 예전의 난지도가 떠올랐습니다. 게헨나와 같이 항상 쓰레기를 태우던 연기가 오르던 난지도의 쓰레기 산이 녹지화로 공원이 되었지요. 쓰레기가 산이 없는 플로리다에 산을 만든 것입니다.

   

 

 

                                - 호수를 지나 들어선 웨스트 팜비치 시가 -

 

그 쓰레기 산과 하늘을 까마귀 떼가 뒤덮은 것은 미국의 쓰레기 처리 방식 때문입니다. 미국은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보니 휴게소나 식당을 가리지 않고 일회용을 씁니다. 식사하고 남은 음식과 일회용 접시를 분리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쓸어 넣습니다. 이번 여정에서 패스 푸드 점에서 주문한 음식의 삼분의 일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음식의 양이 많기도 했지만 기름지고 무엇보다도 짜서 남길 수밖에 없었고, 이것을 일회용 그릇과 함께 쓰레기통에 처리했습니다. 이런 쓰레기를 매립하니 까마귀들에게는 쉽게 먹이를 얻는 아주 좋은 서식처가 되었던 겁니다. 산이 없는 플로리다의 쓰레기 산은 이런 미국문화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편리주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 웨스트 팜비치 시내 워스 라군호의 요트들 -

 

미국 부유층들의 휴양지 Palm Beach

그 쓰레기 산을 지나고 동산 하나 없는 평지를 관통하는 95번 하이웨이는 중간 목적지 팜비치(Palm beach)에 이르게 했습니다. 하이웨이를 빠져 나와 호수를 지나자 줄기가 하얀 대리석 원주 같은 대왕야자수 가로변에 아주 깔끔하고 세련된 빌딩들이 들어 선 웨스트 팜비치(West palm beach)가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웨스트 팜비치 시가를 지나 팜비치를 잇는 로열파크 브릿지(Royal Park Bridge)에 이르자 찰스턴 하구에서 보았던 요트들과는 벌써 크기가 다른 고급요트들이 즐비 한 게 이곳이 미국의 부유층들의 휴양지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 로열 팜 웨이 -

 

Palm Beach 플로리다 유노리지(Juno Ridge)에서 시작하여 오션 리지(Ocean Ridge)까지 40여 km에 달하는, 우리 식으로 백리가  넘는  길고 좁은 섬의 한 지역입니다. 이 긴 섬이 대서양의 파도를 막아 내륙 사이에 길고 긴 석호潟湖(Lagoon)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석호가 Miami에서 북으로 동부를 잇는 내륙 수로 구간의 한 구간인 레이크 워스 라군 호(Lake Worth Lagoon)입니다. 이 워스 라군 호를 건너 로열 팜 웨이(Royal Palm Way)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선 듯 했습니다. 왕복 사 차선의 널찍한 길, 그 도로 양편과 중앙분리녹지에 들어선 하늘을 찌르는 대왕 야자수 가로수, 그 야자수 가로를 따라서 들어선 세련된 건물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지요.

 

 

- 유노비치에서 오션리지까지 40여키로메타의  레이크 워스 라군 호 (Lake Worth Lagoon) 이 석호가 마이애미에서 북으로 동부를 잇는 내륙수로의 한 구간 -                                                                                      

 

 

 

넉 줄의 하얀 대리석 원주 같은 드높은 대왕 야자 가로수도 인상적이었지만, 마을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카리브 풍의 주택들, 바둑 판 같은 도로의 종려와 대왕 야자수. 푸른 잔디와 열대식물로 잘 가꾼 정원과 열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이 이곳의 부유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로열 팜 웨이 끝은 곧 대서양이었습니다. 남북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빛 해변에 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 사우스 오션대로 팜비치에 대서양의 파도가 -

 

그 대서양의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사우스 오션대로(S. Ocean Blvd) 에 들어서자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저택들이 대서양을 바라보며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저택에 사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속이 궁금해졌습니다. 제겐 천지개벽을 해도 그런 집에 살아 볼 날은 없을 터이지만, 그 아름다운 정원과 건물들은 공연히 제 주거에 대한 입맛만 버리게 했습니다. 팜비치는 부유한 사람들의 세계였던 겁니다. 그 팜비치를 나와서 다시 마이애미로 가는 길에 오르자 하늘은 또 비를 뿌리기 시작하더니 억수 같이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비 내리는 하이웨이는 곧 저물었고. 어두워서야 사우스 마이애미(South Miami)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섬 Key west로 가는 길

이튼 날 오전 대망의 키웨스트(Key west)를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키웨스트는 마이애미에서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야 도달 할 수 있는 미 대륙 최남단 섬입니다. 내륙 접점에서 키웨스트를 잇는 오버 시즈 하이웨이(Overseas Hwy)의 만 해도 그 길이가 171,4km에 달합니다. 키웨스트를 들어가는 들목인 플로리다 시티에서 키웨스트로 가는 길은 US1도로로 키 라고스 섬(Key Largs)을 경유하는 노선과, 1번 도로에서 갈라지는 카드 사운드 로드(Card sound Rd)를 타고 노스 케이 라고스(North Key Largo)를 경유하여 키 라고스로 해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카드 사운드 로드 노선은 1번 하이웨이의 위인 북쪽으로 라고스 섬에 이르기 때문에 거리가 더 멀지만 US1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색다른 풍광을 보는 장점이 있습니다.

 

 

 

                                           - 카드 사운드 로드의 풍광, 키웨스트로 가는 첫 다리

                                                         길이 바닷 속으로 들어가는 듯  -

 

그래서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키웨스트에 들어갈 때는 카드 사운드 로드를 이용하고, 나올 때는 US1번 하이웨이를 이용하기로 한 겁니다. US1 하이웨이가 내륙과 키웨스트를 연결하는 구간이 오버 시즈 하이웨이(Overseas Hwy)이지요. 이 오버 시즈 하이웨이는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로 중하나인 꿈의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키웨스트는 하나의 섬이 아닙니다. 40여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을 42개의 다리로 연결한 플로리다 키즈라고 부르는 열도의 마지막 섬입니다. 42개의 다리 중에는 그 길이가 11km가 넘는 Seven mile Bridge도 있습니다. 이 섬들은 모두 산호초 섬이며, 따라서 바다는 코발트 빛 입니다. 맹그로브 숲과 야자수와 아열대 수목이 들어선 외길 171, 4Km를 수평선을 향하여 코발트 빛 바다 한 가운데를 달린다고 상상해보십시오.

    

 

                                           - 키웨스트로 가는 첫 섬 키 라고스의 끝 간데 없어 보이는 수림의 벽 

 

 

 

 

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저도 툭 떠진 바다와 해변을 참 좋아합니다. 망망한 푸른 바다에 파도가 하얗게 달려오는 해변을 따라서 달리는 것은 속이 다 후련합니다. 고성의 화진포에서 속초에 이르는 해변 길, 강릉에서 후포에 이르는 길에서 보는 바다도 참 좋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은 바다를 지나는 구간보다 바다를 비껴가는 구간이 더 많아서 해변으로만 달리고 싶은 욕구를 충족할 수 없지요. 그리고 바다 가운데를 통과하는 느낌을 주는 도로는 시화방조제와 안면도를 잇는 서산방조제 뿐이다가 새 만금 방조제가 생겼습니다. 바다 가운데를 지나는 느낌이 좋아 그리 멀지 않은 시화 방조제는 자주 갔지만, 늘 달리다 만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새 만금 방조제는 그 길이야 상당하지만, 방조제 밑으로 도로가 나서 정작 먼 바다는 볼 수 없고 한 편 바다 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바다 한 가운데를 달리는 느낌이 반감합니다.

 

 

 

 

 

키웨스트로 가는 길이 이 원을  풀어주었습니다.오버 시즈 하이웨이만도 그 거리가 171,4km이면 얼른 서울에서 대전을 지나는 거리입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를 눈이 시린 코발트빛 하늘과 그 하늘 빛 바다가 맞닿은 망망한 수평선을 향하여 바다 한 가운데를 원없이 달렸던 겁니다. 아쉽게도 키 라고스에 이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흐린 날씨라서 코발트 바다 빛이 흐려져 보였습니다. 그 대신 그 망망한 수평선에 걸친 먹구름이 몰려오는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키웨스트에서 나오는 날은 청명해서 하늘빛과 바다 빛이 같은 키웨스트의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지요. 지금도 그 망망한 코발트빛 바다로 뻗어 들어가는 외길과 키 작은 맹그로브 늪지, 플로리다의 태양이 빛나는 코발트빛 수평선에 아스라이 떠있는 섬들이 눈에 선합니다.

 

 

 

 

 

- 세븐 마일 브릿지 -

 

 

 

 

 

 

                               - 늦은 오후 키웨스트의 바다, 헤밍웨이의 저택과 별채 집필실 -

 

키웨스트에서 망망한 수평선을 향해서 바다 한 가운데를 달리는 경험을 했다면, 그 키웨스트에서 돌아오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내륙의 바다 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오버 시즈 하이웨이를 벗어나 들어선 내륙부터 끝없는 습지였습니다. 그 서던 글라데스(Southern Glades)습지를 지나 US1번 도로를 따라서 홈스 태드를 지나 997번 도로로 북상했습니다. 이 길에서 비로소 미국의 끝없는 경작지를 보았습니다. 겨울이어서 비인 끝을 볼 수 없는 붉은 황토 밭, 노지에서 화초를 기르는 방대한 화훼단지들, 거리가 멀어서 구별할 수 없지만 옥수수 아니면 사탕수수일 끝없는 녹색의 물결과 이름 모를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플로리다를 횡단하며 그 곳의 특산품인 귤과 열대과일을 맛보지는 못한게 아쉬웠지만, 광활한 경작지의 지평선을 보는 것이 플로리다에서 열대 과일을 먹지 못한 주림을 채워주었습니다.

 

 

 

 

키웨스트에서 나와 플로리다(Florida)반도를 동서로 횡단하려면 두 노선이 있습니다. 마이애미에서 탬파(Tampa)에 이르는 41번 도로와 마이애미에서 북으로 한참 윗 지역에서 탬파를 잇는 75번 하이웨이입니다. 도로야 왕복 4차선인 75번 하이웨이가 좋겠지만 우리는 41번 도로를 선택했습니다. 41번 도로를 달리며 이 노선을 선택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아니 그 길을 선택한 건 행운이었습니다. 41번 도로는 마이애미에서 탬파를 연결하기 때문에 타마이애미 트레일(Tamiami Trail)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에서 Trail은 산지와 산지를 잇거나 관광지를 잇는 2차선의 좁은 도로를 의미합니다. 그냥 관광도로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997번 도로로 북상하다가 41번 도로를 만난 십자로에서 좌회전으로 이 Tamiami Trail에 진입했습니다. 처음 진입했을 때는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단 십분도 지나지 못해서 이 노선이 운하를 따라 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그리고 전 시야가 광활한 습지였습니다. 후에 알았습니다만, 그 광활한 습지가 플로리다 최남단을 차지한 저 유명한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Everglades National Park)이었습니다, 이 타마이애미 트레일을 기준으로, 남쪽은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 북쪽은 프란치스 S. 테일러 야생동물보호지역(Francis S. Taylor Wildlife Management Area)과 에버글레이즈 앤드 프란치스 S. 테일러 야생동물보호지역(Everglades and Francis S. Taylor Wildlife Management Area),빅 사이프레스 국립보호지역(Big Cypress National Preserve)등이 있습니다. 악어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악어를 보는 행운은 누리지 못했습니다.

 

                                  - 타 미이애미 트래일로 불리는 41번도로

                                    마이애미에서 동서로 플로리다반도 습지 절반을

                                    자로 그은 듯 직선으로 횡단하고 있다 -

 

                                     

 

 

마이애미에서 탬파에 이르는 이 타마이애미 트레일은 그 길이 무려 275miles이니, 443km가 넘습니다. 이 길이 타마이애미 운하와 함께 마이애미에서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의 중간 지역까지는 자로 그은 듯 직선으로 플로리다 반도의 그 광활한 습지를 동서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는 평균 고도가 5m에 불과하며, 가장 높은 지점이 주의 북서쪽에 위치한 브리튼 힐(Britton Hill)105m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 에버글라데스공원의 9336번 도로에는 유명한 도로표지판이 있답니다. “Rock Reef Pass Elevation 3feet" 1미터가 채 안 되는 높이에 ”Pass" 라는 단어를 쓰는 곳이 플로리다입니다. 이렇게 변변한 언덕 하나 없어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한 습지를 타마이애미 트레일이 타마이애미 운하와 평행으로 뻗어 나가 지평선에 맞닿아 있습니다. 키웨스트로 가는 길이 망망대해 속으로 가는 길이라면 타마이애미 트래일은 망망한 습지의 바다 속을 달리는 길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 길을 한동안을 태양을  앞에 두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다 한곳에 이르러 이 광활한 습지와 지평선을 담으려고 차에서 내려 사방을 돌아보았습니다. 앞 방향인 서쪽을 보아도 그저 망망한 습지이며, 뒤돌아보고 좌우를 보아도 그저 끝 간 데 없는 습지였습니다. 그 광활함과 망망함을 담아보려 했지만 너무 평지라서 그 광활함이 카메라에 담겨지지 않는 것이 한 이었습니다. 일망무제“一望無際니, 일망무애 一望無涯니 하는 말이 비로소 실감났습니다. 그 일망무제의 망망한 지평선 위에 저녁 해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활함에 압도되어 생각마저 망망해져버렸습니다.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의 그 끝없는 습지와 수풀의 바다, 그 수풀의 바다에 물결을 이르키며 달리는 거친 바람, 그리고  노을 빛 젖어드는 흐린 하늘에 맞닿은 지평선에 동화 되어 나는 작은 점 하나로 태고로 부터 거기 있는 듯했습니다

 

                                                  

 

                                                       - 에버글라데스 그 광활함을 담아보려했지만 

 

그 직선 도로가 북으로 약간 방향을 트는 지역에 이르자 도로변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습지이기는 하지만 이 지역은 도로 양편으로 숲이 높게 우거졌습니다. 그 숲의 나무들에는 공기 중의 수분으로 자라는 기생식물 스페니쉬 모스(Spanish mdss)가 줄줄이 걸려 좀 괴괴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지요. 가끔 그 길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어디선지 악어가 기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높이 자란 나무들이 숲을 이룬 2차선의 좁은 도로를 달리니 양편 숲의 나무들이 빠르게 눈앞으로 달려들어 휙휙 지나갔습니다. 하이 패스를 통과 할 때의 느낌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이 현상에 놀이 기구를 탄 듯 눈이 피곤하여 멀미 기가 일었습니다. 곧 땅거미와 함께 칠흑 같은 어둠이 덥혀왔습니다. 그리고 탬파에 이르는 길의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플로리다의 풍광도 이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지요.

  

 

 

 

그날도 그렇게 Tampa의 숙소에는 어두운 밤에야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숙소인 그 호텔은 참 정갈하고 널찍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달리는 차안에 있는 듯 했습니다. 샤워를 하고 컵라면으로 속을 달래자 비로소 원기가 돋았지요. 그날 밤 두 내외와 아들이 그날의 여정을 복기하다가 문득 아들이 어렸을 적이 생각났습니다. 아들이 세 살인지 네 살 적이던가요. 늦은 가을 한계령을 넘어서 낙산해수욕장에 들렸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쓸쓸한 낙산해변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망망한 동해바다를 아내와 함께 지켜보다가 문득 아들을 보니 모래사장에 선 아들이 한동안을 미동도 하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게 아니겠습니다. 겨우 세살배기아들이 처음 본 망망한 동해바다에 압도 되었던 겁니다. 그날 저는 플로리다의 그 광활한 습지와 자연환경과 지평선에 그렇게 압도된 겁니다.

    

 

 

미국에 다녀 온지 벌써 세 달이 경과했지만 지금도 운하와 함께 평행으로 지평선을 향해 뻗어가는 길과 금방이라도 악어가 나올 것만 같은 그 거칠고 망망한 습지와 노을에 물들어가는 지평선이 그립습니다. 지평선은 하늘이 바다나 땅이 맞닿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선입니다. 지평선이 지고한 하늘이 지구에서 가장 낮은 평지와 만남이라는 것은 참 의미심장합니다. 드높아 하늘을 찌르는 산은 망망한 지평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낮아지고 낮아져서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평지와 바다만이 하늘에 맞닿아 한 눈으로 다 볼 수 없는 일망무제의 지평선을 그을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있지요. 지고하신 하나님이 만물보다 부패한 인간에게 임하시기 위하여 한 인간으로 낮아져 인간을 만났을 때, 유비가 없는 일망무제의 사랑의 지평선을 이루셨고,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압도  되어 그는 거룩하시다!”며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한 인간이 크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자기가 낮아지고 더 이상 낮아질 수없는 평지가 될 때만 한 인생이 비로소 전능자를 만난 지평선을 그을 수 있게 되는 거지요.그래서 선지자는 산과 언덕이 낮아져서 평지기 된 곳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다고 하신게 아니겠습니까?(사40:3,4)

 

   

 

한 인생의 위대함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하늘을 찌르는 드높은 준령이 지평선을 그을 수 없듯, 고고함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고고함이 타자를 위하여 더 이상 낮을 수 없는 평지가 될 때에야 그는 일망무제의 지평선 같이 그의 사람 됨의 가눔이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날 플로리다의 광활한 습지의 망망한 지평선은 일망무제의 지평선을 보고 싶은 제 원을 채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말없는 지평선의 소리없는 말씀을 들게 해주었습니다. “애! 넌 얼마나 낮아지고, 평지가 되었느냐?” 사실 우리는 위대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낮아져 평지가 되지 못했을 뿐입니다. 플로리다의 지평선을 떠올리면 말없는 그 지평선이 지금도 제게 그렇게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