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11,21 추수감사절
본문 : 신26;1-11
말씀 : 라인권목사
코로나19 바이러스 속에서 두 번째 추수 감사를 맞았습니다. 두 해 동안을 이 재앙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셨고, 오히려 형통하게 하시고, 이 나라를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방역을 위해서 애쓰신 당국과 의료인들, 함께 한 가족과 이웃에게도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추수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모였지만, 추수 감사는 이 종교에도 있습니다. 우리의 추석이 추수감사이며, 바벨론의 우상 종교는 창조 신화를 극화해서 장엄하게 재현하는 예배를 합니다, 자연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곡물을 낸다고 믿어서 자연을 예배합니다. 이렇게 보면 다른 점은 우상에게 감사를 하고,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께 추수 감사한다는 점만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여호와 종교, 기독교의 추수 감사는 이교의 추수 감사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점을 강조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추수하게 되었을 때에, 그 맏물을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로 드릴 때에 헌제자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고백하게 하신 감사 예문입니다. 이 감사의 고백에 우리 기독교의 추수 감사가 어떤 것인지가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우리 기독교의 추수 감사는 창조의 하나님이 아닌 구속하신 구원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추수 감사하면, 당장 비와 햇빛을 주신 창조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창조의 하나님을 감사하고 경배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을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이르러서(5-9) 그 땅의 토지 소산을 얻게 되었는지를 길게 고백하게 하셨습니다.(10) 즉 추수 감사를 창조의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에서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께 드리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 이전에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하셨나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한 곡식은 우순풍조하게 하시는 창조의 하나님의 산물이 아니라,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신 구원의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며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종 된 집에서 구출하여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땅도, 자유도 있고, 추수가 내 소유가 되고 의미가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 아닌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추수한 곡식-거둠, 성취-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셔서 생명 있게 하신 은혜의 산물이며 결정체입니다. 이 은혜! 이 생명이 있으므로 추수가 있고, 결혼도 사업도 인생도 의미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생명이 없으면 다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추수한 곡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구속하신 은혜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교와 같이 곡식을 감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구속하신 하나님과 그 구원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렇게 곡식이 아닌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이걸 고백하는 것이 추수감사입니다. 이 구속의 하나님과 구원받은 생명이 추수 감사의 이미지입니다. 추수 감사의 이미지는 풍성한 곡식이나 자연이 아닌 골고다와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기독교의 추수 감사입니다.
이걸 고백해야 우리의 추수 감사가 이방 수준을 넘게 됩니다. 이걸 고백하지 못하면 감사가 물질주의가 됩니다. 이교는 곡식, 즉 풍요가 목적이고 신은 그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추수절에 추수한 곡물에서 생명 있게 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봅시다. 구원하신 하나님을 감사합시다. 곡식이 아닌 구원의 하나님을 감사하므로 물질을 초월하는 감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셔서 추수가 의미가 있고 가치 있고, 소망이 있게 하신 하나님께 구원의 감격으로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기독교의 추수 감사는 창조의 하나님보다 역사 가운데 행하시는 역사의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맏물을 드리는 헌제자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이 되게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구속의 역사를 길게 반복적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이게 이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이방 종교는 추수하게 하는 자연이 중요해서 자연을 숭배했지만, 이스라엘은 자연보다 역사 가운데 계셔서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했습니다. 역사를 하나님의 무대로 인식할 때에 하나님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전설 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를 이루시는 오늘의 구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역사 속에서 역사를 이루시는 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경하고 추수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추수한 곡식은 역사의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 은혜의 결정체 셈입니다. 추수한 곡식은 하나님이 역사의 하나님이신 증거이며 그 은혜의 결정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지금 하나님이 역사 중에서 역사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역사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은혜로 거두고, 먹을 수 있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역사의 하나님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의 하나님 보다 역사의 하나님을 감사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추수 감사의 특징입니다. 이 감사가 풍요를 추구해서 자연을 예배하는 바알주의를 극복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 역사의 하나님을 잊을 때에 창조의 하나님과 자연을 구분하지 못해서 바알이라는 맘몬니즘에 빠진 겁니다. 그러므로 추수에서 역사의 하나님을 보고 역사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 역사의 하나님을 감사할 때에 범사에 감사하는 영을 갖게 됩니다. 모든 것이 선이 되게 역사를 주장하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 될 것을 믿고 감사할 수 있고 매사에 긍정적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추수 감사에 이 역사의 하나님의 섭리를 봅시다. 하나님께서 다 축복이 되고 구원이 되게 역사를 주장해 주심을 보고, 감격해서, 역사의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며 경배하는 참된 기독교의 추수 감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기독교의 추수 감사는 지금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감사하고 그 사랑의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사람의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충성으로 사는 땅이라고 했지요. 이 믿음과 충성으로 살면 하나님이 사랑으로 파종할 때에 이른 비를 주시고, 출수기에 늦은 비를 언약의 축복으로 주십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한 곡식은 하나님께서 지금, 현재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추수한 곡식을 보며 곡식이 아닌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산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축복의 의미입니다. 축복은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 너희들 힘내라, 잘해라! 이런 하나님의 격려요 응원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격려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불발하게 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곡식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삽니다. 앞으로도 오직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이 감사와 다짐으로 추수한 맏물을 사랑의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게 우리 기독교의 감사입니다. 우리는 곡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한 물질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금년 추수에서 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봅시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느낍시다. 그래서 온몸과 마음과 영으로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기를 기뻐하는 사랑의 하나님을 감사하시고 경배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은혜로 가족은 금년 우리가 거둔 것에서 이 하나님과 이 은혜를 보셔야 할줄로 믿습니다. 생명 있게 하신 구속의 하나님! 추수에 이르게 역사를 주장하시는 역사의 하나님! 사랑하여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감사합시다. 저는 이 감사가 추수한 곡식, 물질만을 감사하는 이교의 수준을 넘어 구원의 하나님, 역사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감사하는 참된 추수 감사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풍성한 삶에 이르게 한다고 믿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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