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왕이신 예수 보인 반응

아브라함-la 2021. 12. 12. 21:16

021,12,12,주일

본문 : 마2:1-12

말씀 : 라인권목사

샬롬입니다. 성탄절이 한 주간, 이 해도 단 두 주 남았습니다.새해 신앙 월력이 나왔습니다. 이 월력으로 새해를 알차게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미리 예고해 주신 의미

우리 예수님께서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험에서 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오신 것은 뜬금없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조상 아브라함과 율법과 시편과 선지자로 예언하신 것이며, 그 예언의 성취로 마침내 오신 겁니다. 만일 이렇게 미리 알려 주지 않고 오시면 누구세요?‘ 이럴 겁니다. 생경하고 생뚱맞은 일이 됩니다. 그러나 미리미리 자세히 알려 주셨기 때문에, 왕이신 예수님이 오실 때에 욥이 말한 것과 같이 낯선 사람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잘 알고 있던 사람과 같이 맞이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욥 19:27)

 

왕을 맞는 유대인들의 반응과 태도

그래서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까? 유대인이 기쁨으로 흔연히 예수를 맞을 것으로 예견할 수 있고, 유대와 예루살렘은 왕을 맞는 기쁨과 감격으로 축제 분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나셨을 때는 그런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축제의 소동이 아니라, 공포의 전율이 흘러넘쳤습니다. 왕의 백성들은 왕을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이방인 동방 박사들이 왕을 기다리다가 맞으러 왔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왕께 경배드리러 가는데 왕의 백성들은 오히려 뒤에 남아 있었고, 한 사람도 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헤롯은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유대인들의 예수님께 대한 태도의 예표이자. 이 세상의 예수님과 복음에 대한 태도와 반응의 예표입니다. 이 세상은 마치 예루살렘 사람들과 같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합니다. 배척하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에 위험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헤롯과 같이 적의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나셨을 때에 보인 유대인들의 반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이 예수님과 복음을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은 노아 때 사람들과 같이 일상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아 때 사람들이 집 짓는 것, 혼인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 먹고 마시는 것, 이것은 죄가 아닙니다. 필요한 일미며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노아 때 사람들은 일상에 골몰하여 홍수와 홍수가 나면 일어날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잃게 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예루살렘 사람들도 예수를 잃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동방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왕께 경배하러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가지 않고 뒤에 남았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르지 현상에 있습니다. 새로운 왕조가 서서 현상이 깨질까 두려웠습니다. 왕을 맞으러 가면 헤롯에게 불이익을 당할 것을 두려워했을 겁니다. 그래서 소동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왕을 맞으러 가는 것보다, 현재 일, 사무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동방 박사들은 경배하러 가는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 뒤에 남았습니다.

 

이것이 지금도 사람들이 예수님과 복음을 믿지 않고 배척하는 이유입니다. 일상적인 일에 매몰되어서 사활이 걸린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혼보다 물질에 함몰되어서 영혼과 천국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생이신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황금이 있어도 황금이 곡식을 대신할 수 없고, 양식이 있어도 양식이 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과 영을 우선 하셔서 왕이신 예수님께 경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이 세상이 예수님과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신앙이 관념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미가의 예언대로 유대 땅 베들레험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미 5:2).(5:2) 이렇게 잘 알면서 왜 동방 박사들은 가는데 이들은 뒤에 남았을까요? 우선 이들도 그냥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정확하게 알았지만 이는 관념에 불과했지 실제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관념에 불과해서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이게 바로 교회 안에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이유입니다. 이게 교회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진짜 교회가 되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입니다. 신앙이 관념적입니다. 머리로만 믿습니다, 입으로만 믿습니다. 교리로만 믿습니다. 신앙, 즉 마음이 아니라, 이론 지식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왕께 경배하러 가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관념적인 신앙이 구원이신 예수를 맞는 일에 뒤에 남게 합니다. 이 관념적인 신앙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지 못하고 뒤에 남게 합니다. 그러므로 관념이 아닌 전인으로 실제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이 세상이 예수님과 복음을 영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헤롯과 같이 적의를 갖는 것은 에수님과 복음을 위해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유대인의 왕이 오셨다는 소식에 공포를 느꼈습니다. 유대인들이 새 왕을 옹립하여 봉기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위해라고 인식한 것입니다. 그래서 적의를 가지고 예수를 없이 하려고 했습니다. 이게 세상이 예수님과 복음에 적의를 가지는 이유입니다. 세상은 예수와 예수를 믿는 것이 위험이 된다고 여깁니다. 교회 나오는 걸 손해로 여깁니다.

 

오해와 선입견이

이렇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에 대한 오해와 여기서 파생한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왕으로 오해했습니다.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했습니다. 이 왕이 오면 기득권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편견을 가진 겁니다. 이 왕이 오면 자리를 잃고 실직할 수 있고, 왕위를 빼앗길 수도 있다, 이런 선입견을 가진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는 복음을 오해해서 제국에 위해하다고 여겨서 박해했습니다, 조선은 복음을 무군 무부하는 폐도를 오해해서 박해했습니다. 그리고 세인들은 이런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예수와 복음에 적의를 가집니다. 이렇게 세상은 알지도 못하며 복음에 적의를 가지는 겁니다.

 

문제는 이 오해가 가져온 치명적인 결과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오해와 편견 때문에 계속 예수를 배척하다가 예수를 십자가로 보냈습니다. 이것이 저주받는 민족이 되게 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은 예수 앞에 서지 못하고, 뒤에 남게 했습니다. 이 반응이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호세야로 예언하신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 하신다는 호세아의 예언이 동방 박사들에게 제일 먼저 성취된 것입니다.(9:25) 동방 박사들은 이방인의 첫 열매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경배하지 않는 자에게는 부딪쳐서 멸망케 하는 돌이 되고, 경배하는 자에게 구원의 반석이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께 대한 반응이 영원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어떻게 왕이신 예수께 경배할까

그러므로 우리는 동방 박사들과 같이 왕이신 예수께 갑시다. 그들은 가사 불구하고, 제 벡사 하고 왔습니다. 왕이신 예수를 만나는 것을 가사보다 우선하고 사무보다 우선 하셔서 유대인처럼 뒤에 남은 것이 아니라, 동방 박사들과 같이 예수께로 나가시기를 축복 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믿고 왔습니다. 실제로 믿었기 때문에 올 수 있고 갈 수 있었습니다. 관념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과 같이 예수께로 나가서 예수를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동방박사들은 관광이나 사업상으로 온 것이 아니라,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려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업상 교제상이 아닌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오셔서 동방 박사들과 같이 예수께 경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아기 예수께 경배한 동방 박사들은 길이 바뀌었습니다. 예수께 경배하면 인생이 바뀌고 인생길이 바뀌는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2:12) 이 아들! 이 왕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 동방 박사들을 따라서 예수께 경배하러 가시겠습니까? 뒤에 남으시렵니까?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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