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1,21
본문 : 마6:9-13
말씀 : 라인권목사
평강입니다. 오늘은 송년과 신년 주일로 중단했던 주기도문 다섯 번째 간구를 이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첫 시간에는 이 다섯 번째 간구에서 사죄를 구하는 죄가 무엇이냐를, 둘째 시간에는 죄 사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이 사죄를 구하는 기도에서 논란이 많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 무슨 뜻이라는 겁니다. 이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우리에게”를 먼저 부정적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부정적으로
첫째, 이 기도는 우리의 용서가 우리의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근거나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를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용서받으려면 용서하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서가 사죄의 근거, 공로가 되는 겁니다. 천주교의 보속이나 죽은 자를 위한 미사가 이런 맥락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기독교가 아닙니다. 사람의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들 예수의 십자가의 피 공로로 죄를 사하십니다. 이 사죄를 받는 것은 회개하는 믿음뿐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둘째, 이 기도에서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다는 것은 그 죄나 죄인을 받아 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가장 가슴에 닿게 해석한 사람이 로이드 존스입니다. 이분은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지 좋아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셨다는 말은 죄와 죄인을 좋아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사탄에게 속아서 죄에 종이 되어서 죄를 짓고, 죽게 된 것이 불쌍하고 걱정이 되셔서 아들로 구속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수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 죄를 용납하거나 그 사람을 죄가 없는 사람인양 여긴다거나 감정적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고, 격 없이 터놓고 지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나를 대하신 것 같이 나도 그를 미워하거나 안 되기를 바라거나 내가 처벌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걸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와 교회에 많은 해를 끼친 구리장색 알렉산더에게 허물을 그들에게 돌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딤후 4:16) 용서한 겁니다.
그러나 15절은 “주께서 그의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라고” 합니다. 즉 바울은 알렉산더가 사탄의 종노릇 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용서했지만, 그 죄는 용남 하지 않고, 그 죄는 하나님의 심판받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용서했다고 그를 무결하거나 무해하고 좋은 사람 여겨서 격 없이 터놓고 지내지 말라고 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교회를 해롭게 못하게 하고, 해를 당하지 않게 조심하고 주의하라고 한 겁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을 마치 손양원목사님이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은 것 같이 원수를 친구같이 형제같이 가족 같이 대하라는 걸로 압니다. 용서는 이런 감상주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주께서 갚으신다고 했습니다. 용서는 나는 내게 잘못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일만 하고, 그 죄의 심판을 내가 하지 않고 하나님이 멸하시게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원수를 사랑하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게 해 줍니다.. 이것이 원수로 죄를 짓게 하지 않고, 다시 당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이 용서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이루는 용서가 될게 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 이 사죄의 기도는 내 죄를 위해서지 다른 사람의 죄가 사함 받기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많은 성경교사들이 이 말씀의 예화로 코리템붐을 듭니다. 코리템붐이 집회를 마치고 나가는데 한 남자가 악수를 청해왔습니다. 그는 나치 수용소에서 자기를 고문하고 언니를 죽게 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손이 내밀어지지 않아서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할 능력을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원수의 손을 잡는 순간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의 능력을 경험했다. 용서해야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경험한다, 이렇게 원수를 용서함에 이 다섯 번째 간구의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간구에서 원수의 죄 사함 받기를 소원하는 기도는 없습니다. 이 기도는 원수의 죄가 아니라, 내 죄 사함을 구하는 겁니다. 왜요, 내가 안되고, 내가 성장하지 못하고. 잘못되게 하고, 죽게 것은 원수의 죄가 아니라, 내 죄 때문입니다. 내 죄만 나를 상하게 합니다. 남의 죄 천 가지 보다 나 죄 하나가 무섭습니다. 지금 남의 죄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죄 걱정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내 자신에 대하여 환경에 대하여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못하는 이 죄가 나를 망칩니다. 이 죄가 원수입니다. 이게 하나님과 막히게 했습니다. 이걸 풀어야 삽니다. 그래서 이 내 죄 사함 받으려고 내 죄를 회개하는 겁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에 내 죄를 걱정하고, 내 죄에서 떠나기를 간구합시다. 이렇게 회개할 때에 우리 하나님이 내게 풀어 주셔서 모든 것이 나를 돕고 나와 화목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주기도문의 이 다섯째 사죄를 구하는 간구는 내 죄 사함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주기도문은 내 죄 사함을 어떻게 간구하라는 겁니까? 이제 “우리가 우리에게”를 긍정적으로 정리합시다.
긍정적으로
첫째,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 사하여 달라는 것은 죄 사함을 구하는 사죄의 신앙고백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범죄 한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합당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사탄과 죄에 종노릇 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근심하셔서 아들 예수로 대하셔서 나를 구속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들을 주신 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십자가의 피에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회개함으로 사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세례 받을 때에 이렇게 서약합니다. “그대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줄 알며 당연히 그의 진노를 받을 만하고, 그의 크신 자비하심에서만 구원 얻을 것 밖에는 소망이 없는 자인 줄 아느뇨?”이게 사죄받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사죄를 구하는 사람은 이 믿음, 이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 같이 나도 내게 잘못한 자를 불쌍히 여기오니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옵소서!’ 이렇게 사죄의 신앙고백으로 하나님께 사죄를 간구합시다. 이 믿음과 이 영으로 사죄를 구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십니다. 그 이들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왜 사죄를 구할 때에 이 신앙고백으로 회개합니까? 우리는 구원받았으면서도 연약해서 자주 넘어집니다. 회개한 죄를 또 회개합니다. 그래서 내가 가증해집니다. 이때에 낙심하지 않고 내가 가증하나 하나님은 나를 불쌍히 여겨서 아들로 용서하셨습니다. 나로서는 소망이 없으나 하나님의 자비에 소망이 있습니다. 이제도 나를 자비로 대하사 나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범죄 하지 않도록 죄의 자리에서 올려 주십시오. 이 믿음으로 죄 중에서 낙심하지 않고 회개합니다, 그러므로 죄로 낙심될 때에 이 사죄의 신앙고백으로 회개하여 사유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는 것은 사죄를 구할 때에 사죄의 은혜에 합당한 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 사함의 은혜를 구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우리는 좋은 사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추모일에 유족들이 추모하는 곳에서 추모예배를 드리지 않고, 별도로 서울의 한 교회에서 드렸습니다. 이는 유족과 맞서고, 척을 지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명분을 만드는데 하나님과 예배와 교회를 이용한 망령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우상 취급한 겁니다.
이렇게 사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범과 해서 사죄의 은혜를 구하면서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기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자기 죄 사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마치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옥에 가둔 것과 같습니다.(마 18:21-35)임금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탕감해 준 것은 그 종이 그 엄청난 빚을 갚을 자력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섭니다. 이렇게 큰 은혜로 탕감받은 종이 얼마든지 갚을 수 있는 빚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불쌍히 여기지 않아서 목을 잡아 옥에 가둔 것은 긍휼히 여김 받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서 주인이 다 갚게 한 겁니다.
이렇게 죽을죄 탕감받은 우리가 사죄를 구하면서 내게 잘못한 사람을 미워하고, 안 되기를 바라는 이 완악한 마음으로 나를 불쌍히 여겨 용서받기를 원하는 것은 사죄의 은혜받기에 합당한 영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우상 취급한 겁니다. 이게 하나님과 막히게 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같이 하라라”라고”고 “너희가 제단에 예물을 드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가서 형제와 사화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할 때에 사죄의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용서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게 잘못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영으로 내 죄 사하시를 구합시다. 이 마음과 영으로 사죄를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죄에서 이륙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셋째,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는 이 기도는 나는 용서하고 용서를 받아야만 사는 존재니 나를 부디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범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내가 죄 없다 고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고, 만일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요일 1:8,10) 내게 죄를 짓는 자만 죄짓는 것만 아니라, 나도 그 사람과 같이 하나님께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자기에 대하여 죄짓는 자입니다. 그래서 내게 잘못한 사람이 용서를 받아야 하듯 나도 하나님과 사람의 용서를 받아야만 사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서 용서받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가정에서 용서받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회사에서 용서받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학교에서 용서받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인생은 다 범죄 하는 존재라서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이 자기를 고백하는 것이 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사는 존재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나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합시다.
뿐만 아니라, 인생은 용서를 받아야 사는 것 같이 용서해야 사는 존재입니다. 내게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내 마음에 미움과 분노와 증오가 가득합니다. 어디 잘되나 보자 이러고 있으면 내 마음이 완악해집니다.. 평안하지 못합니다. 안식이 없고, 자유가 없습니다. 마음이 지옥입니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 용서하라는 것은 나를 위해서입니다. 용서해야 심령이 평안하고 기도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용서받아야 하고 용서해야만 사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여 준 것 같이”는 ‘나는 양식을 먹어야 사는 것 같이 용서받아야 사는 존재입니다. 떡이 있어도 용서가 없으면 못 삽니다.. 나는 떡으로만 살 수 없고 당신의 은혜로 용서를 받아 삽니다.. 하나님과 막혀서는 못 삽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사 용서하셔서 내게 풀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부르짖어 사죄를 간구하는 통회의 기도입니다.
이렇게 통회하는 영에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자복하고 회개할 때에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요일 1:9) 이렇게 사죄를 구하는 이의 죄를 이륙시켜 주십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하나님이 고치시는 날에 하나님이 싸매셔서 달 빛은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의 빛과 같게 하는 좋은 날이 오게 하십니다.(사 48:26)이렇게 사죄받은 만큼 하나님을 닮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서”이 상한 심령, 이 통회하는 영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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