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12,3, 주일
본문 : 마 6:9-13
말씀 : 라인권목사
금년 마지막 달이 되고,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대림절에 성탄의 주님을 맞을 준비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기도문의 네 번째 간구의 양식은 하나님은 사람을 아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우리 기독교와 기독교 신앙이 어떤 것인지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기도에서 양식을 구하게 하심에서 나타나는 우리 기독교와 기독교 신앙을 재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기독교는 이원론적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양식을 구하게 하시고 이 양식을 자신의 필요를 위한 간구의 첫 번 간구가 되게 하셨다는 것은 우리 기독교가 이원론적인 종교나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넷째 간구의 양식을 물질적 양식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 초물질적 양식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고 했지요. 왜 이분들이 이 양식을 부정하고, 영적인 양식, 초물질적인 양식으로 해석하려고 합니까?
그 저변에는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이 더 거룩하다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성경이 아니라, 동양의 영육 이원론 철학에서 온 겁니다. 이원론은 물질은 악에서 기원하여 죄악 되고, 영은 선에서 기원하여 선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들어와서 육체와 물은 멸할 것이고, 영은 살리고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고행과 금욕주의에 빠지게 하고, 이것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신비주의에 빠지게 하고, 이것이 염세주의가 되게 하는 겁니다. 여기서 심지어 성육신을 부정하는 이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의 기원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좋은 것이니 육도 거룩하고 물질도 거룩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 그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신령하고 거룩한 것이라면, 그렇게 살게 하는 것이 양식입니다. 따라서 양식도 거룩하고 그 양식을 취하는 일도 거룩한 겁니다. 모든 것이 거룩하다고 한 것입니다, (딤전 4:5) 그러므로 예배가 거룩한 것 같이 양식을 구하는 일도 거룩합니다 이게 기독교요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양식과 양식을 구하는 일을 거룩하게 여깁시다, 이것이 인생과 삶을 적극적이요 긍정적이 되게 하여 창조와 구속의 뜻대로 풍성한 삶이 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는 전인적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물질인 양식을 구하게 하셨다는 것은 기독교는 영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도 구원하신다는 겁니다. 즉 기독교의 구원과 신앙이 전인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에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인격적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즉 사람은 이 육정영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사람이 아닙니다. 영만 있어도 사람이 아니고, 육만 있어도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도 전인적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구원하려 피 흘리셨습니다. 예수의 구원은 영혼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도 구원하십니다. 그게 부활입니다. 이렇게 구원은 전인적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의 구속으로 영육이 함께 단번에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 육신이 부활에 이르려면 매일 양식으로 살려야 합니다. 말하자면 양식이 구원입니다. 부활이라는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은 이 육신을 양식으로 살리고, 육신을 위험에서 보호로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의식주를 염려 말고, 하늘 아버지를 의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걸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을 믿는 것 같이 육신의 필요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모든 악한 일에서 구원하셨다고 구원을 전인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세주, Savier,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이지 육적인 종교가 아니다, 육신적 물질적 구원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건 이원론적이며, 사람도 구원도 알지 못하는 겁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병고로 신음 해야 하고 여러 위험에 처한 인류에게 물질적 축복은 기복신앙이다, 신앙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건, 마치 사람을 삼시 세끼가 아니라, 이슬 먹고 사는 사람 같이 아는 것이요,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신앙이 겉 멋들은 겁니다. 이게 거룩한 척하는 바리새적인 것입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먹는 것 까지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모든 문제의 해결자 구세주로 확신합시다. 구원을 전인적으로 압시다. 인간의 모든 문제에서 예수님이 구주가 되시게 육정영의 모든 문제에서 예수님을 의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격적이며 인간적이 되는 것
그러므로 양식을 구하라는 이 넷째 간구는 하나님이 우리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하시고 인격적으로 취급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기독교 신앙은 인격적이고 인간적이고 가장 인간적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신앙을 인간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신적이 되는 것으로 압니다. 신앙심이 깊을수록 사람이 하나님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신앙과 사람을 비인간적이 되게 합니다. 고행과 금욕이라는 비인간적인 종교행위가 여기서 기인한 겁니다.
지난 주간에 불교의 총무원장을 지낸 한 승려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종교인도 인간이니 인간이 극단적 선택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충격을 받은 건 조계종의 발표입니다. 조계종은 이걸 “소신공양”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몸을 불살라서 부처를 공양하는 게 불교라는 겁니다. 이런 비인격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을 교리, 종교적인 일로 거리낌 없이 발표하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가증하게 여깁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인격과 생명을 말살하는 것을 가증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을 구하려 자기 아들을 사람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적이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열심인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제자들이 시장하여 밀 이삭을 비벼 먹은 것과,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것을 정죄하고 심지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초대교회에 순교가 동경이 되어서 순교를 자처했습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자 교회가 사람을 박해하고 죽이는 비인간적 교회가 되었습니다. 중세 교회의 고행과 금욕주의도 이런 맥락의 것입니다.
이게 다 하나님과 예수님보다 더 신적이고 더 거룩해서입니다. 너무 신적이어서 예수님은 양식을 구하라고 하는데 양식은 기도할 것이 아니다. 이렇게 비인격적, 비 인간적이 됩니다. 너무 신적이 되어 인간성을 상실한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 처럼 되는 것을 오해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는다고 할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시는 속성을 닮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참사람이신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 예수는 닮을 수가 없습니다. 한 인간이신 예수, 한 인간으로 예수의 겸손과 인내와 사랑과 순종과 희생을 닮는 것이고, 이렇게 참 사람이신 예수처럼 되는 것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신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참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 하나님 같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지탄을 당하는 것인 하나님 답지 못해서가 아니라, 인간적이지 못하고 비인격적이기 때문입니다. 인격적이고 인간적이지 못한 것은 기독교도 아니고 신앙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격적 신앙이 됩시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지 말고 그 나사렛 사람처럼 되시기를 힘쓰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독교가 이원론적이 아닌 전인적이며 인간적인 것은 우리 하나님이 인격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비인격적이고, 비 인간적인 이방신들과 같은 하나님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우리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양식의 필요까지 알아주시는 인간적이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심을 시편처럼 감사합시다. 우리도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같이 인간적이며 인격적인 균형 잡힌 신앙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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