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이 정치적 의사표현과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은 간디의 덕일 것일 것이다. 그러나 간디의 단식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단식투쟁의 상대가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단식이 강력한 정치의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신사의 나라 영국의 인도주의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지금 우리 한국사회는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중이다.
유민 아빠 김형오씨의 단식이 길어지고 동조하는 단식 릴레이가 이루어지자 국정원과 메이저 언론들은 김형오씨의 신상 털기에 나서 “아빠의 자격”을 논하고 나섰고, 심지어 단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폭식”릴레이를 벌리는가 하면 세월호 단식이 거짓이라며 시험 단식을 하는 인사들도 있고, 청와대와 여당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디의 단식 대상이 이런 우리 한국이거나 제국주의 일본과 같은 나라였다면 간디의 단식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을 것이며, 간디는 좌절했거나 아니면 단식 중에 죽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런 국가와 사회는 기본적으로 인간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천하를 얻어도 생명을 잃으면 유익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바치셨다. 생명에 대한 외경은 종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존재의 기반이다.
나는 목숨을 걸고 단식하는 이 앞에 “폭식”릴레이를 벌리는 야만적인 비인간성에 기함한다. 나는 한 생명과 국민의 생명의 안전보다 권력자와 정파의 체면과 이익을 앞세우는 비인격성에 아연 한다. 나는 생명보다 이념을 앞세우는 광기에 절망하며, 다르면 타도나 죽음을 외치는 군중의 광기에 아득한 절망을 느낀다.
나는 왜 성전에 한 편 손 마른 자가 있는 걸 보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칠까하여 주시하던 유대인들이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이 나라가 이렇게 인간성을 상실한 것은 조국교회가 인간성 상실하고 물질주의에 빠진 결과는 아닐까? 한국교회가 인격성을 회복하는 것이 인간성을 상실한 조국에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한가위만 같아라!”는 풍요의 명절 추석이다. 이번 추석이 황폐해진 인간성이 회복되고 생명에 대한 외경이 치유되는 명절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조국이 국민의 단식이 아니라 식민 통치하의 양심적인 지도자의 단식에도 한 인간의 존엄함에 한 국가가 져줄 수 있는 영국과 같은 양심적이고 인도적인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는 여론이 불같이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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