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6,5, 주일강론
본문 : 마13:5-6
말씀 : 라인권목사
본문에는 우리가 아직 다루지 않은 돌밭에 떨어진 사람의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사람이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라는 말씀대로 뿌리가 없는 것과 “환난과 박해가 일어날 때에” 곧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환난과 박해가 문제입니다. 먼저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라는 말씀을 살펴봅시다.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돌밭에 떨어진 씨는 흙이 얕아서 뿌리가 없으므로 더위가 오면 마르는 것 같이, 돌밭에 떨어진 사람은 뿌리가 없어서 환난과 박해가 일어나면 즉시 배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뿌리가 있어야 하는데 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성경에서 긍정적으로 뿌리가 있다고 경우와 대비하여 알아보도록 합시다.
대표적으로 성경에서 뿌리가 있다는 것은 마음에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하여 구원의 확신 가운데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뿌리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선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는 목적으로 보아서 그렇습니다. 씨 뿌리는 자들이 천국의 말씀을 뿌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파하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이 땅에 하나님께 천국의 아들들을 두시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이 방법이 말씀이 전파라는 것을 강조한다고 했지요. 하나님은 천국의 말씀이 나가서 천국의 아들들이 서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뿌리는 자는 말씀이 나가서 사람들이 회개와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것을 바라고 뿌리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뿌리는 구원받는 믿음을 소유한 것과 구원을 받고 자신에게 구원이 있는 것을 알고 확신 가운데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뿌리가 있다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하는 믿음의 도를 마음 가운데 분명하게 깨달은 것을 말입니다. 이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성경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교회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떠나 할례를 받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신칭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이 믿음의 도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다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갈2:15,16)이것이 뿌리가 없는 것입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것 같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는 뿌리가 없으면 환난이나 이단의 유혹에 흔들리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믿음이 뿌리가 내려 견고히 서도록 로마교회에도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뿌리가 있다는 것은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요한1서 5장입니다. 사도요한 요일5장에서 세상을 이기는 승리하는 삶을 강조하는데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요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이 성경을 기록한다고 하셨습니다.(요일5:11,12,13) 이 확신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기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알고 확신하지 못하면 굳게 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바울도 성도들에게 그들이 받은 구원을 자세하게 설명하여 가르쳐서 구원을 분명히 알고 확신하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뿌리는 구원을 알고 확신가운데 거하는 믿음입니다. 믿어도 하나님과 그 구원과 구원의 방법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한 것이 뿌리가 없는 것입니다. 믿는데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뿌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믿는 내가 구원이 있음을 알고 확신 가운데 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성경에서 뿌리가 있다는 것은 믿음의 사랑을 말합니다, 엡3:14-19을 봅시다. 이 부분은 바울의 간구입니다. 이 간구는 성도들에게 대한 바울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17절을 봅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충만한 상태가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마음에 예수님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2:22) 믿음은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게 구원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이웃을 사랑해나가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구원 받은 믿음이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과 은혜를 마음으로 깨닫고, 믿음을 통해서 실제로 경험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 이 사랑을 확신하면 하나님과 주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고, 이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므로 더욱 깊이 사랑을 깨닫게 되어 뿌리 깊은 나무와 기초가 든든한 건물과 같이 굳건하게 서는 것입니다. 이게 뿌리입니다. 뿌리가 박힌 것입니다. 이 사랑의 뿌리가 내리는 믿음이 구원 받는 믿음입니다. 이 사랑이 뿌리가 내리는 믿음이 열매를 맺는 믿음인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뿌리는 믿음의 소망을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 몇 구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선 히6:19은 소망을 닷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닷과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라고 소망이 세상의 물결에 떠내려가지 않게 붙잡아주는 닷이라고 하셨습니다. 고전15:58은 부활의 소망이 견고 하고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힘쓰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롬8:18절은 천국의 영광이라는 소망이 지금 받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일3:2-3절은 재림 때 주님과 같이 될 소망이 자기를 주님처럼 깨끗하게 하는 생활을 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소망이 뿌리입니다. 이 소망을 더욱 확신하고 든든히 하는 것이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이 뿌리가 있으면 환난과 박해가 일어날 때에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환난과 박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인한 환난과 박해
돌밭에 떨어진 사람의 경우를 교회를 얼마 동안 다니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를 자세히 보면 돌밭에 떨어진 사람은 얼마 동안 교회에 나오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나 박해가 와서 떨어지는 사람 경우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앙고백이나 교회 출석을 금지하는 환난과 박해가 없이 백년을 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환난과 박해가 있으면 믿지 않을 사람들이 교회 안에 건재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환난과 박해가 있으면 배반 할 사람들이 환난과 박해가 없어서 교회안에 남아 있다면 이들이 알곡입니까? 쭉정이입니까? 따라서 이 환난과 박해의 원인이 무엇이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마태와 마가는 “말씀을 인하여”리고 했고 누가는 “잠간 믿다가시험-개정판은 시련을 당할 때-받을 때에”(눅8:13)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환난과 박해의 원인이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환난과 박해는 먼저 외부적으로 신앙고백이나 교회출석을 금지하는 박해 이전에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데 따라오는 환난과 박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내가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려 왔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너희가 내게 속했다는 말씀과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핍박이 있다는 말씀입니다.(마10:34,요15:19,17:14,딤후3:12)다니엘의 예를 들어봅시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죽음을 의미할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면 사자 굴에 갑니다. 믿는 것이 오히려 자기와 자기 행복을 깨는 것입니다. 이게 말씀을 인한 환난과 박해입니다. 이 말씀을 인한 환난과 박해가 왔을 때에 선택해야 합니다. 믿음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돌밭에 떨어진 사람은 이때 즉시 넘어지고, 믿음을 버리고 배반한 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힘들고, 위험이 되어 시험이 되면 그 시험, 시련을 인내하고, 이기고, 헤쳐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
왜 말씀을 인한 환난과 박해를 이기지 못합니까?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이 사람은 복음의 긍정적인 것만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고 고난이 와서 자기 행복을 깨려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한 적이 없습니다. 좋은 일만 있을 줄로 알았습니다. 이런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인한 환난, 시련이 오면 포기합니다. 그래서 트랜치는 “제자가 되는 대가를 생각하지 않고 주님을 따른 무리”가 돌밭에 떨어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은 죄와 구속과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행복을 깨닫지 못해서 여전히 자기를 섬기고, 세상 것으로 행복을 삼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깨닫지 못해서 하나님과 주님을 섬기는 행복을 모릅니다. 천국과 천국의 일의 행복을 모릅니다. 처음부터 자기와 자기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고, 복음과 기독교를 거짓된 자기 행복을 구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믿으면 좋은 일만 있고 잘 될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지 않게 자기 행복이 위험해지는 일이 옵니다. 외부적으로 신앙고백을 금하고 예배를 금지하는 것도 생각지 못하게 갑자기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지 않은 말씀을 인한 환난과 박해가 오고 시험이 올 때 깨달은 사람은 인내하며 나갑니다. 이기고 나갑니다. 헤쳐 나가고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돌밭에 떨어진 사람은 처음부터 깨닫지 못했습니다. 뿌리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환난과 시련이 오면 즉시 배반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섬기고 세상 것을 자기 행복으로 삼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내리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뿌리를 내리는 것은 자기가 할 일입니다. 뿌리를 내리는 것은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은 것을 더 분명하게 하고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받은 구원의 도를 자세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도를 깊이 깨닫게 성경을 공부합시다. 구속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뿌리가 깊이 내리고 듣고 읽고 사랑합시다. 소망을 더욱 깨달아 환난의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고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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