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3,26, 주일강론
본문 : 롬15:22-33
말씀 : 라인권목사
“Boys, be ambitious in Christ!” 이 명언은 지금의 MIT공대의 전신인 MIT농대의 총장으로 일본 삿뽀로에서 교육선교를 했던 크라크(William Smith Clark)선교사가 평소에 강조하는 교훈이자 그가 일본을 떠나며 남긴 말이기도 합니다. “ambitious” “야망”이라는 말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흔히 “청년들이여 그리스도 안에서 대망을 품으라”고 번역합니다. 이 크라크선교사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우찌무라간조의 모토는“나는 조국을 위하여 조국은 세상을 위하여 세상은 그리스도를 위하여!”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이야 말로 이런 대망의 사람, 야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 사도 바울의 가슴속에 꿈틀거리며 타오는 “복음의 대망”을 증거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원대한 꿈”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꿈을 가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도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보신 것 같이. 지금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가 모름지기 예수의 마음과 복음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원대하게 세상을 품은 바울의 가슴과 같은, 큰 뜻을 품은 크고 넓은 가슴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 가슴에 어떤 뜻과 꿈을 품어야 할지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원대한 복음의 야망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로마로 족하지 못하고 서반아를 경영하는 바울”
오늘의 말씀을 보면 그의 가슴은 로마로도 족하지 못해서 서반아까지 경영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22-24) 여기서 그는 로마에 가려는 것은 로마가 목적지가 아니라 사반아가 목적지라고 합니다.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므로 로마를 복음화 하면 세계를 복음화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가고 로마를 보는 것이 바울의 원이었습니다.(롬1:11) 그런데 그는 이 로마를 보는 것으로 족하지 못하고 서반아를 보기를 원합니다. 서반아는 로마세계의 끝으로 여겨지는 지역이었습니다. 바울이 이 서반아를 도모한 것은 서반아를 주님이 명하신 땅 끝으로 여기고, 세상 끝까지, 온 세상을 복음화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원대한 꿈꾸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그 가슴에 온 세상을 품었습니다. 그의 가슴은 일시적이고,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야망이 아니라 복음으로 모든 사람을 부요케 하기를 꿈꾸는 큰 가슴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품을 뜻이요, 야망이며, 소망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가슴에 세계를 품은 사람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으로 세계를 품은 가슴에서 나오는 세계적 인격
가슴에 복음의 세상을 품은 이는 과거의 업적에 연연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편만하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로 만족하지 않습니다.(19) 복음으로 세계를 품은 그는 안주가 없습니다. 늘 일하려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 나섭니다.(23) 이때에 바울은 나이가 오십을 넘어 육십을 보는 때이지만 심지어 로마에도 잠간 머물다 지나가려고 하지 거기서 뿌리를 내리려고 않습니다. 그는 온 세상이 그 가슴에 있기 때문에 남의 터에 건축하려는 자기중심주의적인 마음이 없습니다.(20) 이것을 투명하다, 밝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직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신용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세계적인 인격” 또는 “국제신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으로 세계를 품은 이는 세계적인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그리스도의 마음과 비전을 가진 이는 그리스도를 닮아서 예수님과 같은 세계적인 인격의 국제신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 안에서 가슴에 온 세상을 품은 사람에게 오는 은총이요 축복라고 믿습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 닭 벼슬만도 못한 교권이나, 교직을 두고 다투거나, 별것도 아닌 명예나 몇 푼 안 되는 돈이나 이권을 두고 아옹다옹하는 것은 이 큰 가슴이 없어서입니다. 가슴에 큰 것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설물로 여겨지는 시시하고 째째한 것만이 가득한 작은 가슴들이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 더 멀리 가기를, 더 사람들을 복음으로 유익하게 하기를, 더 예수를 닮기를 다투는 큰 가슴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은혜로 가족은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과 같이 복음으로 온 세상을 가슴에 품은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도모하는 큰 가슴의 사람! 대망의 그리스도인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열매로 “세계적인 인격자”로 부름 받는 성도와 교회가 되는 이 큰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이제 바울이 자신이 품은 복음의 대망을 성취하기 위한 실제적인 행위와 추구들을 살펴봅시다.
“ 복음의 대망을 성취하려는 바울의 실제적인 행위들 ”
우선 바울은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먼저 로마를 보고 다음에 서반아로 가려는 분명한 계획과 목표 속에서 바울을 사역을 했습니다. 먼저 로마를 보려는 것은 사반아 사역에 로마교회를 참여시키려는 전략이기도 합니다.(24) 25-29절을 보세요, 바울은 얼마나 노련하게 목회적으로 로마교회와 교회들을 자신의 서반아 프로잭트에 동참시키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분명한 계획과 목표가 없으면 구체적으로 할 일이 없습니다. 꿈이 있습니까? 그러시면 그에 대한 여러분의 인생과 삶에 대한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여러분의 공부와 사업과 직장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시어서 달려가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바울은 큰 목표만을 바라보고 산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성하므로 목표에 도달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서반아가 꿈이기 때문에 그 문이 열리기까지 놀은 것이 아닙니다. 먼저 로마에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에 가기 전에 예루살렘에 가야하는 현재의 사명에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만 보다 발아래 웅덩이를 못 보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진정한 비전의 사람은 다윗과 같이 오늘의 양치기에도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오늘의 양치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일의 왕의 통치력을 갖게 한 다고 믿습니다.
셋째. 바울은 최선을 다하여 추구하고 추구해 나갔습니다. “여러 번 막혔다”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원이 있었으니” 라는 말씀들을 보세요. 포원이 되어서 그것을 추구하고 추구했다는 겁니다. 진짜 대망이 있으면, 그게 진정 소원이요, 전심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인생을 걸고 전심전력으로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만이 진정한 꿈입니다. 한 번도 인생과 목숨을 걸어보지 않은 것은 실상 놀은 것에 불과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큰 꿈을 인생을 걸고 추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바울은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바울이 여러 번 로마에 가기를 힘썼지만 지금까지 로마에 못간 것은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려고 해서입니다. 자기계획을 고집하여 자기생각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뜻대로 하기를 힘쓴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가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꿈이 있는 사람은 기도로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방법으로 로마에 가는 좋은 길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큰 뜻만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현재에 충성하며 기도하며 추구해야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얻도록 취하도록 전심전력을 다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로 준비함
이렇게 로마교회에 서반아에 대한 자기의 전도계획을 나눈 바울은 이를 위한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전도의 큰 꿈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 앞에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것만 진정한 꿈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는 것, 이것보다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은혜롭고, 지혜롭고 강력한 청원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기도해달라는 것은 가장 은혜롭고, 가장 강력한 청원의 방법인 줄로 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구하고 사람에게 구하지 않는 허드슨 테일러의 방법이었습니다.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은 자신과 일의 중대성과 기도의 위력을 아는 사람입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를 부탁하되 기도를 구체적으로 부탁해야 합니다. 유대의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서 지켜주시고 구제헌금을 탈 없이 전하고 그 사역이 열매를 맺기를 부탁합니다. 이런 후에 축복으로 사역을 나누는 일을 마치고 있습니다. 여리고성과 아이성 사역의 차이는 한 마디로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보다 더 큰 준비는 없습니다. 기도보다 더 위대한 후원은 없습니다. 기도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정말 소원이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합심기도의 필요를 느끼고 기도를 부탁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이 있지요? “그리스도와 말씀 안에서 좋은 뜻과 꿈을 가지라! 그것이 소원하고 소원이 되어 기도가 되게 하라! 그리고 기도하고 기도한 바를 전심전력으로 살아가라!” 제가 진정 소원이 되어 기도한 것은 이루어지지만, 소원도 안 되고, 기도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된 것이 없다는 것이 제 삶의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신 꿈의 준비로 기도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 꿈을 기도로 주님께 맡깁시다. 합심기도의 필요를 느끼고 교회에 기도를 부탁하고 함께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꿈을 위해서 합심 기도합시다. 진정 하나님 나라의 꿈이 있는 사람은 먼저 무릎으로 주께 나가시실 줄로 믿습니다.
은혜로 가족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대망의 사람입니다. 우리 다 같이 외칩시다. “Boys, be ambitious in Christ!” 그리스도인은 시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큰 것을 꿈꾸고 도모하는 큰 가슴의 사람들입니다. 주안에서 이 대망을 가슴에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가슴에 복음으로 세계를 품고 경영하는 교회를 세웁시다. 저는 교회는 이 비전 메이커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몸 된 교회 안에서 높고 아름다운 꿈을 키웁시다. 주 안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꿈을 서로 나누고 서로 기도하는 교회가 됩시다. 주님이 주신 높은 꿈을 평강의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서로 축복하며 기도합시다. 우리 은혜로 가족이 이렇게 기도의 짐을 서로지고 서로의 꿈을 기도로 섬기시면,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의 아름다운 꿈을 이루는 길에 평강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은혜로 머지않아 우리 은혜로 가족 중에서 바울과 같이 온 세상을 품은 선교사도 일어나고, 월버포스같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정치가도 나오게 하시고, 세상을 감동시키는 작가와 예술가도 나오게 하시고, 주어진 삶속에서 주어진 일로 예수님의 복음과 인격을 구현해내는 평범한 성인들이 구름과 같이 일어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찬송가 490장 2절을 다 같이 올리시고 함께 기도합시다.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 될 때 내가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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