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5,7,주일강론
본문 : 왕상11:34-36
말씀 : 라인권목사
예로부터 어둠을 환히 밝히는 등불은 진리와 소망의 상징이 되어왔습니다. “역사의 등불”이니 “민족의 등불” “양심의 등불”이니 하는 말들에서 보듯 이 세상은 이 말을 위대한 철인이나 위인들에게 헌정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영광스러운 말을 하늘의 별과 같은 분들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평범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사람이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두나니”라고 하셔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그렇습니다, 본문에 "다윗에게 항상 하나님 앞에서 등불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타락을 징계하시기 위한 채찍으로 여로보암에게 열 지파를 떼어 주시지만, 당신이 다윗에 주신 언약대로 다윗의 왕가가 끊어지지 않도록 면면히 후손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한 이 "씨"(삼하7:12)자손, 후사를 등불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에 주시는 자손을 등불이라고 부르신 것은 우리 자식 된 이들에게 자각과 많은 각성을 요구합니다.
우선 이 말씀은 한 가정의 자녀가 된 이들에게 자신을 한 집안의 “등불”로 아는 자각과 각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모든 후사들을 “등불”이라고 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히스기야나 요시아 같이 정말 유다의 등불과 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아하스나 므낫세와 같은 사악한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모르시지 않으실 터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이 다윗의 자손들을 통틀어서 다 “등불”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왜냐면 이들이 잘났건 못났건, 잘든 못하든 이들을 통해서만 다윗의 혈통과 언약이 계승되고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잘하건 못하건 이들만이 다윗가의 희망의 등불이요. 장래일 뿐만 저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한 가정의 자손이 된 사람은 잘났건 못났건, 잘하건 못하건 오직 그에게 그 가정의 장래와 소망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국력과 미래를 보려면 그 나라의 숲과 아이들을 보라고 합니다. 빈한한 나라는 숲이 빈약하고, 선진국들은 숲이 울창합니다. 이렇게 자식이 비전이 있으면 그 집은 희망적입니다. 지금 아무리 잘나가는 집안이라도 자녀가 없거나, 자식에게 비전이 없으면 그 집은 어두울 뿐입니다. 잘났던 못났던 모든 기대가 자녀에 있고 그 자식만 보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한 집안에 자녀가 된 사람은 자신을 한 집안의 등불로 자각하고 자임해야 합니다. 잘났든 못났든 내가 아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자기를 등불로 아는 것에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저는 이 자각과 각성의 여부가 밝히는 등불이 되느냐 꺼진 등불이 되느냐가 걸려있다고 믿습니다. 히스기야와 그의 아들 므낫세 차이가 이의 입증입니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을때 풍전등화와 같은 유다의 형편은 히스기야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다윗의 왕국의 중흥이 자기 한 사람의 어깨에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큰 각성을 했을 겁니다. 이 자기 인식이 히스기야로 하여금 분발하게 했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를 한 가문의 등불로 자각하고 자임하는 이는 자중자애 할 것이며 분발하여 빛을 발할 줄로 믿습니다. 이 기대와 소망을 아는 것 자체가 효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자녀들을 등불로 아시고 등불로 부르시는데 왜 자신을 등불로 알지 못하겠습니까? 자신을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밝힐 등불로 자각하고 자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자기를 한 가문과 교회와 세상의 등불로 확신하시고 자임하고 일어나 빛을 발하는 자손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언약 백성의 자녀 된 이들에게는 특별한 은총과 축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것을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즉 언약 백성의 자녀들은 자신을 등불정도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결코 꺼지지 않는 특별한 등불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등불이란 어둠을 밝히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꺼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강풍은 고사하고 입김에도 꺼지고, 미풍에도 흔들리고 꺼지는 것이 등불입니다. 그래서 등불은 꺼지지 않게 종이나 유리로 바람막이를 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의 자손들은 흔들리고 꺼지기 쉬운 등불에 불과 합니다. 솔로몬! 솔로몬 하지만 솔로몬은 꺼져가다 살아난 등불이질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이들을 “항상 있는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끌 수 없는 등불”이 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다윗의 자손들 중에는 심지어 꺼진 등불같이 된 왕들도 여럿이지요. 그럼에도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면면히 서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다윗 사이의 언약 때문입니다.(삼하7:12-16) 이 언약 안에 있기 때문에 솔로몬이 타락해도 사울처럼 폐하시지 않고 열 지파를 빼앗기는 징계만 하셨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며(34) 못된 아비얌에게 아사라는 등불을 주시고, 아합의 집과 교제하는 여호사밧을 구해 주시며, 여호람에게도 등불을 주시고, 아달랴가 다윗의 자손을 멸할 때에 요아스를 구해내서 다윗의 왕위가 계속되게 하셨습니다.(15:4,왕하8:19,왕하,11:1-2) 이렇게 다윗의 등불은 언약의 사랑 안에서 꺼도 끌 수없는 등불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총으로 붙잡아 주시고, 돌보시고, 지켜주시는 축복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꺼지기 쉬운 등불이지만 바람 타지 않게 등 안에 등불을 두듯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이라는 특수 등 안에 있는 등불이요, 부모의 신덕이라는 특수 등 안 있어 꺼도 꺼지지 않는 특별한 등불이라는 것입니다. 신자의 자녀는 자신을 이 꺼도 끌 수 없는 특별한 등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내가 못났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고 잘났다고 교만해질 필요가 없는 겁니다. 내가 결코 끌 수 없는 등인 것은 내가 잘서도, 못 나서도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과 신실하심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못 낫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못나도 은혜 안에서 진짜 등불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잘나고 잘해도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교만이 아니고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꺼지지 않는 등불! 끌 수 없는 등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신자의 자녀들에게는 말하자면 비빌 자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잘못했어도 하나님의 인자라는 어덕을 의지하여 회개하고 일어설 자리가 있습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의지하고 일어설 수 있는 은혜의 언덕, 사랑의 언덕, 언약의 언덕, 축복의 언덕이 있는 등불입니다. 자기를 이렇게 은혜 안에 꺼지지 않는 특별한 등불-선민, 특권-로 아는 것이 힘입니다. 이 힘이 등불 된 자기를 밝히는 힘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 자식 된 사람들을 꺼도 꺼지지 않는 등불로 알고, 망해도 망할 수 없는 축복의 유리등 안에 있는 특별한 축복의 등으로 깊이 알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따라서 우리 언약백성의 자녀들은 자기를 등불로 알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등불로 자신을 인식할 것을 요구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끊이지 않고 “씨”라는 등불을 주시고. 그 등불들이 꺼지려고 할 때 끄지 않으시고, 지키시는 것은 그들을 통해서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시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왕권과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빼면 다윗의 왕가는 겨우 345년을 유지한 과거의 왕국에 불과합니다. 다윗과 그 왕권과 나라가 영원한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다윗의 등불이 영원한 등불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흔들리고 꺼져가는 등불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등불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구속하신 은혜가 절대적입니다.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은 우리의 덕성보다 우리를 구속하시는 은혜로 비로소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만들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달과 같이 그리스도의 빛을 반영하는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제 아무리 잘나고 성공하고 빛나는 자식이 되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그 빛은 의미가 없을 뿐더러 풀에 꽃 같은 것이며, 미풍에도 꺼지고 말 등불에 불과 합니다. 성공, 성취 부와 권세와 명예도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영원한 빛이 되고 의미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만 빛이 있고 비취일 수 있는 등불로 깊이 인식하여 예수를 깊이 만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깊고 힘 있게 의지하는 자녀이기를 축복합니다. 어부 베드로가 예수로 인류의 등불인 것 같이 저와 여러분은 오직 예수로 빛나는 등불이요, 예수로 완성되고 영화롭게 되는 등불인 줄로 믿습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다윗 잘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의 등불이 된 것이 아니요, 그가 깊이 만난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유다의 등불이 된 왕들은 다 “그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렇게 예수를 깊이 아는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있게 의지하는 그 믿음과 믿음의 사람을 한 가문의 등불이 되게 하시고, 민족과 나라와 한 시대의 희망이요, 등불이 되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녀는 자기에게 자신의 집안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중흥이 걸려 있는 등불로 자기를 깊이 인식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나는 미풍에도 흔들리고 꺼지기 쉬운 등불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 안에서 태풍도 끌 수 없는 특별한 등불로 알고 역사 앞에 의연히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숲을 보면 국력과 그 나라의 장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 은혜로교회 자녀들을 보면 희망이 생기고 내일이 장밋빛이 되는 그런 은혜를 어린이 주일에 축복합니다. -아멘 -
'강 론 >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격의 혼인에 골인하려면 (0) | 2017.05.22 |
---|---|
말하는 돌무덤 (0) | 2017.05.14 |
현재적 부활의 증거 (0) | 2017.04.25 |
부활은 삶의 길이다! (0) | 2017.04.16 |
십자가로 만난 십자가의 예수 (0) | 2017.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