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말하는 돌무덤

아브라함-la 2017. 5. 14. 17:19

017,5,14,주일강론   

본문 : 삼하18:16-18  

말씀 : 라인권목사

    오늘은 부활주일이 아닌 어버이주일이지만 무덤의 이야기로 말씀의 문을 엽니다.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피라미드 형태의 작은 돌무덤이 하나가 있습니다. 이 돌무덤은 백성을 지키기 위하여 나라를 신라 진흥왕에게 선양한 가락국 구형왕의 무덤입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몸이 어찌 편히 흙에 묻힐 수 있겠느냐? 돌로 내 몸을 덮어라”는 왕의 유언을 따라서 이 돌무덤을 만들었답니다. 따라서 이 돌무덤은 수천 년간 백성을 생각하는 왕의 마음과 나라를 지키지 못한 왕의 치욕을 소리 없는 말로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어 장사 지낸 이도, 무덤도 말이 없지만 무덤은 사연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지, 교훈을 전하고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압살롬의 무덤도 그렇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아버지를 반역하다 패하여 요압의 손에 죽임 당한 압살롬을 수풀의 한 구덩이에 던지고 군사들이 그 위에 돌을 하나씩 던져서 매우 커다란 “돌무더기” 즉 돌무덤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압살롬의 돌무덤을 압살롬이 생전에 스스로 세운 비석과 매치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압살롬의 돌무덤을 압살롬이 스스로 자기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와 매치시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여리고성에서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아간의 일족을 돌로 치고 하나의 기념비가 되게 하려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은 것에서 보듯(수7:25,26)압살롬의 돌무덤은 의도적으로 그 돌무더기가 말하게 하기 위한 기념비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압살롬의 돌무덤으로 무엇을 이야기 하게 하셨습니까? 

 

압살롬의 돌무덤은 역설적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과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잘난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기대가 많은 왕자였지요. 그러나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기대와 달리 누이의 치욕을 갚으려 왕자를 죽인 우환의 아들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이런 불효위에 아버지를 반역하는 불충을 더한 아들입니다. 이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다윗은 자기가 대신 죽었으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슬피 울었습니다.(33) 이 상식을 벗어난 다윗의 슬퍼하는 마음을  신약의 탕자의 아버지와 비교해보면 다윗의 심정이 더 분명해집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둘째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먼빛으로도 아들인지 금방 알아보고 달려 나가 목을 안고 입 맞추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건강하게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 아닙니까?(눅15:24,27)


아들이 성공해서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저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기를, 그저 살아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건강한 것 하나만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해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족한 것이 부모라는 것입니다. 어머님 은혜 2절은 이 마음을 노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려서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이게 다윗의 마음이자 부모 마음입니다. 압살롬의 돌무덤은 이 잴 수없는 부모 마음과 사랑을 말해 해주고 있습니다. 이 부모 마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아는 것이 효라고 믿습니다. 압살롬이 이 마음을 알았다면 적어도 반역자는 되지 않았을 터요, 저렇게 비명에 횡사하여 돌무더기에 묻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압살롬의 돌무덤은 자식의 도리와 효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이 부모의 조리는 마음을 알고 자중 자애하는 것이 효라고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효자경에 칠십이 넘은 아버지가 임종하면서도 물 뜨러나가는 아들의 안위를 걱정해서 “어두워서 실족하기 쉬우니 조심 하거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마음이 부모 마음이지요?  앓을까? 사고 날까? 다칠라 가슴이 철렁철렁합니다. 이 부모 앞에 병들어 눕거나 다치는 것이나,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큰 불효입니다. 그래서 “신체수지발부”를 유도는 효의 근본으로 보는 겁니다. 그러므로 효는 이 부모의 마음을 알고 자중하고 자애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지혜로운 자식은 그 아비의 면류관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해도 내 건강이 효도입니다. 내 안전이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을 내 것으로 알고 함부로 하지 말고 하나님과 부모의 것으로 알고 자중하고 자애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게 압살롬의 돌무덤이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의 돌무덤은 이런 부모를 거역한 패역한 자식의 받을 벌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압이 왜 죽은 압살롬에게 돌무더기를 쌓았을까요?신21:18-21을 보면 완악하고 패역하여 부모의 징계도 듣지 않는 자식은 돌로 쳐 죽여서 온 이스라엘이 두려워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요압은 이 율법을 이루기 위해서 돌로 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천하의 불효자식”이 정죄로 돌을 던져 무더기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의 돌무덤은 불효자가 받을 저주와 심판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부모를 거역한 자는 이렇게 비참한 인생이 된다는 겁니다. 부모를 대적하는 이는 결코 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부모와 의절한 이는 중직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 에발산의 저주 가운데 하나가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신29:16)고 하셨습니다. 압살롬의 돌무덤은 이 저주의 성취인줄로 믿습니다. 압살롬의 돌무덤은 이 돌무덤을 보고 경계를 받아서 이 불효의 저주를 피하고 약속된 계명의 축복을 받는 자식이 되라고 말해 주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은혜로 가족여러분! 우리가 이 압살롬의 저주를 피하고 오계명의 약속을 받는 자녀가 되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압살롬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면 불효에 반역을 더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돌무덤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로 몰라서 이지경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 예수의 마음을 가지는 것만이 진정한 효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압살롬같은  불효의 저주를 피하고 약속된 계명의 복을 받는 첩경은 주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시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생각지 않으시고 모친의 노후를 염려하셨습니다. 이로서 주님은 우리가 온전히 이루지 못하는 오계명을 이루셨고, 우리로 지킬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예수를 만나고, 이 예수를 모셔서이 예수의 마음을 가진 이는 예수님 처럼 부모를 알고. 자기 행복보다 부모의 행복을 구하는 자식이 된다고 믿습니다. 이 자식이라면 부모를 생각하고 자중 자애 할줄로 믿습니다. 이 자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계명에 순종하여 주안에서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해서 약속된 축복의 기념비를 높이 쌓아 후대에 간증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버이 주일에 우리 모두가 압살롬의 돌무덤 앞에서 십자가 위에서 모친을 부탁하시던 예수님 앞으로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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