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9,10,주일
본문 : 고전13:4-7
말씀 : 라인권목사
좋아하는 것과 내 소유가 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성품을 좋아해도 그것이 내 성품이 되지 않으면 사랑을 말해도 사랑의 능력과 행복은 알지 못하고, 향유할 수 없는 겁니다. 세 주일에 거쳐서 사랑이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환경에서 역사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루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이 깨달아졌다면 “사랑”이 라는 성품이 참 좋아졌을 겁니다. 그리고 ‘아! 나도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거룩한 욕심이 막 일어나고, 이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성품을 어떻게 하면 내 성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이 사랑이란 그리스도의 성품을 내 성품이 되게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이 사랑 없으면 다 “개뿔”입니다. 따라서 사랑을 내 성품으로 만드는 일, 이것은 인생의 유일한 최고의 사업입니다. 사랑이라는 당신의 형상, 아들의 형상을 이루는 것,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소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이 하나님의 성품을 내 성품으로 이루게 하는 “법칙”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서 사랑을 내 성품으로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랑의 성품이 내 성품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법칙은 지속적인 훈련이라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얼굴에 땀이 흐르게 수고하여야 먹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3:17,19)이것은 인생은 자동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생은 수고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거지요. 위대한 음악가나 예술가는 하루아침에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단한 연습으로 됩니다.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것도 부단한 연습과 훈련의 결과입니다. 힘들다고 테니스를 아랫것을 시키면 건강해지는 것은 선교사가 아니라 아랫것들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우리 영의 근육을 발달시키는 것도 영적근육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기예이요, 예술입니다.
한국교회 신학의 태두로 불리는 박형룡박사의 일화입니다. 총신이 남산에 장로회신학교로 있던 시절, 교단이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습니까? 박목사님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그 말들을 전했습니다. 누구는 목사님을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목사님이 이렇다고 한다고 말을 전했습니다. 이런 소리를 한동안 말없이 듣고 계시던 박목사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다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 수업합시다!” 그분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이분은 이때에 사랑의 성품들을 나타내시고 쓰신 겁니다. 이게 예절바름, 신사가 아닙니까? 이게 하루아침에 되었겠습니까? 이건 예술입니다. 이 말씀에 교실에 감동이 임했습니다. 이것이 박형룡목사님을 성자라고 부르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성품이 이 정도에 이르기 까지 배우고 연습하고 의지적으로 훈련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성품을 훈련을 하려면 우리는 세상을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는 기회와 학교, 또는 훈련소로 여겨야합니다. 헨리 드럼몬드는 세상은 공허한 운동장이 아니라 교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이 세상은 사랑할 기회입니다. 적도의 한낮의 태양아래 슈바이쳐 일행이 높은 고개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슈바이쳐가 갑자기 급한 걸음을 했습니다. 무거운 나무 짐을 진 여인이 힘겹게 고개를 오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슈바이쳐가 그 나무짐을 져주는 것을 본 일행이 슈바이쳐의 고령을 염려해 주었습니다. 그때 이 아프리카의 성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누구도 이런 짐을 혼자 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슈바이쳐는 이렇게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이 사랑을 배우고 실습하는 교실이자 훈련소입니다. 예수님은 30년을 요셉의 목공소에 계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을까요? 배우셨습니다. 실습하셨습니다. 그래서 숙련된 목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이시지만 순종을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히5:8.9) 이 세상은 이 사랑의 학교요 실습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환경이 사랑을 배우고 실습할 교실이며, 하나님이 내게 사랑의 성품을 빗고 만드시는 손이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이라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만지실 때마다 나는 온유해지고 겸손해지며 친절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 환경을 사랑을 써서 참으시고, 믿으시고, 바라시고 견디는 훈련을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나도 알지 못하게 사랑이라는 영적인 근육이 붙어가고, 사랑의 기술자가 되고, 달인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은 사랑의 기회요, 사랑을 실습하는 교실입니다. 환경은 사랑을 배울 교재입니다. 여기서 인내가 내 성품이 되고 친절과 예절이 내 성품이 되어 그리스도의 마음 그 성품이 되는 거룩한 구원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사랑이 훈련이라고 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의 성품은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괴테는 “재능은 고독하게 개발되고 성품은 생활 속에서 개발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치는 것은 나 혼자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기도의 능력, 믿음과 은사의 능력, 묵상의 능력도 오직 나 홀로 고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품은 생활 속, 즉 관계에서만 개발되고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생활에서 관계에서 자기를 보셔야 합니다.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사랑의 성품에 얼마나 섰는지를 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보시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훈련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이것을 경건의 연습, 경건의 훈련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사랑의 성품을 사모하여 훈련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일곱 번만 이 훈련을 합시다. 그러면 어깨에서 날개가 나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둘째. 사랑의 성품이 내 성품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자기를 성령의 법이라는 시스템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장의 사랑의 성품들은 신기하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맞아떨어집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갈5:22,23) 즉 사랑의 성품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 열매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결과라고 하셨습니다.(갈5:17)즉 법칙입니다. 육체의 소욕이라는 시스템에 있으면 육체의 일을 이루는 것이 법칙이고, 성령의 소욕이라는 시스템에 있으면 성령의 일을 이룹니다. 이게 영적인 법칙입니다. 즉 우리의 의지를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 지배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지가 수련이나 수도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입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십시오. 성령을 소멸하지 마시고 성령께 늘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의지가 성령 안에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랑을 내 성품이 되게 하는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의 사랑의 회신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는 것입니다. 요일4:19를 봅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즉 사랑은 원인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이 원인이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이라는 결과 열매를 이루게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하고, 연습하고 훈련한다고 해서 그 자체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예수님과 예수의 십자가의 피와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지나 수련이 아니라 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본성에서 사랑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가장 좋은 길은 예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께로 나가서 먼저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눈으로 볼 때입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보는 것입니다. 눈으로 볼때 사랑의 콩깍지가 씌우는 겁니다. 영적으로도 같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히12:2)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묵상하십시오. 사랑은 상상입니다. 사랑은 판타지입니다. 이것이 사랑에 깊이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하셨습니다.(히3:1)사도요한은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 하셨는고”라고 하셨습니다.(요일3:1)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예수와 예수의 사랑에 감전, 감응됩니다. 감전된 자석에 쇠붙이를 붙이면 그 쇠도 자석이 됩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예수께 감전, 감응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같이 사랑하고 예수성품이 되는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사도요한을 보세요. 천둥 번개와 같은 성격의 사람이 예수에 감응되어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께 감응됩니다. 이것을 손양원목사는 중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 중독되어야 하겠다! 예수 사랑에 중독됩시다. 그러면 사랑이 내 성품이 됩니다. 예수님처럼 모두에게 친구가 되고 친절하고 원수도 축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것을 감염이라고 하겠습니다. 공자는 “芝蘭之交지란지교”라고 했습니다.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난초와 지초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 같이 선에 동화되고, 악한 사람을 가까이 함은 그 악에 동화되고, 붉은 주사(안료)를 지니면 붉은 물이, 검은 옿을 가지면 검은 물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가까이 하면 예수께 감염, 감색됩니다. 예수님 일에 감염하고, 예수님 성품에게 감염됩니다. 그래서 예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고 이루는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같이 사람들이 따르고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사멋진 사람이 되게 하실것으로 믿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는 축복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감동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될 것이요. 사람을 세우고 소망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사람을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을 줄로 믿습니다. 이 사람이야 말로 금생과 내생이 가장 향기롭고 풍성한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부흥입니다. 이것이 축복이요 참되고 영원한 성공인줄로 믿습니다.
은혜로 가족여러분! 결국, 우리 하나님은 훈련이라는 자연적인 법칙과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의 은혜라는 초자연적 법칙으로 이 세상을 가는 동안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고 닮아오게 하셨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요일4:7)이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모시는 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내 성품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길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 사랑이 되게 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이것만이 훈련을 의지가 아닌 은혜로 하게 합니다. 이 사랑만이 참으로 자기를 사랑하게 할 것입니다. 이 사랑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하고, 나를 해하려는 사람마저도 사랑하게 할 것으로 믿습니다. 이 사랑만이 모든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게 할 것입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지금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를 바라보시고 예수님처럼 내 생애에서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고 훈련해나 나가셔서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내 성품으로 이루어 나가시는 생애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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