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길(2)

아브라함-la 2017. 12. 10. 20:21

017, 12,10,주일강론

본문 : 눅2:8-20

말씀 : 라인권목사

       밤이 깊을 수 록 빛이 요구되고, 빛이 그리운 법이지요. 예수님이 나실 당시 유다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억압과 학정의 밤이요, 경제적으로 착취가 횡횡하는 암흑천지요, 종교는 세속의 어둠이 깊은 밤이었습니다. 그래서 25절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이 의롭고 경건한 사람들은 약속된 메시야가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주 예수님이 나신 첫 번 성탄절에 나신 아기 예수를 첫 번 만나서 경배하는 영광을 누린 사람은 당연히 25절의 시므온과 같이 의롭고 경건하다는 소리를 듣는 아주 고상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런 우리의 상식과 통념에 완전히 반하고 있습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에 아기 예수께 첫 번째로 나와서 경배한 사람들은 니고데모와 같은 귀족도, 성전에 있는 제사장이나 광야로 나가서 수도하는 에세네 사람들도 아닌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는 대부분이 고용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목자는 유대 사회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군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유대사회에서 목자를 천시하고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첫 번 크리스마스에 첫 번째로 성탄의 복음을 들었고, 첫 번째로 예수께로 나가서 경배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이 마리아의 찬송과 같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를 배불리시고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이 말씀이야말로 말세의 성도들이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실제적인 사례로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목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성탄의 주를 첫 번째로 경배할 수 있었는지를 들어봅시다. 

 

목자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 자신의 직업이요, 그 직업에 충성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맞는 길이라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5절을 봅시다. 목자들이 어느 때에 무슨 일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합니까? 성경은 목자들이 성경을 읽거나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있을 때에 주의 영광이 임했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양 떼를 지킬 때에” 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목자들이 기도하고 있다거나 금식하고 있을 때라고 하시지 않고, “양떼를 지킬 때”라고 하셨습니다. 목자들이 오실 메시야를 생각하고 있을 때라고 하시지 않고 “양떼를 지키더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맞는 길이 자기 일, 자기 생업에 충실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그게 목자라는 직업이 율법을 그대로 따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멀리 광야의 초장에 나가 한 철을 양을 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안식 법을 그대로 준수할 수 있으며, 성속을 구별하는 의식 법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가난에 찌든 그들이 어떻게 십일조를 충실히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 생업에는 말씀대로 행하기 어려운 직업도 있고, 교회를 봉사하기 힘든 직업도 있습니다. 초대교회시대 성도들은 노예가 많았습니다. 이 노예들이 어떻게 주일 지키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종들아 주인에게 충성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노예의 일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목자와 같이 말씀대로 살기 힘든 직업 일수록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입니다. 목자들의 수고가 없으면 양 젓과 양털과 고기를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제사를 드릴 수도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살기 어려운 직업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따라서 그 일이 신령한 일이요, 예배입니다. 그 일에 충실한 것이 하나님께 충실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자기 일에 충성하는 것을 볼 때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은혜 받을 일이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신령하고 거룩하고 영광된 때가 어느 때냐는 겁니다. 목자들이 자기 양 떼를 지킬 때 주의 영광의 빛이 임했습니다. 여러분!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까? 시상대에서 트로피를 들고 ‘아름다운 밤입니다!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고 할 때가 아름답습니까? 연기할 때가 아름다운 거죠. 이렇게 우리가 가장 신령하고 영광스러울 때는 자기 일를 할때, 자기 일에 성실한 모습. 충성할 때가 가장 멋지고,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때입니다. 이런 면에서 노동이 기도요 예배인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목자의 일을 유대사회에서 천시 받는 일입니다. 아마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성전의 제사장들과 서기관 장로 바리새인들이 제일 천시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목자들이 양 떼를 지킬 때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임합니다. 사람은 천대하지만 하나님은 제사장이나 서기관 장로, 바리새인들이 아닌 목자들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를 첫 번 경배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직업은 다 거룩한 예배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시회적 우대를 받는 직업이 아니라고 해도 자기 일, 생업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맞는 길이라고 확신하시고, 목자들과 같이 자기 일에 자기 충성하는 중에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시고, 오는 주님의 나라를 맞이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맞는 길은 그리스도께로 가는 결단과 순종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에게 나타나 구주 나신 소식을 전한 천사는 “너희가 가서”라고 베들레헴으로 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강보에 쌓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하셨습니다.(12) 즉 그 아기가 구주인 증거가 강보에 쌓여 구유에 뉘인 거라는 뜻입니다.이것은 유대인의 메시야 관념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순종하겠습니까? 더구나 이 명령의 순종은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양 떼는 어떻게 합니까? 도둑맞거나 맹수가 오면 누가 책임집니까? 실직은 고사하고 배상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들은 결단하고 순종했습니다. 목자들이 이 결단을 하지 않고, 이 순종을 하지 않았다면 아기 예수를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목자들은 이 결단과 순종으로 성탄의 주께로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가려는 결단과 순종이 그리스도를 맞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깁고 있을 때 “나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이 주님을 따르려면 배와 그물을 버리는 결단이 요구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가는 것은 양떼를 뒤에 두고 베들레헴으로 가는 결단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생계가 걸린 일을 뒤에 두는 결단과 순종으로 됩니다. 우리는 왜 이 결단을 해야만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자기 일에 성실해도 그 일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내 직업 내 생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일은 무의미하며, 그리스도를 보고 경배하지 못하면 내 일에 성공해도 영원을 상실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가서 그리스도를 보라는 하나님의 초청이 있으면 생업도 뒤에 두는  믿음의 결단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직업을 뒤에 두고라도 예수께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목자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 가는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생업을 뒤에 둘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가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경배하고 얻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생업을 뒤에 둘 수 있는 사람이 참 제자요, 이것이 오시는 주님을 맞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면에서 주일을 지키는 것이 다시 오시는 예수를 맞는 길로 믿습니다. 새벽에 주께로 오는 결단이 그리스도를 맞는 길로 믿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생업과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생업을 뒤에 두는 결단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 되게 하셨는지를 배웁니다. 우리 하나님은 생업을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생업에 충실한 것이 하나님께 대한 예배요. 하나님의 일이요. 이 일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목자들을 통해서 생업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재가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은혜로 가족은 자기 생업에 성실해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생업에 몰두하면 우리 영이 생업에 메몰 되어 그리스도를 잊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생업에 골몰하다 보면 영을 잃고 하나님의 임재를 잃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그리스도를 보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갈 것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주일도 이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우리 하나님은 이 요구로 생업이 그리스도를 보고 만나고 모시고 경배하는 일에 우선하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보는 일이 우선이 되게 하십니다. 즉 우선순위를 확정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결단으로 우리 영이 일과 세상에 매몰되게 않게 하시고, 성결을 유지하게 하시고, 깨어있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그의 나라를 중심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은혜로 가족은 생업에 충성하시되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양떼를  뒤에 두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갈 수 있다는 중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언제나 우선권을 가지시게 주님께 우선권을 드립시다. 이 중심으로 할 때에 생업에 충성하면서도 주님을 잃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이 중심으로 하면 항상 우선권을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둘 것으로 믿습니다.  이렇게 하는 생업이 기도요, 예배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되어서 첫 번 크리스마스의 목자와 같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경배하게 하며, 잘했다 칭찬 받는 축복을 우리 주님 오시는 그날에 누리게 할 것으로 믿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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