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그리스도인의 애국 애족

아브라함-la 2017. 6. 11. 16:47

017,6,11주일강론

롬9:1-6 말씀 : 라인권목사

   유월은 현충일이 있는 호국의 달이기 때문에 국민 된 사람들은 한 번 쯤은 조국과 애국 애족의 길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 유명한 황사영 백서로 본문을 엽니다. 제 고향 마을 서쪽으로 내를 건너 산 넘어 긴 골짜기를 나가면 지방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정조 때 조선의 조야를 뒤흔든 사건이 발생합니다. 정조재위 신해 년에 이 마을에 사는 선비 천주교인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하자 신주를 불사르고, 유교전통의 장례를 폐하고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산사건”으로 신해박해가 일어났고, 이 신해 박해는 정조 사후 벽파가 시파를 제거할 목적으로 신유박해를 일으키는 구실이 됩니다. 이 신유박해로 이승훈 정약용등 300명이 죽임을 당하고 중국인 주문모신부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때 이 잔혹한 백해의 바람이 광풍으로 바뀌게 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것이 소위 황사영백서 사건입니다.


황사영은 신유박해로 제천의 배론의 옹기마을에 숨어 있다가, 그를 찾아온 친구 황심과 조선천주교회를 구하기 위하여 중국에 있는 주교를 통해서 교황에게 구원을 청하는 밀서를 보내기를 계획했습니다. 이 황사영백서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박해받는 조선 교회를 구하고 조정이 선교를 용인하도록 교황이 서양의 기독교 국가들을 움직어 수 백 척의 군함과 정병 5,6만 명을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형편이 이 정도가 안 되면 배 수십 척에 군인 5,6천명이라도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황사영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신앙을 탄압하는 조선을 무력을 사용해서 정벌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대원군에게 이르기까지 조선의 천주교박해의 정당성을 부여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오늘의 본문을 황사영의 눈으로 본다면 사도바울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바울은 유대인들의 불신이 큰 근심이라서 자신이 유대인들의 불신의 저주를 대신 받는 아사셀 양이 되어도 좋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대신 저주를 받기를 원한 이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공적으로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내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복음과 교회를 박해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유대인들은 사도바울의 가장 큰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바울을 박해하고 죽이려고 한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이방인들에게로 향한 이유입니다.(행13:46)이런 유대인들! 황사영이라면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라고 하든지, 요즘 말로 하면 항모전단에 죽음의 백조 B-1B폭격기와 미사일 가지고 와서 소탕해 달라고 해야 맞습니다. 왜냐면 예수가 왕이시고, 교회와 복음과 신앙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도리어 자기가 아사셀 양이 되어 유대인들의 죄를 대신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먼저 배우는 것이 조국과 민족의 의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조국과 민족은 어떤 의미입니까? 조국과 민족 혈육이라는 것은 가장 좋은 때 먼저 생각이 나게 하는 그런 존재와 의미라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8장까지가 한 사람의 죄인이 구원에 이르고 그 구원이 얼마나 완전한 것인가를 다루었다면 9장부터는 개인이 아닌 선택된 백성과 모든 인류의 구원문제를 11장까지 다룹니다. 8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극치에서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9장을 시작할 때는 그는 아주 심각해지고 고뇌와 고통과 비통에 차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의 골육친척 이스라엘의 불신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바울이 유대인들을 유대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다는 점입니다. 유대인은 다윗의 왕통을 잊는 정통성을 가진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긍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참 여호와 종교를 한낱 율법으로 만들고 예수를 죽인 부정적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는 말이 유대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민이요. 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이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의 상징입니다. 즉 바울은 유대인을 나쁜 민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무슨 이야기입니까? 바울이 믿음으로 되는 구원의 완성과 완전성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 앞에 서자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자기 나라와 민족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것 보고 먹으면 누구 생각나지요, 사랑하는 사람 생각납니다. 이렇게 바울이 이 좋은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니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이 조국이요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인 유대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 했던 이스라엘이 그리워하고 유대인이 복음을 받아서 이 참 이스라엘이 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왜요?바울 자기가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바울의 정체성입니다. 이것이 원수 같은 조국과 민족을 부정할 수 없게 하고, 감수 하게 하고, 결국은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조국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조국이란 좋은 것이 있으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자 동시에 나의 가장 아픈 데가 되는 것이 조국이라는 것입니다. 우찌무라간조는 이것을 바울의 우국충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조국과 민족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조국은 울타리가 아닌 이리같이 될 때가 있습니다. 조국이나 민족이 자신에게 언덕이 아니라 도리어 해악이 되어도 조국은 부정할 수 없고, 미워할 수 없고 감수해야 하고 결국은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조국이라는 겁니다. 왜입니까? 그 나라 그 민족이 자기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즉 조국과 민족은 부모 형제와 같은 겁니다. 잘해도 잘못해도 내 부모요, 자식이며 형제입니다. 조국과 민족도 그렇습니다. 내 나라가 싫어서 이민 가서 귀화해도 나를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조국을 부인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부인하는 겁니다. 내게 원한 맺힌 나라요, 민족이라도 조국은 부정할 수 없고 미워할 수 없고, 감수해야 하는 것이 조국이요, 그리워하고 결국은 사랑하고, 좋은 나라가 되도록 헌신하고 봉사해야 할 것이 조국이요.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애국심라고 하지요?


사실 복음은 애국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깊이 있게 이해한 사람들은 다 조국을 깊이 사랑했다는 걸 분명히 증언합니다. 복음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먼저 자기 나라와 민족이 생각나고, 자기 나라와 민족과 골육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안드레가 그 형 베드로로 먼저 주님께 데려온 이유이지요. 이 마음에서 위클리프는 자기 민족이 모국어로 성경을 읽게 하기 위하여 영어로 성경을 번역해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게르만민족을 뭉치게 한 이는 루터입니다. 루터도 자기 모국어인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다 애국지사들입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바울과 같은 우국충정을 가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 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조국이라는 것이 우리가 부인하지 못하고 안고 가야하며, 사랑해야 할 존재라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애국하는 길은 무엇이며 무엇이 진정한 애국 애족이냐는 겁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에 그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선 본문 3절에서 바울은 예수를 죽인 불신의 유대인들이 참 이스라엘이 되기를 열망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중추가 되기를 원하는 비전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육신적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주의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는 겁니다. 여기에 애국이 편협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에 함몰되지 않게 하는 애국의 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인이 구하는 나라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기 때문에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를 초월하는 애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조국의 불의함이나 문제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열망과 비전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애국 애족이라고 믿습니다. 이 세계주의, 천국중심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봉사하여 우리 조국대한민국이 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3절은 바울은 이스라엘의 회개와 구원을 온 영혼을 다해서 소원하고 기도하고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유대인의 “아나데마” 아사셀 양이 되게 해달라고 모세와 같이 간구했다는 것이지요.(출32:32) 저는 이 마음을 갖는 것이 애국이요, 이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요, 가장 실제적인 애국이라고 믿습니다. 왜 우리 조국이 이 패역에도 이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까? 기도로 제헌국회를 개회했고, 수많은 구국제단이 있고, 새벽마다 이 조국을 위해서 올리는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하기를 기도합시다. 통일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이것이 애국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3절에는 불신의 유대인들이 구원 받도록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소원하고 열과 성을 다하는 바울의 전도의 열정이 있습니다. 저는 이 복음전도가 가장 시급하고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애국 애족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왜냐면 복음만이 사람과 민족을 구원하고 변화 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가는 나라와 민족들이 변화를 받고 복지국가를 이루었다는 건 복음 선교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왜 영국이고 미국입니까? 복음의 능력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참된 애국 애족은 먼저 내가 부모 형제 친척부터 전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모형제, 친족, 친구가 작은 조국입니다. 친족을 사랑해야 민족을 사랑해서 복음을 전할 줄로 믿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자기가 회심할 때 일본에 기독교신자가 30만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안타가워 동포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불타올라서 헌신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애국 애족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 한국에 기독교신자가 몇%입니까? 20%요? 양보해서 40%라고 해도 우리 동포 60%와 북한 동포는 다 구원 밖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반 기독운동이 팽창하고, 북한의 김정은 점점 포악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도 요원해 보이고, 복음 전도가 어려워 보입니다. 바울이 바라는 예수 죽인 유대인의 구원은 더 절망적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롬11:26을 보면 이스라엘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4절이 설명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을 통해서 육신으로 나셨습니다. 예수는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입니다. 모든 만물은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 속할 세세에 찬양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이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가 있고, 이 말씀이 하나님이 되신 예수의 권세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 예수의 권세와 은혜로 통일도 가능하고 민족복음화도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호국의 달을 맞아 우리 은혜로 가족은 바울과 같이 문제 많은 조국이지만 이 조국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보고, 이 조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열망하고 엎드려 기도합시다. 그리고 일어나 나가서 가까운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에게 힘써 복음을 전합시다. 이것이 이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참된 애국이요 애족이라고 믿습니다. 이 길이 이민족이 예배자로 서는 감격을 누리게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닮는 구원의 길이며 하나님의 구원에 쓰임 받는 은총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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